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대만의 정식 명칭은 중화민국이지만 국제적으로는 거의 쓰이지 못하는 명칭이기도 하다.
보통 양안문제라고 부르는 대만과 중국의 관계 때문인데, "하나의 중국" 정책으로 대만과 중국을 동시에 수교할 수 없고 중국과 수교를 하는 경우 중화민국이라는 명칭을 쓸 수 없다. 사실 이건 현재 중국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전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 역시 동일한 정책이 있었다. 덕분에 현재 대만과 정식으로 수교하고 있는 나라는 극히 일부이며 대신 대표부를 두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양측 모두 양측 영토 모두가 중국이라는 것은 인정하고 있지만 어느 쪽이 합법적인 정부인가에 대한 논란이어서 우리 남북문제와는 좀 다른 형태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아무튼 현재 대만은 타이완이라는 섬만을 실효지배하고 있고 타이베이가 사실상의 수도(법적 수도는 난징이다)역할을 하고 있다.
1992년 우리나라가 중국과 수교하는 시점까지는 장제스의 국민당정부 시절부터 사이가 좋은 편이었다. 실제 장제스는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을 지원해 상해 임시정부 수립에도 도움을 주었고 그런 도움 덕분에 대한민국 건국 공로 훈장이 수여되기도 했다. 92년 단교후 대만은 유독 우리나라에 대한 배신감을 실제로 드러냈는데 우리나라 이전에 중국과 수교를 위해 대만과 단교한 나라가 하나 둘이 아니고 (그 중엔 미국은 물론, 대만이 사랑해마지 않는 일본도 있다) 유엔에서 탈퇴한 나라와 유엔 상임이사국인 나라 중 유엔 가입국인 우리나라가 어디와 수교해야 할지는 명백한데다가 대만인들 스스로도 그러한 사실을 알고있음에도 유독 우리나라에 대한 비난이 높았던건 단순히 배신감 때문은 아닐 것이다.
현재는 우리나라 거의 모든 지표에서 대만을 따돌린 상태이며 그런 우리나라에 대한 배신감이나 라이벌의식도 이미 희석되어 반한 감정은 많이 사라진 상태이고 우리나라와 가까워 비행기 시간이 짧고, 치안이 좋은, 대중교통이 편리한, 다양하고 특색있는 요리를 즐길 수 있는, 상대적으로 국민감정이 악화되었던 시기 중국을 대신하는 여행지로 인식되어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의 1/3 정도 크기의 땅에 대부분이 산지여서 도시들이 해안선을 따라 섬을 빙 두르는 형태로 발달 해왔고 그 중 북부에 있는 타이베이 현이 우리가 이번에 방문한 지역이다.
병원에서 대만을 다녀올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주어 3박 4일간 길진 않은 기간이지만 대만을 방문할 수 있었다. 대만 타오위안국제공항을 나서자 뜨겁고 습한 열기가 일행을 반겨주었고 차량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 받은 첫 인상은 분위기가 왠지 일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주린 배를 대만의 유명한 우육면으로 채우고 방문한 첫번째 방문지가 국립고궁박물원 이었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용산국립박물관 정도 포지션 인듯 했다. 이 곳에는 국민당정부가 타이완섬에 들어올 때 청나라 유물을 부지런히 챙겨온 덕분에 청나라 유물들을 다량 보유/전시하고 있으며 몇년마다 순환 전시한다고 한다. 고궁박물관이라는 이름답게 청나라 황실 유물이 다량 전시되어 있어 화려하고 복잡하게 세공된 황실 유물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타이완섬은 중국의 역사에서 변두리 중에서도 머나먼 변두리였고 국민당 정부가 대만에 자리잡는 시점부터가 타이완섬의 역사 시작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어서 무슨 오래된 문화 유적이나 볼거리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오래된 관광지라면 풍화작용으로 생긴 기암괴석이 있는 야류해양공원 정도 일까? 다만, 이렇게 국민당 정부가 챙겨온 유물들을 볼수 있고 어차피 본토에 뒀다면 문화대혁명으로 싹 없어졌을테니 오히려 더 많이 가져오지 못한 게 아쉽게 느껴질 정도다.
화려한 중화요리로 저녁을 먹고 난 후 주변에서 유명하다는 여러 야시장들 중에서도 유명한 스린 야시장을 방문했다. 취두부향이 골목골목에 스며있는 야시장을 골목길에 수많은 가게와 노점들의 음식들을 둘러보며 야시장을 배회하다보니 예전 홍콩영화에서 보던 홍콩 뒷거리를 거니는 느낌이다. 이름을 알수는 없었었지만 길게 줄이 서 있는 닭요리와 버섯요리를 맛보고 나니 어느새 해가 기울기 시작한다. 한국보다 1시간 늦은 탓인지 시간상으로는 한국보다 좀더 일찍 해가지는 느낌이었다. 석가모니의 머리를 닮아 석가라는 이름의 열대과일로 하루를 마무리 하고 호텔에 체크인 했다.
