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진이다"라는 책을 손에 잡았던 때가 벌써 3년이 다 되었군요. 당시 내가 정말 원한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내가 사랑하는 일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시기에 이 책을 읽게되어 좋은 기억을 가지게 된 책이 되었습니다.
서른 즈음부터 시작된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얼까에 대한 고민은 삼십대 중반이 되어서도 쉽사리 해결되지 않았고, 뭐 지금도 늘 찾아가는 과정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당시에 고민들이 지금은 날 흔들리지 않게 해주는 확실한 생각으로 만들어 주었군요. ^^
올 봄 병원에서 워크샵이 있었습니다.
그때 만든 꼴라주가 병원 1층에 전시되어 있네요. 저희 조는 순위안에 들지 못해 전시되지는 못했지만 개인적으로 아주 즐겁고 유쾌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물론 꼴라주의 주제는 병원의 미션과 핵심가치 도출을 위한 작업이었지만 나 자신의 미션과 핵심가치는 무엇일까하는 질문도 해 볼 수 있고 자신의 발전을 위한 여러가지 생각도 해 볼 기회가 되었습니다.
병원에는 원장님이 계시고 병원을 경영하지만 나에게는 내가 있고 나자신을 어떻게 경영해 나갈까 고민한다면 살아온 삶이나 행동에 더 자신감있고 뒤돌아 후회할 일도 적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는 사진이다" 라는 책은 제가 공보의 당시 청년의사 주관으로 독후감을 모집하는 책으로 선정이 되어 읽게 되었고 독후감도 쓰기는 했는데 안타깝게 보내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쓴 글 한줄한줄마다 당시의 제 고민이 깊게 스며있는 것을 다시 읽어도 저는 느낄 수 있네요.
2005년 그나마 상태 괜찮을때 사진도 같이 올려봅니다.
햇살이 진료실 창을 통해 들어온다.
공보의로 낳설게 태안에 온지도 3년째이다. 이제 내년이 되면 무엇인가를 새로 시작해야 할거다.
아직은 여름햇살이 나의 얼굴에 들이고 있지만 좀 지나면 날도 추워지고 난 또 어딘가에 나를 담을 곳을 찾고 그곳에 익숙해져 갈것이다.
2년이 넘게 공보의를 하며 난 참 이것저것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것 같다. 대부분 한때의 관심으로 머물긴 했지만 여전히 즐기고 있는 것은 책읽기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아마추어로 머물지 않기 위해 관심있는 분야가 생기면 그 기저에서 부터 책을 찾아 읽곤 했다. 그래서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총론에서 헤매이긴 했지만 말이다.
디지털 시대이다. 모든게 빠르게 흘러만 가고 오늘은 벌써 어제의 내일이 아니라 훨씬 더 앞서나가고 있는 그런 날들의 연속이다. 빨라져 버린 시간들 그래서 내가 무엇을 원했다는 것을 느낀 순간 그것은 벌써 지나온 과거가 되곤했다. 그래서 난 과거에 머물지 않기 위해 늘 새로운 것을 찾았다.
나의 삶은 언제나 바빠야 했고, 치열하기를 원했지만 난 빨라져 버린 시간을 탓하며 나의 눈은 언제나 여기저기를 두리번 거리기만 했다.
지금 기억으로 처음 나의 손에 잡혀 있던 책은 경제관련 책이었다. 전공의 시절 적은 월급으로 둘이 살기에는 부족하나마 그럭저럭 지낼 수 있었지만 집을 사고, 헌차를 바꾸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물론 욕심없이 안빈낙도를 꿈꾸며 공보의 생활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내겐 그런 마음의 여유는 있지 않았다.
돈을 번다는 것, 쓴다는 것의 의미를 가져다 준 책은 바로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시리즈였다. 비슷한 몇 권의 책을 읽고, 내 손에 "돈"이라는 책을 손에 쥐어있는 것을 발견하였을때, 내가 원한 것은 이것은 아니었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런 자극적인 제목의 책은 들고 다니며 읽을 만한 책도 되지 못했다. 베스트셀러라는 이 책을 읽는 사람을 난 어디서도 보지 못했다. 다들 자기방에서나 읽을 만한 책이었을 거다.
