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찬가지로 안과의사들은 안과이외에 다른 우리 신체에 대한 관심도 지식도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색다른 경험이기는 하지만 안과 전문의로서 바닷가 근처의 의료원에서 3년동안 응급실 밤샘 당직 근무를 했던 저로서는 3년 동안 큰 사고를 치지 않고 지냈던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정도이니까요. 전문의가 많아지면 의료의 질이 떨어진다는 보고도 있지요. ^^
응급실 당직을 서면서 제가 내린 사망선고는 수도 없이 많았지만, 대부분은 DOA(병원 도착 당시에 사망상태인 경우) 이거나 때로는 응급실 앞 구급차에서 내려보지도 못하고 검안후 영안실로 내려는 가는 경우도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망선고는 더 이상의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단절을 의미하기 때문에 선고를 내리는 순간 마음의 갈등을 일으킬 법도 하지만 망자가 되버린 환자에 대한 마음은 차가우리 만큼 단호하고 냉정했던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ㅇㅇㅇ 씨 2005년 11월 30일 01시 30분 운명하셨습니다." 이렇게 딱딱하게 표현했던 기억도 인턴때 후송을 가서 몇 번 해본 이후로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운명하셨습니다" 정도로 간단히 설명하고는 말았던 기억이 납니다. - Nieuwe kerk, Delft, Netherlands -
안과의사가 되어서 좋은 점은 이런 생명과 연관된 일들(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을 만날 기회가 줄어들고, 어려운 상황이 되더라도 제 손을 떠나 다른 선생님의 치료에 의존할 수 있다는 점 아닐까 싶습니다.
안과의사가 되어서 사망선고를 내리는 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망막을 전공하는 저로서는 실명에 처해 있거나 실명위기에 있는 분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법적으로 실명은 0.02 이하의 시력을 가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안과적 사망선고를 받은 것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더이상 볼 수 없는 상태라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은 또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일들이 생기더군요.
안과적인 사망은 무엇일까?
안과에 방문하셨던 분들은 아시겠지만 안과 환자분들 중에 맹인들은 거의 찾아볼 수 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안과에 오신 분들이 맹인분들 보다 시력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혼자서는 병원에도 오실 수 없는 분들도 하루에도 수도 없이 만날 수 있으까요.
몇 일 전 만난 또 한 분은 여러 생각을 가지게 해주셧습니다.
저희 병원에 다닌지는 약 십여년 정도가 되셨고, 당뇨합병증과 그에 따른 녹내장으로 처음 병원을 내원하셔서 이런 저런 치료를 어렵게 하셨지만 이미 수 년전 부터 오른쪽눈은 빛도 감지할 수 없고, 왼쪽눈은 빛만 감지할 수 있는 상태이였고, 양쪽 시신경은 모두 위축이 되어 이미 희망을 드리기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마치 DOA 환자를 보듯 안타까운 마음이었고, 보통은 이 정도의 상태가 되면 시력변화는 거의 없고, 느끼시는 정도는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마저도 얼마정도일까 가늠이 안되는 상태였습니다.
"요즘은 좀 어떠셨어요?"
"요새 더 어두워 진것 같아요."
"조금 보이시는 쪽이 그렇다는 말씀이시죠? 오랫동안 그러셨는데도 차이가 좀 있으셨나봐요?"
"더 안좋아지는 같아 걱정이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더 나빠지시는 않을 거예요. 당조절 잘 하시고 눈은 안정되어 있어요."
"요새 더 어두워 진것 같아요."
"조금 보이시는 쪽이 그렇다는 말씀이시죠? 오랫동안 그러셨는데도 차이가 좀 있으셨나봐요?"
"더 안좋아지는 같아 걱정이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더 나빠지시는 않을 거예요. 당조절 잘 하시고 눈은 안정되어 있어요."
글쎄 저는 남아있을지 모를 시신경 몇 다발을 저당잡아 립서비스를 하고 말았지만, 그 분은 제 말에 또 남아있는 몇가닥의 희망을 이어갈 생각을 하니 머리속이 좀 복잡해 졌습니다.
빛도 보이지 않는 눈들 중에는 그냥 안보이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안구가 점점 위축에 빠져 안구자체가 작아지기도 합니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그에 대한 치료가 힘들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그냥 포기하고 사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젊은 분들이 그런 경우에는 눈이 밖에서 보아도 하얗게 변하는 경우 흔히 생기기 때문에 미용적으로도 그렇고 안구 표면이 자꾸 벗겨지는 상태가 반복되는 경우가 많이 있기 떄문에 심리적, 육체적으로도 위축되고, 이런 저런 불편함도 상당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일부이기에 그런 어려움을 감수하고도, 소중하게 가지고 사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안과적 사망은 더이상의 희망을 버린 상태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몇 년전 뇌사상태의 환자를 집으로 귀가 시켰던 의사들이 살인방조죄라는 죄명으로 실형을 받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의사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한 사건이었기는 하지만 다행히 저에게는 잘 보이지 않더라도 상태가 좋지 않더라도 희망을 가지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따라와 주시는 분들이 계시는 것 같습니다.
