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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옆방eye : 객원블로거

 ♡ 저시력인이 길을 물으면 말로 정확하게 알려 주세요 ♡


뒤로 돌앗! 앞으로 갓!

내 눈은 근시•난시•원시만으로는 모자라서 눈에 관한 왼갖 잡병까지 고루고루 갖춘데다 시야마저 좁아서, 길을 갈 땐 헛디뎌 다치는 일 없도록 땅만 열심히 내려다보며 느릿느릿 걷는다.
그러니 모르는 곳 어딘가엘 찾아가는 일은 그리 만만한 노릇이 아니다.

먼 곳의 간판을 읽어 보겠노라 정신이 팔렸다간 바로 옆의 간판이나 전봇대, 가로수 따위와 박치기 하기 십상이다. 더구나 망막이 병들어서 물체의 상이 제멋대로 비쳐진다.

멀쩡하게 평평한 길이 움푹 패인 웅덩이로 보여서 빠지지 않으려고 조심했는데… 알고보면 그림자인 경우가 허다하다. 이처럼 미덥지도 못하거니와 왼갖 잡병을 장장 45년간 앓아 오느라 고달픈 눈을 혹사 시킬 일도 아니어서 눈 대신 안락하기 짝이 없는 입을 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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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안내로봇이 필요해~

가끔 다른 사람과 함께 모르는 곳을 찾아갈 때가 있다.

이 길이 꼭 저 길 같이 생긴데다 표적이 될 만한 것도 마땅히 없어 답답해지기도 한다.
온 길을 되돌아가며 몇 번이나 체바퀴를 돌면서도 남에게 묻는 일이라곤 절대로 없는, 대단한 독립심을 가진 이들도 있다. 나는 사람이 생겨먹길 뻔뻔해서(?) 남에게 무얼 묻는걸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에도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제 어디서건 누구에게건 물어서 궁금증을 꼭 풀고야 말았다. 시력이 1.5, 1.2일 때에도 별나리만큼 방향감각이 무디어서 늘 남에게 묻곤 했다. 다녀 본 나라가 몇 안 되지만 외국인으로서 길 묻기에도 제법 이골이… 이래저래 남에게 무얼 묻는 일에 대해선 학습이 아주 잘 되어 있다고나 할까?

‘실례합니다.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학생, 길 좀 가르쳐 줄래요?’

언제나 누구에게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공손한 말씨로 길을 묻지만, 대답해 주는 이들의 모습은 참으로
백인백색.

가장 친절한 이는 역시 경찰과 군인이다.

다음으로 친절한 곳은 복덕방이었고(뭔 중개 이전의), 노점상에게 길을 물어서 친절했던 예는 상대적으로 적다. 물건을 사려는 줄 알았다가… 기대감이 짓밟혀져 친절하기가 쉽지 않은 게라고 이해하고 있다. (너무 친절하여 나를 감동시키는 이들도 있었다.)

수다로 깨가 한창 쏟아지는 여학생들에게 무얼 물었다간 열에 아홉 번을 톡 쏘인다. ‘몰라욧!’


댓 걸음에 한 번씩 길을 묻는 나에게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대답을 해 준 사람이 꽤 여럿 있다. 길을 물을 때 대개 몇 단계를 거친다. 맨 처음 사람에게서는 대충 방향만을 배운다. 그이가 아주 친절하게, 저기 신호등 지나 파란 간판이 보이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지면 빨간 벽돌집 옆…… 이런 식으로 자세히 설명해 주어도 내겐 그 신호등이 보이질 않으니 우선 방향만 잡고 가면서 다시 묻고 또 묻고...


언젠가 이런 나를 알아본 이가 있었다. 가르쳐 준 방향대로 걸어가고 있자니까 들었던 듯한 목소리가 차도 쪽에서 나를 불렀다. 바라보니, 오토바이를 몰고와 데려다 줄 테니 뒤에 타란다. 그는 내가 대답은 하면서도 가리키는 방향을 제대로 보고 있지 않음을 알아챘다고 했다. 걸을 때 발을 매우 조심스럽게 옮겨서 지독한 근시일 거라고 짐작했단다. 대만인이 베풀었던 이런 친절을 내 나라에선 받아본 일이 없다는 게 존심이 좀…  (요즈음 이랬다간 납치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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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응대를 기대합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턱으로 방향을 가리키는 이들이 있다
.

나는 빨리 움직이는 물체는 보질 못한다. 언젠가 야구장에서 공이 내 얼굴을 향해 곧바로 날아오고 있는데도 모르고 있었다.

함께 앉아 있던 야구 선수가 나를 넘어뜨리고 공을 처리하지않았다면 일 치룰 뻔했다.

그러니 턱이 훽 돌아갔다 온  방향을 알아볼 리가 없다.

어지간히 먼 곳 같아 보이면 또 다른 사람에게 물어 보겠지만, 바로 근처인 것 같고 지나가는 사람도 없으면 거푸 물어보는 수 밖에 없다. 귀부인으로 보이도록 정성스레 단장을 한 이였다. 진드기처럼 달라붙어 묻는 내가 몹시 못마땅했던 모양.

“아니, 젊은 사람이 늙은이 같이 굴긴… 아 저기잖아, 저기!”

내 보기엔 저나 나나 또래 같은데, 젊게 봐 준다니 고마워하기로 했다.

지하도 안에서 만난 이가 일러준 대로 출구를 찾아 나오는 데까지는 잘 해냈다. 출구를 나가면 바로 앞에 있다더니만 나와 본즉 조그만 네거리였고, 바로 바라다 보이는 쪽은 시장통으로 연결되면서 그럴싸한 건물이라곤 없었다. 할 수 없이 지하도 입구에 손수레를 바싹 붙여 놓고  과일을 파는 아줌마에게 다시 물었다. 아줌마는 고개를 길 건너편으로 홱 돌리며 “저거 아녀?” 한 마디 하고는 하던 일을 계속한다. 그 턱 놀림이 어찌나 잽싸던지 미처 알아차릴 수가 없었거니와, 짐작이나마 해보려 해도 바로 건너편인지 대각선의 건너편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귀찮아 한대도 어쩔 수 없는 일, 다시 공손하게 여쭈었더니,

‘어-ㄹ레 이 아짐씨 거동 보소-. 쿠궁 쿠궁 쿵덕!’ 내 얼굴을 한참이나 빤히 들여다 보고나서 한 장단, “고 앤경두 모자멘키루 멋으로 썼슈?”


2편에 계속~


 미영순
시각장애 1급 / 김안과병원 저시력상담실장 / 전국저시력인연합회 회장
정치학 박사 / 중국 흑룡강성대학 객원교수
2008/07/09 08:32 2008/07/09 08:32
한때는 테리우스 ^^;

제 환자중에서도 그런분 계셨어요...

눈은 멀쩡해 보이지만, 야맹증으로 거의 실명상태...
젊은 환자이기에 사람들에게 치이고, 부딪히고,..

"지팡이를 하고 다니지 그래요?"
하고 물으니
"그래도 사람들이 하나도 비켜주지도 않고, 도와주지도 않고... 장애인이라고 다들 피해서요..."

--;

조그마한 관심이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는 큰 힘이 되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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