그렇게 관심을 가지던 책은 경제원론으로 옮겨갔다. MBA 관련 책을 읽기 시작했고 그러다 GMAT을 사기도 했지만 그책을 사서 공부를 시작하며 알게됬다. 이 길은 아니었구나 하고 말이다. 이런 관심들은 법, 심리, 교육, 지식, 사회등을 거치며 달라져 갔지만 어디에도 마땅한 안식처는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도 자주 인터넷 서점을 들어간다. 어떤 흥미로운 책들이 있을까 하고 말이다.
관심들의 공통적인 한가지는 책을 통해 내가 삶에서 취해야 할 방향에 대한 확신을 얻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내가 가고있는 길이 후회하지 않을 수 있도록 말이다.
나는 사진이다.
이 책은 사진에 관한 책이라기 보다는 삶의 방향에 가까운 책이다. 렌즈가 향하는 방향 그것은 바로 삶의 방향인것이다. 사진을 찍다보면 아니 사진기를 사고 렌즈를 사고 무엇인가를 찍다보면 장비병이 생긴다. 그건 사진을 취미로 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피할 수 없는 병이다. 조리개를 조정하고, 셔터 속도를 조정하고, 노출을 보정하는 작업은 그저 사진을 찍기위한 기술에 불과하다. 무엇을 담아낼 것인가?에 대한 물음은 나에게 난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다가왔다.
" 당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다큐멘터리는 안돼. 잘 나가는 연예인들의 젖가슴이나 찍으며 희희낙락 하루하루 밥벌이에 연연하는 그 배짱으로, 삶의 진실을 캐기 위해 배를 곯며 카메라 한 대로 지구촌을 돌아다닐 수 있겠어?" -글 중 -
그리고는 곧 나에게 비수로 꽂힌다. 젊은 의사들이라면 누구나 이런 질문에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어려운 공직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찾으며 살 것인가? 비록 나의 꿈은 접더라도 바로 지금 보다 나은 급여를 보고 그곳에서 의미를 찾을 것인가?
큰집, 좋은차, 아름다운 병원을 꿈꾼다면, 난 이미 사막으로, 비탈진 산으로 들어가 보게 될 아름다운 광경은 이미 포기한 것이다.
사진을 보다 보면 사진 안의 어떤 메세지 보다는 어느 렌즈로 찍었을까? 조리개는 셔터 속도는 노출은 어떻게 주었을까? 하는 질문을 하는 나를 발견하고는 한다. 이러한 상황은 내 삶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며 이 사람들은 어디서 공부를 하고,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 재원을 마련했을까? 이런 질문이 우습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질문은 항상 이렇다. 난 그랬다.
사진은 빛의 예술이라고 한다. 빛을 잘 이용하여야 아름다운 작품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노출도 중요하고 어두운 것은 어둡게, 밝은 것은 밝게 찍으라 했나보다. 삶에도 명암이 있다. 유독 사진을 좀 찍었다는 사람들을 보면 명보다는 암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처음엔 나도 아름다운 모델, 자연, 도시들을 보며 좋다라는 느낌이었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서 유명하다는 사진작가의 사진을 보면 그것만이 아름다움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허름한 집들, 깊이 패인 주름, 피곤한 일상, 굶주린 듯한 아이들의 눈빛, 노숙자의 저녁.... 세상에서 소외되어 보이는 그들을 담아내는 사진들이 많다는 것을 보게된다.
몇일전 전철을 타고 집에 오는 길에 별다를 것도 없는 일에 또 눈물이 흘렀다. 원래 눈물이 많아 영화나 텔레비젼을 보다가도 눈을 훔치는 일이 많은 나이지만, 참 오늘은 사진으로 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전철에는 전단지를 나누어 주고 간단한 껌이나 볼펜을 파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오늘도 그런 날 중의 하나였고 다른 점이 있었다면, 아줌마는 나이가 젊어 보이고, 등에는 아이를 엎고 있다는 점,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전단지를 주지 않고 두세명에 한장을 잰 걸음으로 나누어 주는 것이 특이하다면 그러했다. 보통은 전철 한칸을 다 돌아도 천원 한장을 손에 쥐지 못하는 게 다반사 일테고 그래서 좀더 빠른 걸음으로 다녀야 했는지 모르겠다.