대만에서 맞는 첫날, 그대로 보낼 수는 없어 좀 피곤하지만 몇몇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타이베이 밤거리를 둘러보고 맥주 한잔 하기로 하고 길을 나선다. 숙소가 시내 중심가에 있어서 인지 길도 깨끗하고 도로도 넓지만 묘하게 일본처럼 넓으면서 좁은 느낌이랄까. 도로는 가로수가 있는 중앙분리대까지 넓은데 각각 차선이 좀 협소한 느낌. 그 마킹들이나 신호등도 일본 스타일. 뒤로 보이는 한자 간판들을 보고 있으니 진짜 오사카 같은데 와있는 느낌이다. 조금 걸어가니 지하철? MRT 역사가 나오고 번화한 백화점들과 상점가가 나온다. 이런 곳 뒷편엔 꼭 주점들이 있기 마련, 그리 어렵지 않게 홈브루 맥주를 파는 주점을 찾아내 맥주 한잔으로 대만의 첫날 밤을 기념했다.
한참 높던 반한감정이 사그라든 지금은 반대로 대만의 젊은 층에는 한류가 깊이 파고 들었다는 것을 이 곳에서 실감할 수 있었는데. 둘러보면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가게는 아닌 것 같은데 서빙하는 젊은 직원들은 여럿이 간단한 한국어를 구사하고 한명은 진짜 놀라운 수준으로 한국어를 한다. 놀랍고 신기한 마음에 몇마디 나눠 보았는데 한국에 관심이 많아서 스스로 공부했다고 한다.
그렇게 맞은 둘째날 아침. 1시간의 시차는 없는 것과 다름없다고들 하는데 밤엔 현지시간으로 자고 아침엔 한국시간으로 눈이 떠지다 보니 평소보다 늦게 자고 일찍일어나게 되니 피로가 좀 쌓이는 느낌이 있다. 그리고 간 곳은 광부도시 진과스의 황금박물관과 그 아래에 있는 대만 여행의 필수코스라는 지우펀.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끼 하야오의 대표작중 하나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온 도시가 이곳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해서 유명한 지우펀. 복잡하고 수많은 가게들이 모여있는 장소다. 한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고 몇가지 대만에서 유명한 크래커와 젤리등을 파는 곳이기도 하다. 물론 한국인들이 왕창 사가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곳곳에 한글 간판과 안내판이 붙어 있고 한국어 호객도 심심찮게 들린다. 명물이라는 땅콩 아이스크림 하나를 손에 들고 느긋한 마음으로 둘러보았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타이베이 북쪽 해안 지롱에 위치한 야류해양공원. 위에 잠깐 언급했듯이 수천만년 전부터 파도와 바람의 침식 풍화작용으로 기기묘묘한 형태의 석회질 바위들이 만들어진 곳이다. 자연이 깎아 놓은 조각품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바위들은 현재도 풍화작용이 계속 이뤄지고 있어서 지금도 자연의 조각은 계속 진행중인 상황이라고 한다. 이집트의 여왕을 닮았다는 조각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공원을 둘러볼 수 있었다. 종종 시원한 바람이 불어 이 바람이 바위들을 조각하는 조각칼이려니 하는 생각을 해봤다.
조각들을 둘러보고 유명한 대만 커피 체인에서 소금커피(Sea Salt Coffee)를 마시며 잠시 더위를 식히고 나서 해산물을 주로 한 중식요리로 배를 채운 후 천등 날리기로 유명한 스펀으로 향했다. 스펀은 대만 신베이 시에 있는 작은 시골역이 있는 마을인데 마을 중간으로 철도가 지나는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고 특히 천등 날리기로 유명한 지역이고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라던가 '꽃보다 할배 대만편'에서 소개되었던 곳이어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와 매일 수도 없이 많은 천등을 날리는 곳이다. 철로 위에서 각자 소원을 적은 천등을 날리고 하늘로 올라 주변 산들의 골짜기로 날아가는 천등들을 보면서 문득 화재나 환경오염 문제는 없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뒤에 알아보니 500미터 쯤 날아가면 감싼 종이(인지 천인지)가 타고 살만 남아 떨어지고 이걸 주워 모아서 재활용하며 가게들 모두 화재보험을 들어놨다고 한다. 아마도 불이 날 때가 있긴 있는 모양.
천등을 날리고 한시간여 차량으로 이동해 타이베이로 돌아와 역시 유명하다는 발마사지를 30분간 받았다. 그렇게 한결 시원해진 발로 저녁 식사 시간을 갖고 숙소로 돌아와 2일째 일정을 마쳤다. 물론 그대로 잘수는 없는 노릇이라 몇명과 함께 다시 시내로 향했다. 요즘 대만에서 핫하다는 버블티 가게에 들러 버블티 한잔을 마시고 나온 김에 마트에 들러 기념품을 구입했다. 파는 물건들은 조금 다르지만 어디나 크게 다르지 않는 마트는 해외여행시 쇼핑 필수 코스이다. 그리고 숙소에 돌아와 지친 몸을 뉘일 수 있었다.