- 클림트, 삶과 죽음 -
제 스승님께서 해주신 소중한 말이 다시 생각납니다.
"환자들이 포기하기 전까지는 우리는 포기하면 안된다"
치료가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 사망선고를 내린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많은 분들이 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Comments List
또 멋진글을 쓰셨네요....
항상 깊은 사색에 빠져들게 하는 여운이 있는 싸이판님의 글은 매력적인거 같아요^^
누구나 사형선고거리 한가지씩은 가지고 살고있는거 같아요...
치유할수 있느냐 영원히 못하느냐의 차이지만요!!
사랑하는사람과 이별도 사형선고일 수 있고 간절히 기다리던 시험의 불합격소식도 사형선고일수 있구..
하시만 선생님께서 내려야하는 사형선고는 그야말로 앞이 깜깜한 일이니까요....
사형선고를 얼마나 진심어린 마음으로 안타까워하며 내리느냐에 따라 환자들이 받아들이는 자세도 많이 차이가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싸이판님은 보이는것과 같이 훈훈하고 후덕한 훈남이시니...ㅎㅎ
진심으로 환자를 걱정해주는 맘으로 잘 대응하실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게요. 이렇게 글을 써도 자신의 사망선고에 대해서는 관대해 지지 못하는게 인지상정이겠지요.
잘 보이지 않음에도 잘 지내고 계시는 환자분들을 보며 저도 느껴야 할 것이 많은 것 같아요. 잘 하지 못해서 그렇지.....
예전에 진료를 보시던 환자분이 치료를 더 받지 않으면 지금 보이는 것 마져 못본다는 얘기를
듣고 울음을 터뜨리셨던 분이 계셨는데,, 그때 참 마음이 많이 안좋았거든요.
말한마디라도 "많이 좋아지셨어요~ "
이 한마디를 듣고 진료실을 나오시는 내원객분들은
수납하면서 항상 그 기분을 같이 나누시고 싶어하세요.
" 아이구, 이번엔 많이 좋아졌다고 2달있다가 오라고 하네~ " 이런식으로 ^^
선생님들의 세심한 한 마디가 정말 그들에게 또 다른 희망을 갖게 해주는것 같아요
그 순간은 진료 봐주신 선생님 만큼은 아니겠지만 저 또한 이 병원의 직원임을
뿌듯하게 생각합니다 ^^
네 행복한꿈쟁이님...늘 그런 일들만 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들 다 노력하고 있잖아요. ^^
이렇게 멀쩡히 앞 잘 보고 다니는 것에 갑자기 너무 감사해졌습니다. ^^;
네, 오말럽님... 건강이라는 것이 건강할때는 잘 모르는 것이라.....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 ^^
글을 보고 참 기분이 묘했는데, 마침 그림이 또 구스타프 클림트라...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chatmate 님 기분이 묘하셨다니.... 어떤 느낌일지... 감히 짐작이 안되는 것은 아직도 제가 갇혀산다는 느낌을 받게됩니다. ^^ 좋은 글이라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환자분들이 다른 병원에서 망막이 혹은 시신경이 손상되어 더 이상 치료방법이 없다는데 김안과병원에 가면 치료가 가능하냐..라는 질문을 하십니다.
그럴때마다 표현을 어떻게해서 환자분들께 설명을 드려야 하나..머리속으로는 수만가지 생각이 지나가요.. 저희야 가끔 그런 전화를 받지만 선생님들은 하루에도 몇번씩 이런 고민에 빠지실 것 같습니다..
환자분들은 그러하지만 선생님들은 심적, 육체적으로 많이 힘드시겠어요..
모두...좋은 말씀, 희망적인 말씀이 오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네...어려운 상황에 계신 분들을 만날 때면 늘 마음에 갈등을 갖게 됩니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어떤 방향이든 해결책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겠죠. 현실을 인정하게 말씀드리거나, 아니면 그래도 희망의 메세지를 드리거나...
치료라는 것이 늘 불확실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가 가진 생각에 대한 이해에서 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상황이 좋지 않은 분들을 만나는 것이 의사에게도 늘 스트레스가 되지만 그래도 그 안에 작은 무언가라도 도움이 될 것이 있는지 찾아보는 것도 즐거움이 될 수 있겠지요.
가끔은 말이야...난...
환자가 포기해도 난 포기 안하는데...
삶이란 것이 그렇게 쉽게 포기하는 것이 아닌 것 처럼...
난 그래도 끝까지 버텨봅시다...십년후에 과학의 발달이 어떻게 이루어 질 줄 압니까?? 라고 말야.. ^^
항상 희망적인 자세... 난 그게 좋더군...
