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Filed under 옆방eye : 객원블로거

2009년 11월 캄보디아를 다녀와서......


해외 의료봉사라는 것을 처음으로 한 번 따라가 보게 되었습니다.

의대에 진학하려는 아들에게 해외 의료봉사 경험을 갖게 해 주기 위해, 같이 봉사 나가는 친구(산부인과의사 이승)와, 그 친구를 김안과병원 해외 의료봉사 팀에 소개한 친구(안과의사 김호겸)를 따라, 항시 특별한 일이 없는 저는 소위 ‘깍두기’처럼 쭐레쭐레 따라 나섰습니다. 이 둘은 저와 같은 중고등학교, 같은 의과대학, 군 동기 그리고 전문의 과정을 연세의료원에서 같이 받은 오랜 친구입니다. 모두 김안과병원 김성주 원장의 대학 선배가 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앙코르와트로 유명한 캄보디아 시엠립이란 도시에 조계종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이 있더군요. 시설, 환경이 얼뜻 보아 해외 유명 리조트를 연상케 할 정도로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웬만한 병원보다 시설과 장비가 좋은 김안과 병원에서 지은 안과 수술실 건물이 따로 있어 놀랐습니다.

1. 도착한 날 밤 새벽까지 잠을 못 이루었습니다. 밤하늘의 별이, 건빵 속에 든 별사탕만큼이나, 커 보였습니다. 북두칠성, 카시오페아, 오리온좌, 그리고 은하수도 보았습니다.

2. 첫날 아침. 7시 반부터 환자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일 년 전에 병원을 그만 둔 저로서는 오랜만에 하는 의사 짓이었습니다. 산부인과 환자보다는 일반 환자가 더 많았습니다. 첫날 150명 이상 환자를 본 것으로 기억합니다.

3. 둘째 날, 아침 8시가 되자 환자가 밀렸다고, 빨리 나오라는 재촉 받았습니다.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환자가 몰렸더군요.
한국 교포를 위한 의료 상담도 했습니다. 당장 필요하진 않지만 혹시 앞으로 필요할지 모르는 비상약 얻으러 온 것 같았습니다. 이 약, 저 약. 그리고 나중엔 파스까지 달라고 하더군요.------ 저는 냉정히 거절했습니다.

4. 셋째 날, 아껴 투여했지만 준비해 갔던 약이 거의 다 떨어졌습니다. 시내의 약국에 가서 필요한 약을 새로 샀습니다.

5. 넷째 날, 지역 보건센터에 가서 환자를 보았습니다. 거기엔 의약품이 좀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검진대 외엔 정말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장비와 의약품을 요청했더니 스페큘럼이란 여성 성기 검진기 하나와 소독도 안 된 솜 댓조각 주고 끝입니다. 모든 여성의 몸에 하나의 스페큘럼이 들락날락해야 합니다.

오전 진료 끝내고 나오는데 휠체어 탄 여자가 구걸합니다. 발등에 상처가 깊습니다. 치료부터 해주다가 보니 다리뿐 아니라 전신에 욕창이 생겨 있습니다. 엉치 부위는 살이 다 파여 뼈가 보입니다. 다리는 퉁퉁 붓고 몸엔 열이 있습니다. 3개월 전에 애를 낳고 이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의식 없는 상태에서 팔다리 묶고 방치 했던 것 같습니다. 남편은 달아 나버리고, 5일 전 보건센터에서는 강제 퇴원 시켰고, 집에 갈 돈도 없어 구걸 중이라고....... 통역하던 캄보디아 여자가 그만 울어 버리더군요. 같이 치료하던 친구도 얼굴을 돌리고........ 상처에 소독약 바르고 거즈로 덮는 정도 밖에는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더군요. 남은 항생제와 소염제를 모두 그녀에게 주었습니다. 돌아 서는 저희에게 그 환자는 두 손을 모아 감사 표시를 했습니다. 진정으로 저희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것을 그녀의 눈빛을 통해 읽을 수 있었지만 차마 눈을 마주치지는 못했습니다. 저 역시 울 것 같아 그랬습니다. 낯선 외국에서 낯선 환자의 고통에 눈물 흘리는 의사의 모습..... 너무도 상투적인 멜로드라마 같다고, 마음을 억지로 다잡아 맸습니다.

이런 꼴 대한민국에서 안 보려면,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야겠습니다. 박통이 있던 것이 우리 국민에게 얼마나 큰 행운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런 꼴 나지 않기 위해 개인의 자유를 어느 정도 구속해야 한다면 나의 자유는 얼마든지 유예해도 좋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6. 다섯, 엿새 째 날, 더 이상 환자 보기를 포기 했습니다. 의약품이 남아 있질 않았습니다. 더 이상 환자를 본다는 것은 사기입니다.