3일째가 되니 피로가 누적되는게 느껴진다. 가이드도 그걸 알았는지 투어 출발 시간을 조금 늦췄다. 타이베이 시내의 중정기념당. 중정기념당은 초대 총통인 장제스를 기리는 기념당이다. 결과적으로는 국공내전으로 타이완으로 밀려나긴 했지만 대단한 인물인건 확실한 장제스의 사망후 그를 기리기 위해 만든 곳이다. 매시각 정시에 근위대 교대식이 있어서 이를 구경하기 위한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기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중점기념당에는 국립희극원과 국립음악청이 전통 건물 형태로 있어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한다. 근엄한 표정의 근위대와 절도있는 교대식을 구경하고 우리는 단수이로 향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이 단수이 위런 부두. 원래는 석양과 야경이 멋진 곳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도착한 햇빛이 쨍쨍하다 못해 부서질 것 같은 대낮. 햇빛 아래로 나갈 자신이 없어 그냥 그늘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작은 유람선을 타고 단수이강을 건너 봤다. 왠지 적막한 강위를 배를 타고 건너고 있으니 다른 세상에 온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밀크티 한잔을 테이크아웃하고 단수이 지역에서의 자유시간. 몇몇과 함께 근처 상점들을 둘러보고 발마사지를 한번더 받기로 했다. 인터넷을 통해 단수이를 지나갔던 많은 한국인들의 기록을 찾아서. 역시나 우리처럼 여기에 왔다가 발마사지를 받고 싶었고 실제로 받았던 사람들이 여럿 있어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타이베이로 돌아와 세계에서 8번째인가로 높다는 101타워를 방문했다. 올해가 끝날때 쯤이 되면 10위가 된다나 하는 101타워의 설명을 듣다보니 예전 63빌딩이 생겼을때 소풍가 들었던 63빌딩 설명들이 생각이 났다. 바람에 조금씩 흔들리고 세계에서 아시아에서 몇번째로 높고 초고속 엘리베이터가 몇십초만에 전망대에 도달한다라거나 하는 그런 설명들. 89층과 92층에 마련된 전망대에서 아름다운 타이베이의 야경을 보며 인증샷을 남기고서야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저녁을 먹으러 이동했다. 북경오리를 비롯한 중화요리로 배를 채우고 호텔로 돌아오니 오늘이 마지막 밤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진다. 다시 몇몇과 함께 일전에 찾아놨다가 가지 않았던 다른 주점에 가보기로 했다. 시원한 생맥주와 적당한 안주,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면 시간이 참 빨리 가기 마련. 그렇게 우리의 대만에서 마지막밤이 저물었다.
그리고 마지막날. 짐을 챙겨 천천히 나온 우리 일행이 향한 곳은 스린관저, 장제스와 그 부인이 살았던 사택이지만 주변이 아름다운 정원으로 꾸며진 터라 많은 관광객들이 산책하며 사진을 찍는 명소가 됐다. 마지막으로 단체사진을 한번 더 남기고서 점심을 먹고 다음으로 향한 곳은 시먼딩(서문정거리). 시먼딩은 서울의 명동이 생각나는 번화가였다. 자유시간을 갖고 수많은 인파가 북적거리는 시먼딩에서 유명하다는 아종면선의 곱창국수를 먹고 망고빙수도 먹어 봤다.
그리고 우리는 귀국을 위해 타이베이 타오위안국제공항으로 향했다.
대만은 여러가지 면에서 우리나라와 비슷한 나라이고 한때 우리나라의 경제적인 라이벌이기도 했으며 앞으로도 좋은 파트너 국가가 될 수 있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양안문제가 어떻게 해결될지는 알수 없고 과거 반한 감정이 깊기도 했으며 어디보다 일본과 친밀한 국가이지만 지금 젊은 세대들에겐 그런 인식이 별로 남아있지 않을 것 같고 어디보다 한류의 영향을 받는 나라이기도 하며 치안이 좋은 나라인데다 현재 중국이 패권화가 이대로 계속 된다면 아무래도 예전 사드문제처럼 우리나라와 마찰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 중국을 대신하는 관광지로서도 그렇고 거리가 가까운 만큼 앞으로 양국간 교류는 그것이 민간부문에 한정하더라도 더 많아질 것으로 생각된다. 대만은 작년 우리나라 여권 소지자들의 경우 자동출입국심사를 통해 입출국할 수 있도록 지원할 정도니까.
비록 3박4일간은 짧은 일정이었지만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대만이라는 나라를 살펴보고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에 이 글을 빌어 이런 기회를 주신 김안과병원 김용란 병원장님과 관계자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