네, 어떻게든 살아가야 할테니까요. 그리고 생각보다는 담대하게 맞이하는 분들이 많은 것을 보게도 되고요. 항상 희망적인 자세. 저도 꼭 가져 볼려구요. ^^
그래도 녹내장 얘기는 아니었음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들어왔는데 흘흘흘
안과의사가 바라보는 안과적인 사망선고의 의미에는 역시...
시신경을 잃어가는 녹내장 케이스도 들어가는군요.
당뇨합병으로 오신 경우면 망막도 상하신 상태셨던거라 그러신건지 궁금하네요
그런데 역시 의사의 한마디는 아무리 혼잣말이라도 중요하더라고요.
진단서 끊을때 전공의 한사람이 시야검사결과 보면서 무심코
"아이고 많이 나갔네...."하고 던진 말에 혼자 며칠 맘고생했거든요.
(뭐 시야 많이 나간게 사실이긴 하지만 ㅋ)
그 친구야 무슨 의도가 있어서 한 말도 아니었지만
늘 "괜찮아 괜찮아 잘 유지하고 있어~" 라고 해주시던 담당교수님의 짧은 멘트가 얼마나
고마운 멘트였는지 여실히 느꼈답니다 ^^
녹내장이시라니 이런 저런 걱정을 하시고 계신듯합니다. 어느 질환이든 언제, 어느시기에 치료를 시작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치료를 시작하면 시신경 손상을 최대한 발생하지 않는 안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은 손상받을 수 있겠지만, 아주 실명에 이르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단, 당뇨로 인해 생긴 신생혈관 녹내장은 망막도 같이 좋지 않고, 안압조절도 쉽지 않기 때문에 치료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물론 신생혈관 녹내장으로 치료 받는 분들 또한 좋은 시력을 유지하고 계신 분들도 많이 있으니 늘 관심을 기울이면 걱정하시는 일들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지내시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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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러시군요. 말씀을 통해 저도 또 하나를 배워갑니다. 짧은 글이지만 호탕하신 성격이 느껴져서 좋기도 하구요. 앞으로도 많이 방문해 주세요. 제가 더 감사합니다.
어떤일이든 임하는 자세가 정말 중요한것 같아요~ㅋㅋ
언제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멋진 선생님이 되셨음 좋겠어요~*
어울리지 않는 한 줄을 쓸까 하다.. ^^
그래 보죠..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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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은 공개가 되어서 ^^;;;
신경과적 문제와 광역학치료(광레이져)는 문제가 되지는 않고요. 김안과에서 안과적 문제(망막, 녹내장)는 이전에 검사하셨던 병원에서 처럼 치료 받을 수 있습니다. 신경과는 계속 보시던 병원에서 보셔야 할 것 같구요. 진찰없이 이런 저런 설명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직 건성인지 습성인지도 결정되지 않았으니 검사가 먼저 일것 같습니다. 도움이 되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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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
병원에 오셔서 진찰받으시는 것은 원하시는 데로 하셔도 됩니다. 다만 녹내장도 망막도 눈의 질환이니 다른 병원에서 받으시면 중복 처방이나 서로 간과의 우려가 있을 수 있겠지요. 물론 한사람이 다 진료를 하면 더 좋겠지만, 서로 의지하는 관계로 ^^ 어떤 약을 쓰고 계신지만 양쪽 선생님이 다 알고 계신다면 문제는 안될 것 같습니다.
아스피린이 망막에 좋지않다는 말씀은 어느 분의 말씀에 의한 것인지 제가 알지 못하겠으나, 아스피린이 망막혈관이 막히는 질환에 사용되기도 한다고 말씀드리면 오해가 좀 해소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도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녹내장 질환에서도 신경세포보호 목적으로 아스피린을 사용해서 효과가 있었다는 보고도 있군요.
어떤 의미로 아스피린이 망막에 안좋다는 정확한 내용이 있으면 저에게도 좀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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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도 답글이 비밀글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가끔 드는데 ^^
오랫만에 방문 감사드려요. ^^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치료받고 계신 것도 축하드릴 일이고, 좋아지고 있는 것도 또 축하드릴 일이고, 가끔 오셔서 글 남겨 주세요. 저도 읽으면서 기분이 좋아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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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선고를 내린다는 것은 언제든 어려운 일이긴 해요. 그 선고가 치명적인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지요. 안좋은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냉정하게 보이니, 의사들은 더 냉정하게 비쳐지는 이유가 되겠죠.
사실 마음은 그렇지 않더라도 생각을 다 같이 공유할 수는 없으니 겉만 보면 차갑고 떄론 감정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요.
그렇다고 그럴때만 눈물을 흘릴 순 없으니..
그런 경험들을 자꾸만 하다보면 알게될 것 같아요. 현재의 최선은 무엇인지 난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오늘도 최선을 다 해봐야 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