전철안에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내가 보고있는 정면에는 어디 쇼핑을 가는 듯한 중년의 아줌마 일행 셋과 일행이 없는 젊은 아가씨 한명이 전단지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있었고, 딸에 집에서 오는 듯한 아주머니 한분은 연신 전단지를 돌리는 아줌마를 응시하고 그 옆에는 배낭을 가진 젊은 남자가 앉아있었다. 대개의 경우라면 그냥 쓸쓸히 전단지를 줍고 가는 것이 보통이련만, 아줌머니 일행에서 부터 관심없던 아가씨, 그리고 배낭을 가진 젊은 남자까지 모두 물건을 사주었고, 아이를 맨 아주머니는 고마움을 감추진 못했다.
여기까지는 그다지 놀라운 광경이 내게는 아니었다. 내가 놀라게 된 것은 다음칸으로 넘어가는 아주머니의 뒷모습에 있었다. 아주머니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눈물을 참을 수 없었는지 연실 눈물을 훔치는 뒷모습은 무엇으로도 표현할 길이 없었고 내눈도 촉촉해 졌다. 이런 장면은 한장의 사진으로 정말 남기고 싶다. 그게 바로 내가 사진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이니 말이다.
나를 이렇게 감동시키는 삶이 바로 내가 원하는 것이었음에도 난 늘 더 높은 곳은 더 화려한 곳을 찾았다. 그것이 밝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밝음 뒤의 그림자를 보면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할 두려움에 휩싸여서 말이다.
내년은 올해보다 고생스런 한해가 되기로 결심을 해본다. 고생스런 배움의 길은 가진 자만의 선택이라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다. 그 생각은 내가 배움의 길을 택하지 않는 변명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자유로와 질 수 있을 것 같다.
창으로 들어는 빛이 제법 낮아졌다. 빛이 낮아질 수록 내눈으로는 더욱 강하게 들이친다. 저 빛 너머를 난 항상 찾을 것이다. 하지만 내 눈뒤의 그림자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진은 더 이상 기록이 아니다. 내가 보는 것이고, 내 삶이며, 미래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이방에서 1년을 지냈지요. ^^
Comments List
너무 무거웠나요. 반성반성.... ^^
아니오... 개 폼 잡은 모습이 참 멋있었오.... ㅎㅎ
여름에 눈오는 사진도 시원해 보이네요. 감사합니다. ^^
'연예인들의 젖가슴이나 ...' 이 처럼 노골적인 묘사라니~! 본문 안 읽으신 분들은 본문에 야한 표현이 있으니 잘 찾아보세요~ ㅎㅎ
p.s 잘 읽었습니다.
블로그에 어울리는 글인지 모르겠지만 양깡님이 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선생님 제가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글 너무 좋아요!!!
그리고 연구실 사진은 흑백처리하시길 정말 잘하셨어요~~ㅎㅎㅎ
과찬의 말씀 고마워요. ^^ 핸드폰 사고 얼마안되서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이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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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베스트셀러가 된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는다" 라는 책이 있어요.
"내 인생,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라는 멘트가 앞장에 같이 있죠.
서른살 아니 삼십대가 되어도 전 아직은 잘 모르지만 그 이후가 되어도 그 나이에 맞는 고민이나 선택이 있겠죠.
아직은 무엇을 결정하더라도 충분히 바꿀 수 있는 여력이 있고 희망이 있는 나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무엇일까 고민하다보면 두려워할 것도 후회할 것도 적어질거예요. 화이팅!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NI님은 잘 하실 수 있기 때문에 고민하신거라 생각합니다.
고민없는 사람은 무엇이든 잘하기 어렵죠.
그립고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는다 는 책을 읽고나면 좀더 자신을 사랑하게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간만에 좋은 책을 만나서 기뻤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