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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옆방eye : 객원블로거

 ※ 저시력인에겐 눈에 대해 너무 묻지 마세요! ※


소아마비를 만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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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땀 삐질~ 폭발직전!!

택시가 의성 목적지에 우리를 내려놓았을 때는 어둠이 그 긴 자락으로 온 산을 휘감은 뒤였다. 날은 어둡고 발마저  설은(한 번 가본 곳은 발 제가 알아서 곧잘 가니까) 산길을 더듬으며 초긴장을 해야 했다. 어두워진 다음에는 써도 안 써도 그만인 안경이 땀에 미끄러져 흘러내리니 나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산비탈 아래로 떽데굴 굴러가지 않으려고 모든 감각기관을 150% 가동시켜 놓고 발을 옮겼다. 곁에서 붙들어 주는 이가 있어도 마음을 놓지 않는데 혼자서 낯설고 발선 산길을 걸으려니 진땀이야! 진땀!

이런 순간에 누군가 눈에 관련하여 나를 자극한다면 나의 반응은 놀랍도록 잽싸고 매서워진다.

숨 고를 짬도 없는 원 터치 전자동이랄까? 전자동 연발로 독설이 쏟아져 나온다. 보통 때에는 반응이 하도 느려터져서 나도 남도 어이없게 만들면서… 고쳐 보고 싶지만 아직 수양이 덜 돼서 방법을 못찾고 있다.


비탈과 계단이 원칙도 질서도 없이 마구 뒤섞여 있는 산길-밤길을 땀에 절어 더듬거리는 나를 보고, 아침에 처음 만난 흐트러진 멋의 30대가(일행 중의 한 명이 예고 없이 데리고 온) 키득이기까지 하며 말을 건넨다.

“아니, 갑자기 왜 그래요?”
“지금 웃었어요? 나야 눈이 상했다만 거긴 더 중한 것이 상했나베…”


앞서 가던 일행 하나가 그제서야 나를 잡아 주러 뛰어오는 바람에 뒷말을 삼킬 수가 있었다. 하마터면 독설이 좔좔… 친구들은 내가 낮에는 잘 못보고 밤엔 아예 못본다는 걸 늘 까막곤 해서 탈이다 탈.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땀내가 코에서 맴을 돈다.

아침에 서울을 떠나 휴게소에서 잘 먹고, 안동에 들러 한바탕 놀고 온 종일을 멀쩡하더니, 난데없이 웬 심학규 놀음이냐고 묻고 싶었을 게다. 눈치 없는 이가 호기심만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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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글부글부글~...이걸 그냥! 확!

“눈이 왜 그래요?”
“……”
“언제부터 그랬는데요?”
“……”
“시력이 얼마이길래 그래요?”


나는 참으로 철딱서니 없는 사람도 다 보겠다는 얼굴로 대꾸 없이 바라만 보고 있는데(본다고 보이는 건 아니지만), 그는 궁금증을 남겨두면 생병이라도 나는 모양이다.

“안경을 보면 돗수가 별로 높은 것 같지는 않은데요?”


진정 좀 해 보려던 신경이 그만 다시 곤두서고 말았다.

‘행여 소아마비를 만나거든 긴 다리가 짧은 쪽보다 몇 센티나 더 기냐고 묻질 랑은 말아요’

라고 말해 줄까말까 망설이다가, 혹시 소견이 짧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참기로 했다.


소경이었던(불과 6개월 동안이었지만) 때로부터 꼭 43년 하고 한 달이 지났다. 그 사이 나의 더듬거림을 보고 깔깔거리는 사람을 두 명 만났다. 처음 사람은, “아이 참,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웃음을 참기 어려워 했다. 참아야겠는데 참지 못하는 것은, 남을 웃기는 내 탓도 있는 것 같고 스물을 넘긴 지 오래지 않은 그의 나이 탓도 있는 것 같아, 나도 어물어물 따라 웃을 수 있었다. 


나는 지금 ‘행여 소아마비를 만나거든…’을 생략했던 일을 잘했다고도 잘못했다고도 생각하며 지난 며칠을 돌아보고 있다. 그 흐트러진 멋의 30대는 남의 눈치 보기에는 꺼벙한데 제 잇속을 챙기기에는 야무지기도 했다.

나는 마땅히 그 섣부른 호기심에 단단히 못 좀 박아 두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 없는 아이들의 돌팔매에 애꿎은 개구리가 죽기도 한다는 걸 가르쳐 주었어야 옳았다.


궁금한 일이 많기도 한 이 30대의 노처녀가  혹 이혼한 누군가를 만나서는  나에게 던진 그 쓰잘데기 없는 질문을 끝없이 하지나  않을는지…

“아니, 어쩌다가 그 지경이 되었나요?”
“남편이 바람을 피웠나 보죠?”
“남편은 재혼을 했나요? 새 여자는 예쁜가요?”

호기심 많음도 병인 양 한 이 30대의 노처녀를 나는 무관심으로 대했다. 그것이 여여(如如)니 부동(不動)이니 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기에 나는 편할 수가 없었다. 우연치 않게 모르는 이와 어울려진 여행, 나처럼 세상은 넓지 않노라 쏘다니다 보면 이따금씩 겪기도 하지만, 이번 여행은 ‘께름직’으로 기억 속에 남고 말았다. 내가 그녀에 대해 지켰어야 하는 여여한 모습, 머리로야 뻔하지만 마음도 몸도 모르고 싶어했다. 신심여일( 神心如一)의 도리는 언제쯤이면, 얼마나 더 늙어야 내 것으로 지닐 수 있게 될까?



 미영순
시각장애 1급 / 김안과병원 저시력상담실장 / 전국저시력인연합회 회장
정치학 박사 / 중국 흑룡강성대학 객원교수

2008/08/27 15:44 2008/08/27 15:44
신작로옆 코스모스

곰곰히 글을 읽어보니.... 마이 죄송하네요.. 주변분들께 ㅎㅎㅎ 개과천선할께요^^
미영순님도 눈때문인지... 마음의 문이 많이 닫혀있는듯 합니다. 흐트러진 멋의 30대가 몰라서 그랬겠지요^^ 이해해 주세요. 미영순님은 눈때문에... 딴사람은 돈때문에.... 또 집때문에... 아이때문에 다들 자기만의 아킬레스건을 갖고 있을껍니다. 물론 장애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것들이겠지요... 하지만 이런 모든것들에서 의연해 지지 않으면 사는게 참 많이 힘들것 같네요... 열심히 웃으며 사시길 바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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