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내장 이야기(13): '20대에도 녹내장이 생기나요?’
저는 이제 20대인데 녹내장이라니요?
근시가 있어서 어릴 때부터 안경을 쓰던 20대 대학생이 시력교정수술을 받으러 안과에 갔다가 녹내장이 의심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진료실을 찾아 왔습니다. 녹내장 정밀검사 결과, 양쪽 눈 모두 정말 녹내장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한 쪽 눈은 아직 초기 상태였지만, 반대 눈은 시신경이 제법 많이 약해져서 이미 시야의 아래쪽 절반 정도가 잘 보이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검사결과를 함께 보면서 ‘녹내장이 있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환자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저는 이제 20대인데 이 나이에도 녹내장이 생기나요?’라는 질문을 여러 번 했습니다.
젊은 사람에게도 생기는 녹내장!
녹내장은 눈 속에 있는 시신경이 점차 약해지면서 보는 범위가 조금씩 좁아지다가 말기에는 시력을 완전히 잃을 수도 있는 병입니다. 시신경이 약해지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높은 안압과 노화입니다. 따라서 나이가 들수록 녹내장이 생길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래서인지 왠지 녹내장이라고 하면 나이 많은 사람에게만 생기는 병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아기부터 10-30대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도 녹내장이 생길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 건강심사평가원의 2012년에서 2017년 자료를 바탕으로 지난 6년간 나이별로 녹내장 진료 받은 환자 수를 분석해봤더니 40세 미만 환자의 비율이 약 17% 정도였습니다. 즉, 녹내장 때문에 안과를 방문한 환자가 100명이라면 그 중 17명은 40세 미만(30대 이하)라는 뜻입니다. 생각보다 높은 비율인 것 같지 않나요?
그림 1. 녹내장환자의 나이별 분포. 40세 미만이 전체의 약 17% 정도 됩니다.
젊은 나이에 생기는 녹내장의 중요한 원인, 고도 근시와 녹내장 가족력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우리 나라에서 가장 흔한 ‘원발 개방각 녹내장(정상안압녹내장 포함)’을 기준으로 살펴본다면 젊은 나이에 녹내장이 생기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1) 고도 근시와 2) 녹내장의 가족력입니다. 근시는 말 그대로 가까이는 잘 보이는데 멀리 볼 때 잘 보이지 않아서 안경이나 렌즈를 써야 하는 상태를 뜻하는 말입니다. 사실, 몇 십년 전만 해도 초등학교에 안경 쓴 친구 있으면 신기하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안경을 쓴 친구가 더 많을 정도로 상황이 많이 변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층의 녹내장 환자 수도 계속 늘고 있습니다. 근시가 심한 눈은 근시가 없는 눈에 비해서 눈의 앞뒤 길이가 길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눈을 지지하는 구조물들의 두께가 더 얇고, 힘도 약해지기 마련입니다. 풍선을 더 크게 불수록 풍선의 표면이 더 얇아지고 터지기 쉬운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따라서 근시가 있는 눈은 근시가 없는 눈보다 시신경과 그 주변의 구조물들이 약해지면서 젊은 나이라도 시신경이 잘 손상받게 됩니다. 물론 근시가 있다고 다 녹내장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전 세계의 여러 연구들에 의해서 근시가 심할수록 녹내장의 발생 위험이 몇 배 이상 높아진다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근시가 녹내장 발생의 중요한 위험인자라는 것은 대부분의 녹내장 전문가들이 동의하는 내용입니다.
그림 2. 정시안(근시가 없는 눈)과 고도근시안의 모양 비교. 근시가 있는 눈은 앞뒤로 길이가 길어지면서 시신경이 당기고 비틀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시신경유두 모양을 사진으로 찍어보면 근시가 없는 눈은 동그란 도넛 또는 반지 모양인데 고도근시가 있는 눈은 타원형으로 찌그러져있고, 방향도 뒤틀려 있습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시신경이 손상되어 녹내장이 발생하게 됩니다.
