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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옆방eye : 객원블로거


♡ 저시력인이 길을 물으면 말로 정확하게 알려 주세요 ♡


뒤로 돌앗! 앞으로 갓! (2)


길 묻기가 나에게 이미 타성이 돼버린 듯하다.
 결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각오가 있다면 혼자서 찾아 봄직할 때에도 남에게 묻곤 한다.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워 긴장하기가 싫어서 그런가 보다. 낮에 그런 일이 있던 날이면 초저녁부터 물 먹은 솜처럼 흐느적거리다가 9시 뉴스를 듣다말고 곯아떨어진다.

그래서 대로변의 은행처럼 뻔한 곳조차 일일이 물어본다.

한 번은 은행 문 바로 앞에서, 점심 들러 가는(먹고 오는) 직장인으로 뵈는 30대에게 은행을 물었다.. 한낮에는 아직도 더운 9월 말께, 그 젊은이는 셔츠 바람에 넥타이도 헐렁하게 매고 있었다. 내 나이로 보아 문맹일 것 같지는 않고, 말씨를 들어 외국인은 아니고,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대답 대신 실험 결과를 살펴보는 과학도의 얼굴을 짓고는 여러 차례 아래 위로 나를 훑어보았다. 하는 양이 불쾌하다기보다 귀엽고(?) 재미있어서 장난스럽게 웃어 주었다. 그는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아주 심각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며 부어터진 소리로

“이것 아닙니까?”

이 친구 왜 이렇게 심각하지? 내가 정신병자로 보였을까? 길 가다가 잘난 사내만 보면 꼬리 쳐는 바람둥이 과부로 보였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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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였을라나? ^^



칼바람 매운 날엔 눈 뜨기도 어렵거니와 길 묻기도 어렵다.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급히 걷는 아저씨에게 길을 묻게 되었다. 얼굴이 검붉어 약주를 꽤나 즐기실성 싶은 5~6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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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저기!저기!!!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뭐요?” 대꾸는 하면서도 발은 계속하여 빠르게 전진 중. 나는 종종걸음으로 뒤쫓아가면서 길을 물었고, 이 아저씬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팔꿈치만 들썩거려 방향을 가리킨다. 그걸 내가 알아차릴 정도라면 애시당초 묻덜 않았다 않아. 달리 물을 사람도 없고 종종대며 쫒아온 공이 아까워서 다시 말했다.
 
“아저씨, 정확하게 좀 가르쳐 주세요.” 이 아저씨 갑자기 발을 딱 멈추더니 팔을 번쩍 들어,

“아 저기말요, 저기 저기 저기!”
그 목소리가 어찌나 사납던지 한 번 더 물었다간 따귀 맞게 생겼다.


나는 여름이고 겨울이고 모자 쓰기를 즐긴다.

멋 부리길 좋아해서가 아니고 망막을 보호해야 하고 또 머리 손질이 서툴고 귀찮아서다. 한동안 모자가 유행하기도 했고 이제는  모자 쓴 모습이 조금도 낯설지 않지만,  전에는 모자를 쓰고 나서면 모두들 곁눈질을 하며 희한해 하던 때도 있었다. 조금은 고급스런 모자를 쓰고 가다가 길을 묻게 되었다. 아주 정확한
표준어를 구사하는 순 서울네긴데 아저씨 대답이 걸작이다.

 “아이구, 우리말을 굉장히 잘하시는군요. 교포이신가요?”

모자를 쓴 사람은 외국인일 것이라고 짐작하던 오래 전,  그 아저씨는 짐작 때문에 귀마저 오작동?  내 말이 또박또박 빠르지는 않다만  교포라니, 자다가 웃을 노릇이었다.

집 살 것도 아니면서 주택은행을 찾아 나서게 되였다.
 