7. 캄보디아 사람들.......
깜짝 놀랄 정도로 예쁜 애들이 많았습니다.
고아원의 공중변소 앞에 얌전히 신발을 벗어 놓고 화장실에 맨발로 들어갑니다. 손님이 집주인에게 보이는 예의 표시라고 합니다.
한 번도 떠들거나 소란스러운 꼴을 보지 못했습니다. 너무나 얌전하고 조용한 민족입니다. 하루 종일 땡볕에서 기다리다가도, 진료 끝났다고 하면 아무 불평 없이 돌아 섭니다. 네 시간 거리를 달려 온 환자도 그러 합니다. 50여명이 마지막 날까지 기다리다가 두 눈이 다 보이지 않는 사람만 남으라 하자 서너 명의 환자만 남고 나머지 환자는 넉 달 뒤 진료 예약표만 받고 말없이 돌아섭니다.

30년 전 이러한 민족성을 가진 국가에서 700만 인구 중 200만 인구가 죽었다고 합니다. 월남전 여파도 있었지만, 많은 국민이 폴포트 정권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고 합니다. 글을 아는 사람, 외국어 하는 사람, 손이 고운 사람은 다 죽였다고 합니다. 애는 가시나무에 던져 죽이고, 어른은 목매 죽이고, 부모 자식을 서로 보는 가운데 죽였다고 합니다.
사람이 미치면, 국가가 미치면 ........... 정말 무서운 것 같습니다.

8. 왜 해외 봉사를 하는가?
우리나라에도 굶는 사람 있습니다. 그런데 ‘왜 외국에 가서까지 그러는가?’ 하는 의문에 대해, 여지껏은 확신이 없었지만, 이번 경험으로 김안과병원의 생각에 많은 부분 수긍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좀 더 생각해 볼 예정입니다.

끝으로 좋은 경험을 하게 해준 김성주 병원장님과 봉사팀, 현지 조계종 산하 고아원 직원 분 들께 감사 드립니다.

2009년 12월
산부인과의사 이원영

2009/12/18 09:32 2009/12/18 09:32

멋진 분들이십니다. 이런 환자들을 위해 본인의 자유를 유예당하시겠다는 그 말씀. 감명 깊습니다. 이런 글, 블로고 스피어에서 잘못 걸리면 벌데처럼 달려들어 물어뜯으려고 하는데 저는 오늘 용기를 배웁니다.

marta

뉴스나 인기연예인들에 의해서 접해지던 소식을 이렇게...
어찌보면 연예인들 보다는 현실적으로 저희들 하고 좀 더 가깝게 느껴지는 의사 선생님들의 경험담을
블로그를 통해서 접하니... 현장의 모습들이 피부로 와 닿는것 같아요...
정말 옛날 박대통령 시절이 그립습니다....(공감)....ㅎㅎㅎ

뜻있는 봉사 많이 해주세요...국위 선양 이니까요...

한때는 테리우스 ^^;

더욱 많은 분이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이원영 선생님, 이승 선생님, 김호겸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하나만물을게요

우연히 검색으로 블로그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만
현재 비의료인이지만 이런 의료봉사에 관심이 있는데
이원영님의 아드님처럼 의료봉사에 참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혹시라도 (내년에 또다시 열린다면)
이 봉사활동에 참가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
답변 부탁드립니다ㅎ

지나가는행인

ddd

한때는 테리우스 ^^;

김안과병원 사회사업부 김미영 직원과 상의 하심 될 것 같습니다.
대표전화는 2639-7777입니다.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

마이뽀

의약품들이 모자란게..너무 안타깝네요... 얼마전에 방영된 단비라는 프로그램에서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위해 우물을 파주는 프로젝트를 보면서...얼마나 기쁘고 눈물이 나던지.... 저도 머지않아 꼭 기회를 만들어 동참하겠습니다..^^

에젠

봉사내용도 좋은데,,,,정말 참 글도 잘 쓰십니다..불필요한 부분 없이 절제되게 쓰신것 같은데도
딱딱 맘에 와닿는,,하지만 지나치게 감정적이지도 않고,,,^^

교환소녀

귀하신 봉사의 손길 소중한 글 한마디 한마디가 뭔가를 일깨워 주는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Powered by Textcube 1.10.8 : : Tempo primo
Persona skin designed by inureyes, bada edited by LonnieNa, ba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