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저는 언니, 오빠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유독 한글을 일찍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동화책을 읽는 게 너무나 즐거웠던 그 때 제 나이 4살이었지요. (요즘은 평범한 얘기지만 그때 당시에는 핫이슈♪♩~)
그때가 불행의 시작인지도 모른 채..
참고: 안경없이 1.0을 보는 시력을 정상시력이라
하고 근시는 원거리가 안보이는 것을 말합니
다.
근시는 '-'로 표기하고, 오목렌즈를 착용해야
원거리를 잘 볼 수 있습니다.
안경 도수는 'Diopter'라고 하고 수치가
높으면 높을수록 안경은 두꺼워 집니다.
(-1, -2, -3...으로 갈수록 렌즈가 두꺼워짐)
초딩 2년 (언니와)
저는 처음부터 -3diopter안경을 썼던 걸로 기록이 남아 있더라고요.. 아무튼 초등 2학년 때부터 안경을 썼는데, 제가 제일 부러웠던 사람은 안경을 안 쓰는 사람이 아니라 칠판 글씨 볼 때만 안경이 필요한 사람이었을 정도로 전 안경이 없으면 아예 생활이 안됐어요.
제 5학년 때 같은 반 친구가 '안경 원숭이'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어요. (이름이 좀 별로여서 그렇지 사실 좀 귀엽지 않나요?~)
그 때는 잠자리 안경 (옆에 사진에 있는 안경)이 많을 때여서 어쩔 수 없는 별명이였죠.
(안경잡이가 나을 뻔 했어요 ㅜ.ㅜ)
중학교 때 소프트 렌즈를 시도했는데 어린 나이에
렌즈를 낀다는 게 관리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9D까지 나빠졌답니다.(자랑이냐?!) 제 눈이 그렇게 작은 눈이 아닌데 안경이 뺑뺑 돌아서 눈이 콩알만해 보였었죠, 그치만 콧대는 살더라고요. ㅋㅋㅋ
대학 가자마자 렌즈만 꼈고 가끔은 잘 때도 끼고 자는 등 관리가 엉망이었어요.
소프트 렌즈가 그냥 두면 삐쩍 마르잖아요.. 그래서 자기 딴에도 살겠다고 내 눈의 물을 빼앗아 가니 전 눈이 얼마나 뻑뻑했겠어요. 힝~
간호과를 졸업하고 김안과 병원에 입사하게 되었지요. 환자들이 무거운 안경을 벗고 새로 태어 난 것 같다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꼭 하고 말 테다~~’ 하고 2000년도에 라식 수술을 받았답니다. 안경 벗는 게 소원이라 제발 수술이 됐으면 좋겠다고 빌었던 덕택일까요?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다행히 그 높은 도수를 깎을 수 있을 만큼 각막 두께가 두꺼웠어요.
남들은 ‘난 시력이 나빠서 시계 바늘이 안보여’ 라고 말 할 때 저는 ‘ 난 그 벽에 붙어 있는 게 시계인지 액자 인지도 모를 정도야.’ 이런 상태였다가, 라식 수술 받고 집에 가는 길에 교통 안내 표지판이 보이는 게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수술 할 때 협조를 잘 해야 시력 예후가 좋다는 말을 듣고, 잘 보여야 한다는 일념아래 눈만 마취한 애가 전신 마취 한 애처럼 목숨 걸고 했답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떴는데 잘 보여서 또 렌즈 끼고 잤나 보다 했어요.
전 지금 뭘 하고 있을까요?
전 라식 센터에서 라식 상담을 하고 있어요.
제가 고도 근시였기에 경험했던 일들을 기억하며, 수술 전 검사를 하러 오시는 분들에게 ‘어머, 저 만큼이나 많이 나쁘시네요~ 수술이 됐으면 좋겠어요…’ 라고 말하곤 하죠. 그치만 도수가 높을수록 각막이 많이 깎이기 때문에 수술이 안되는 경우가 많아서 같이 속상해 한답니다.
안경을 벗으니 얼굴도 환해지고 마음도 밝아지는 것 같고..^^ 수술 후 한 달 뒤 바로 수영 강습을 받았어요.
그 동안 찜질방가서 안경 쓰고, 놀러 갈 때마다 챙겼던 그 무수한 렌즈 용품들에서 해방되었죠.
이런 자유로움을 우리 고객들도 느꼈으면 하는 바람으로 열심히 검사와 상담을 하고 있답니다.
오른쪽:지영 - 라식한 사람
가운데:주연-원래 시력 좋은 복받은 사람
왼 쪽:경진-라섹한 사람
함께 누려 보실래요? 속이 시원해 지실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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