지하도를 나와 조금만 올라가면 있다길래, 말대로 ‘조금만’ 올라왔다 싶을 때 다시 물어보니 너무 많이 올라왔단다. 되돌아 걸으면서 이번엔 놓치지 않으려고 건물 하나하나마다 꼼꼼이 살폈는데, 어?! 도로 지하도 입구가 되고 말았다.
맥이 빠져 두리번거리다 보니 여나믄 발걸음 떨어진 곳에 구두닦이 알루미늄 부스가 눈에 들어왔다. 반가움 비슷한 마음으로 다가가서 주택은행을 물었다. 상대가 빛을 등지고 있으면 그의 얼굴은 그냥 까만 동그라미로만 보인다.

그런데 나는 밝은 밖에 있고 구두닦이는 그늘져서 어두운 안쪽에 있으니, 그가 “저기요.” 손가락질 하는 것이 보일 리 없다. 내가 오른손 왼손을 차례로 들며 “이쪽이요? 저쪽이요?” 했더니 그는 답답했던지 조금 더 큰 소리로 “아니~, 저기요 저기.” 하며 손으로 가리키는 듯했다. 하는 수 없이 눈 나쁜 사정을 털어놓으며 손으로 말고 말로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잠간 침묵하더니 갑자기 연병장의 조교라도 되는 양 큰 소리로,
 

“뒤로 돌앗! 10보 앞으로 갓!”


입에서 짧고 낮은 헛김 새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은행은 바로 내 등 뒤에… 목소리로 보아 20대를 넘지는 못했을 젊은이의 구령이 귀여워 나도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감! 사!” 내가 뒤돌아 두어 발짝을 옮겨 놓자 그가 다시 소리쳤다.  


“10보 전진 후 계단 조심!”

낯선 곳을 혼자서 찾아가자면 이처럼 열 걸음에 한 번씩 길을 물어야 하니, 그러니 소요 시간이 남들의 서너 배가 넘는다.

나에게 걸려든(?) 사람은 귀찮겠거니와 나라고 즐거우랴. 그렇다고 방 콕만 할 수도 없고, 보행 비서를 거느리고 다닐 주제도 못 되고, 느는 건 ‘뻔뻔’ 뿐이다. 제대로 보지도 못하면서, 꼭 가야 할 곳만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가벼운 등짐 짊어지고 팔도강산 넓지 않다 잘도 돌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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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야 철가면~



용기가 대단하다며 놀라워 하는 이도 있고, 내 ‘뻔뻔’을 격려해 마지않는 이도 있다. 나는 앞으로도 쭈옥 열심히 쏘다닐 게 틀림 없고, 수천 번 수만 번 길을 묻게 될 것이다. 오랫동안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이 만날지… 

초등학교에서 배운 ‘파 한 뿌리’의 적선이 있다. 나에게 길을 가르쳐 준 공덕이 복이 되어 그들 모두에게 되돌려지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이는 물론, 까맣게 잊어버린 이름까지 모두가 복으로 되돌려 받기를 바라나이다.


 미영순
시각장애 1급 / 김안과병원 저시력상담실장 / 전국저시력인연합회 회장
정치학 박사 / 중국 흑룡강성대학 객원교수


2008/07/15 12:31 2008/07/15 12:31
우왓

이런거 물어봐두 될까요? 글은 쓰실수 있을거 같은데 글속에 붙인 그림은 어떻게 올리신건가요 다른이가 도와 준건가요?
글 잘봤습니다. 저두 두어번 길도우미 해드린적 있는데 안내 해드리다보면 너무 붙는 분은 부담되더라구요.

한때는 테리우스 ^^;

ㅎㅎㅎ 글은 저희가 후원하고 있는 저시력연합회 회장님이 쓰신 거구요,그림은 저희가 도와서 올린 거랍니다. ㅎㅎ
넘 날카로우시다... ㅎㅎㅎ

그래요, 너무 붙으면 덥겠죠... ^^

그래도 그런 경험 많으신 걸 보면 우왓님은 좋은 분이 맞아요..

복 많이 받으실 거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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