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미영순
* 이 글은 국립재활원에서 발행하는 '재활의 샘' 책자에 '저시력 재활의 조건' 이라는 제목으로 필자가 기고한 글입니다. 저시력인 재활의 활성화를 위해 나아갈 방향을 저시력인의 입장에서 모색해봅니다.편의시설을 설치하라는 시행령이 지엄해서 열심히 설치는 하는데, 저시력인에게 무용지물일 때도 많다. 계단이 있는 곳엔 경사로도 만들라고 했다. 굵직한 기둥이 죽ㅡ 늘어섰고 앞으론 계단이 좌악 펼쳐진 공공건물, 이 웅장한 외관을 해칠 수 없어 경사로는 뒷켠 한 구석에… 그걸 찾아낼 수 있다면 뭐 할일이 없어 저시력 하누? 지하철역 통로의 유도블록은 대개 중앙보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져 깔려있다. 광화문역도 강남터미널역도. …도, 상인들이 꼭 그 유도블록을 이용하여 물건을 쌓아둔다. 따그락 딱 승려로 분장한 걸인도 하필이면 꼭 그 자리를 탐낸다. 언젠가 시청도 욕 좀 먹느라고 유도블록 위에 홍보물을 펄쳤다가 언론에 고발 당하기도 했다.
저시력인이 일단 대문을 나서면 우수마발에 두렵지 않은 것이 없지만 고약한 중에도 더할나위 없이 고약한 것이 볼라드, 내 말로는 무릎 지뢰.(인도의 차량 진입 방지용 낮은 기둥) 부딪치기만 하면 '운수 좋은 날'이고 앗차 걸려서 넘어지기라도 했다간… 황당한 중에도 제일 황당한 무릎 지뢰는 횡단보도 끝에 버티고 선 놈. 빨간불로 바뀌기 전에 무사히 건넜음을 막 안도하려는 찰나에 정강이를 냅다 걷어차인다. 무릎 지뢰 때문에 시각장애인의 정강이가 남아나질 않겠다고 푸념을 했더니, 도로시설 관리 나으리 가라사대, "볼라드 없어지면 인도에서 차에 치어 죽을래? 무릎 좀 아프"고 말래? '울화통 터진다'를 뼈에 사무치게 실감했다.
고마운 일이라곤 없다고 한대서야 민족 자존이… 허나, 속상하게도 많질 않다. 발로 계단 끝을 더듬으며 천천히 내려가자면 누군가 다가서며, "붙들어 드릴까요?" 이 바쁜 세상에 생판 모르는 남에게 마음 써주는 이가 있어 고맙다. 대개는 여승, 수녀 그리고 집안에 장애인이 있는 사람. 길이 갈리는 데까지 함께 걸으며 이야기도 나누고,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네, 조심해서 가세요." 따뜻한 마음을 나눈다. 장애인으로 취급 받기 싫은 사람은, 도와주겠다는 이의 얼굴에다 대고, "왜요?" 내밀다만 손이 시려서 오그라든다고 했다. 누굴 도와 준답시고 함부로 나서다간 따귀 맞게 생겼더라고도 했다. 손뼉도 마주쳐야, 싸움에만 쓸 말은 아닐 성하다. 서로간에 할말이야 많겠지만, 닭이 먼저인지 계란이 먼전지를 따져본들…
고마운 일 하나 더, 한국의 복지가 짧은 동안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 이따금씩 들려오는 전시행정도 그 '짧음' 탓으로 돌리고는 있지만, 가끔 어이없을 때가 좀…
저시력인의 기회 균등을 위하여 공무원 시험에서 확대 해준다는데, 문제지만 큰 글자이고 본디 오밀조밀 아리까리 한 OMR답지는 그냥 그대로, 지금 누굴 놀리나? 정보문화진흥원에서 해마다 고가의 정보통신 보조기기 보급에 막대한 예산을 쓰고 있다. 달라는 이보다 자금이 적어서 대상 선정은 '신중'이라고 했다. 대학생 외손자와 80 바라보는 외조모가 각각 확대독서기를 신청했더니, 손자는 뚝 떨어지고 기초생활 수급의 1급 장애 할머니만 받았다. 복지관에 놀러 다니기에나 바쁜. 누구 약올려? 시각장애인들 안전하게 길 건너라고 횡단보도에 음성 신호기를 설치한지 꽤 되었다. 신호기 리모콘을 저시력인에게 주었더니 고개를 젓는다. "그거, 사람 많은 큰길에만 있어요. 눈치껏 남들 따라가면 되지요. 정말 필요한 곳엔 없다니까요." 요놈의 리모콘이 바로 화중지병?
photo by danuq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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