젊은 나이에 녹내장이 생기게 되는 또 다른 중요한 위험요인은 녹내장의 가족력입니다. 사실 부모가 녹내장이 있다고 자녀가 녹내장이 다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유전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지만 그래도 가족력이 없는 사람보다는 상대적으로 녹내장의 발생 위험이 높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녹내장 검진을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원발 개방각 녹내장 이외에 다른 형태의 녹내장도 젊은 나이에 생길 수 있는데 1) 아기 때부터 눈의 발생에 이상이 있어서 안압 조절이 정상적으로 되지 않는다면 선천 녹내장이 생길 수 있고, 2) 젊은 나이에 당뇨가 있다면 신생혈관녹내장, 3) 류마티스질환 등이 있다면 포도막염에 의한 녹내장, 4) 스테로이드 같은 약물을 오래 사용한다면 스테로이드 녹내장, 5) 눈을 다친다면 외상에 의한 녹내장 등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녹내장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은 조기 발견!
‘나는 고도근시가 있는 20대 대학생인데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생각이 들겠죠. 사실, 녹내장이 실명까지 될 수 있는 병인 것은 맞지만 녹내장의 종류, 발견 시기, 대처 방법에 따라서 예후가 많이 다릅니다. 만약 녹내장 종류가 독한 종류가 아닌 일반적인 형태(예를 들면, 정상안압녹내장)이고, 초기에 잘 발견을 해서, 꾸준히 잘 치료 받는다면 실명까지 가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특히 고도근시 때문에 생긴 녹내장은 다른 형태의 녹내장보다는 악화되는 속도가 빠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혹시 나에게 녹내장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우선 안과를 방문하여 안압측정과 안저검사만 받아봐도 대부분의 경우는 어느 정도 감별이 가능합니다. 그 단계에서 애매하다면 추가로 정밀 검사를 받으면 됩니다. ‘나는 눈에 크게 불편한 증상이 없으니 검사 안 받아도 되지 않을까요?’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녹내장은 초기에 특별한 증상이 없습니다. 실제로 녹내장을 진단 받은 사람들이 녹내장을 알게 된 경로를 분석했더니 대부분 다른 증상 때문에 우연히 안과를 갔다가 발견되거나 건강검진을 통해서 발견되었습니다. 따라서 증상으로 녹내장 유무를 판단하지는 않기 때문에 나의 불편함과 상관 없이 안과 검진을 받아야 합니다.
그림 3. 안과에서 녹내장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서 시행하는 세극등현미경을 이용한 안저 검사(좌)와 안저 사진(우) 검사 장면. 눈이 조금 부실 수 있지만 힘들거나 아프지 않고, 해롭지도 않습니다. 유치원 다니는 어린이들도 씩씩하게 잘 받는 검사들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안과 검진
‘우리 아이는 언제부터 녹내장 검사를 받으면 될까요?’ 녹내장이 있는 환자들이 제일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근시의 정도나 안압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너무 어릴 때부터 무리해서 할 필요 없이 초등학생, 중학생 시절까지는 일반적인 안과 검진 정도만 받아도 되고, 조금 더 자세한 녹내장 검사는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시절부터 시작해도 될 것 같습니다. 실제로 녹내장이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시절에 생기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부모가 자녀에게 눈건강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중 하나가 안과 검진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어릴 때 안저사진을 잘 찍어둔다면 그 사람의 소중한 평생 자산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녹내장의 핵심은 시간이 지나면서 시신경이 점점 약해지는 것인데 그것을 평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예전의 상태와 비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찍어 놓은 사진 한 장이 몇 십년 뒤에 결정적인 단서가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20-30대에는 녹내장이 생기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 때문에 녹내장 검사를 받을 생각을하지 못하고 그냥 지내다가 40-50대가 되어서 이미 시신경이 많이 손상된 상태에서 녹내장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그래서 초기 상태에서 더 나빠지지 않게 열심히 치료 했더라면 훨씬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무쪼록 젊다고 막연하게 안심하지 마시고, 한 번쯤 시간 내셔서 녹내장 검사를 꼭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특히, 고도 근시가 있거나 녹내장 가족력이 있다면 녹내장 검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사실, 꼭 기억해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