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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옆방eye : 객원블로거

* 이 글은 국립재활원에서 발행하는 '재활의 샘' 책자에 '저시력 재활의 조건' 이라는 제목으로 필자가 기고한 글입니다. 저시력인 재활의 활성화를 위해 나아갈 방향을 저시력인의 입장에서 모색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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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DHDesign

"딩동, 오후 아홉 시입니다."

음성시계가 떠버리고 나면 TV가 뉴스를 하겠노라 시그널이 요란하다. 내 방 TV야 보자고 놓아둔 것이 아니고 듣기라도 하자고 놓여진 것, 청취 할 동안의 일감을 찾는다. 그 중 하나가 손톱 갈기, 쓰레기통과 화장대의 손톱줄을 가져온다. 화장대라니, 거울은 보이나? 매무새를 비추겠다는 거울이 아니라, 더 이상 가까이 다가오면 깨지고 말겠다는 겁이나 주느라 번득거리며 버티고 서있다. 어쨌거나 이 저녁에도 매끈하게 손톱을 간다.
 

도대체 누굴 할퀴려고 그렇게 날마다? 손을 눈앞에 바짝 갖다대도 손끝이 보이질 않는다. 손이 거기에 있다는 건 알겠는데 어디 쯤이 끝인 줄은… 전에는 남의 손을 빌려서 깎았지만, 미용사 말고 내 마음에 들게스리 깎아주는 이는 가뭄에 콩. 예쁘게를 바라는 호사 따윈 버린지 오래 되었다. 바우처 제도가 파견한 50대 후반 도우미의 콧잔등 끝 돋보기 아래 굼뜬 손놀림이 괜스레 불안했다. 그래서 개발해낸(?) 나의 손톱 갈기 생활재활, 미용사가 곱게 다듬어준 손톱을 날마다 슬근슬근… 이런 식의 나만의 자가재활, 제법 여러 가지가 된다. 한참 전에는 고기를 고르게 굽느라고 얼굴이 팬에 닿을 지경으로 들이밀었다. 지금은 단 한번의 조리로 웰던, 미디움에 레어까지 몽땅 골고루 즐기고 있다.  익은 건 익은대로, 선 것은 선대로, "그래- 바로 이 맛이야!" 이게 어디 나만의 이야기이랴, 장애인이면 누구나 다 세월 속에서 이런 자가재활을 개발해 내는 것을.


저시력인의 재활, 시기능을 강화하고 여러 종류의 편리한 보조공학 기기들을 갖추어 정안인 못지않은 활기찬 삶을 누리도록 한다. 사전에 그리 쓰여있을지 모른다. 복지 지상주의자들만 줄줄이 대통령에 당선 되어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최상의 복지국이 된다고 치자. 모든 학교와 보건소 및 병원에는 언제라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시기능 강화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고; 정부가 팍팍 지원하여 세계 초일류의 보조공학 기시들이 샘물처럼 좔좔 쏟아져 나오고; 기초생활 수급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든 이 모든 보조기들을 부담 없는 가격에 구입할 수 있고; 우수한 두뇌로 소문난 한국인이다. 저시력인 저마다는 혀가 내둘리는 자가재활 개발자… 이만하면 이 땅은 저시력인의 유토피아? 단언컨대, 결코 절대로 아니다. 불행하게도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해버린 탓에. 갈고 닦은 재활이 미처 펼쳐지기 전에 된서리를 맞고 오그라든다 우리 사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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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날의 내 시력은 좌우 1.2, 귀밑 솜털이 아직 포시시 하던 중학생 때 발병한 망맥락막염. 남들 감기 앓듯 걸핏하면 앓던 공막염, 홍채염, 모양체염, 염염염... 병이 병을 불러들여 연이어 앓게 된 녹내장, 백내장의 내장 시리즈에 안출혈도. 이렇게 안질 진열장으로 희미한 45년을 살고 있지만, 내가 장애인이라는 걸 알게 된지는 고작 10여 년 남짓하다. 나를 중국문제 전문가로 소개하던 언론이 슬그머니 장애인으로 고쳐 소개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1960년대, 배를 곯지만 않으면 '유복'이던 시절이다. 우리말 큰사전엔들 재활이니 복지라니 하는 게 있기나 했을까?. 내가 재활의 '재' 자도 몰랐단 건 옛날이라서? 오늘의 이야기를 해볼 참이다.


13세 아들을 데리고 한 엄마가 나를 찾았다. 아이는 학교생활 부적응 상태. 사용할만한 보조기들을 알려준 뒤 통합교육과 특수학교의 장단점, 저시력인이 도전해 봄직한 직업 등등 다양한 이야기를 제법 오랫동안 나누었다. 연신 눈물 콧물 닦아내던 아이의 엄마가 잠시 손 씻으러 나간 사이, 내내 고개 떨구고 있는 아이가 입속말로 중얼거렸다. 이 아이가 세상 구경하기 훨씬 전의 유행가일 텐데, "나는 어쩌다 태어나와…." 엄마 속을 썩이는지 안타까워했다. 두렵도록 일찍 철들어버린 이 가여운 13살 아이에게 내가 무성영화 시절의 변사란들 무슨 말을 어떻게… 명치 끝이 뻐근해왔다. 이후로 저시력 아이를 둔 엄마를 만나면 빠트리지 않는 당부가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가 보는 앞에선 절대로 울지 마세요. 절이나 성당에 가서 혼자 우세요."

장애 아이를 기르는 엄마가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도 큰일이지만 '당당'이 지나쳐 예서나 제서나 좌충우돌, 이것 또한 보통을 훨씬 넘는 일이다.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라는 엄마가 아랫녁에서 올라왔다.

"눈 나쁜 아이를 낳은 게 무슨 그리 죽을 죄라고, 학교 갈 때마다 선생에게 머리 조아리며 잘 부탁한다고 빌빌거려야 합니까?  존심 상해서 정말 못살겠어요."

지금도 많이 불편하고 앞으로도 죽 불편해야만 할 아이, 바로 그 내 아이를 위하여 엄마는 자존심을 얼마만큼까지 버릴 수 있을지, 버려야만 하는지를 진지하게 토론했다. 얼마 뒤 이 엄마가 보내온 메일은, 서로 손을 잡고 등교하는 이 모자를 한 떼의 학부모들이 빙 둘러싸고 다른 학교로 전학 가라고 아우성치는 참담한 광경을
적고 있었다. 아이는 엄마로부터 당당을 배웠을까? 엄마 때문에 더욱 더 기가 죽지는 않았을까?

>> 2편에 계속

손톱가는 여자 - 저시력 재활의 시작 1편 
손톱가는 여자 - 저시력 재활의 시작 2편 
손톱가는 여자 - 저시력 재활의 시작 3편 
손톱가는 여자 - 저시력 재활의 시작 4편 (마지막)


 미영순
시각장애 1급 / 전국저시력인연합회 회장
정치학 박사 / 중국 흑룡강성대학 객원교수

2008/04/23 11:52 2008/04/23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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