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캄보디아에서 돌아왔습니다. 캄보디아로 떠나던 날 윤중로에 핀 벗꽃이 너무 이뻐서 가기 싫을 정도로 날씨가 좋았는데, 몇 일 너무 더운 캄보디아에 있다가 돌아오니 서울 날씨가 무척 춥네요. 이러다 조금 지나면 너무 무더운 여름이 찾아 오겠지요.
제게는 2번째 김안과 병원에서는 11번째의 캄보디아 방문이었습니다.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이 있는데 변한 것은 BWC의 환경이 너무 좋아졌다는 것, KBS 와 함께 갔다는 것, 산부인과 이원영 선생님과 같이 갔다는 것 이었고, 변하지 않은 것은 여전히 캄보디아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분들이 많다는 것, 무더운 날씨, 2년전과 같은 거리라는 점들 이었습니다.
캄보디아는 4월, 5월이 여름이라고 합니다. 캄보이다에서도 많이 더운 계절이고 비도 별로 오지 않을 때라는데 다행이 몇차례의 소나기가 있어 조금은 시원하게 보낸 날도 있었습니다. 창문 밖에는 연꽃이 피고, 길가에도 아름다운 꽃도 피어 있고, 망고도 열려있네요.
진료 첫날부터 많은 환자 분들이 있어서 제 수술도 늦게 끝났는데 저녁에 해가 졌을때도 약 100여분의 환자 분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수술이 끝나고 외래 환자 분들이 남아 있는지 확인을 하고 쉴 생각이었는데 이원영 선생님의 환자 분들이 남아 있어서 많이 어수선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BWC 직원이 차를 외래 앞까지 가지고 와서 누군가를 태우는 모습을 보고, 숙소로 돌아가던 도중 무슨일이 있나하고 볼려고 하는데 김성주 선생님이 저를 보더니....
" 미안한데, 니가 좀 같이 가주어야 겠다"
" 어디로 가는데요?"
" 이 분이 L/C( 간경화) 에 복수도 차있고, 열이 나는 걸로 봐서 Sepsis (패혈증: 피속에 균이 침투한 상황) 인 것 같은데 곧 DIC( 혈관속에서 혈액이 응고하는 현상)가 생길 것 같아서 도립병원으로 옮기려고 하는데 직원들만 보낼 수 없으니 니가 좀 다녀와야 할 것 같다"
" 예, 그럴게요"
그렇게 말씀을 듣고, 환자분을 뒷자리에 눕히고 제 무릎 위에 환자 분의 두다리를 올려 놓고 병원을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날씨가 무척 더웠는데도 환자분의 다리는 정말 따끈따끈 했습니다. 복수로 배도 만삭처럼 불러 있었고, 여기저기 반점도 보였는데, 환자 분의 의식상태는 무척 또렸해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한 이십분을 달려 시내에 병원에 도착했고, 물론 구급차는 아니었지만, 차로 병원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 근처를 한바퀴 돌다가 주변에 차를 세우고 환자분을 부축하여 병원으로 들어갔습니다. 병원의 규모는 작아보이지는 않았는데, 병원이라고 하기에는 위생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보였습니다. 오토바이를 병원 안까지 가지고 와서 방에 보관하는 정도 였으니 상상에 맡깁니다. 그리고 기본 혈압, 체온, 호흡수, 심박수를 측정하고 당직 의사선생님의 진료를 받고나서 수액 처방을 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패혈증이 생기면 적극적으로 치료를 해야 함에도 기본적인 피검사나 혈액 배양 검사, 방사선 검사를 할 것으로 생각했던 저는 의아심과 함께 환자를 그냥 방치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어, 피검사가 안되는 것이냐 물었더니 그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치료가 어렵기 떄문에 무의미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의미와 무의마는 누가 누구에게 부여햘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만약에 한국에 있는 제가 저 상황이라면, 캄보디아에 있는 저 상황이라면 글쎄 잘 모르겠습니다.
수액처방을 받고 수액을 놓으려는 순간에 BWC에서 연락을 다시 받았습니다. 수액을 처방 받았으니 수액을 달고 환자분을 댁까지 모셔다 드리라고 하더군요. 여기서 2시간이나 걸리는 곳에 있기 때문에 혼자서는 몸도 그렇지만 갈 교통수단도 없을테니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최선은 그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수액을 달고는 병원을 못 나가도록 하는 바람에 어떻게 할까 기다리는 도중 남편에게 연락이 되었고, 한 10분 후 도착하여 수액을 병원에서 맞는 것을 보고 병원을 나왔습니다.
중간에 한국말을 조금할 수 있는 BWC 직원이 그러더군요. 간염 A,B,C 가 있는데 캄보디아에서는 B하고 C는 못고치는데 한국에서는 고칠 수 있냐고 묻더군요. 저도 내과 의사가 아닌지라 물론 한국에서도 고치기 어렵지만, 고칠 수 없다고 그냥 놔두는 것은 아니고, 약은 있다고 약간은 항변하듯이 말하게 되더군요.
돌아오는 길에 그 환자분의 열살 남짓되어 보이는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이국적인 깊은 눈과 잘생긴 검은 얼굴에 드리워진 담담함..
다음날 부터는 바쁘게 또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치료를 하면서 마음을 위안했습니다.
강한 햇빛 때문인지 백내장 환자분들이 무척 많습니다. 50대만 되어도 양쪽 눈이 빛 밖에 안보일 정도로 심한 백내장 환자 분들이 많았습니다. 수술도 어려운 상태인 분들도 많았고, 수술 다음 날 각막이 많이 부어있는 상태에서도 전보다 잘 보이는 것에 너무 감사해하던 그 분들이 생각납니다.
캄보디아에서 하는 우리의 진료와 치료가 무엇일까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잘 보이지 않아 가지던 자포자기 심정이 조금은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치료라고 쓰고 희망이라고 읽는다.
김안과 병원에서 더 많은 캄보디아 분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것을 다하려는 욕심보다는 할 수 있는 최선을 통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그런 일이 우리의 마음도 더 따뜻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요.
Comments List
그러게요.. 아예 포기해버릴수밖에(?)없는 캄보디아의 의료현실에.. 많은 환자들이 더 심각해지는것같아요 ㅠ
그래도 이번에 선생님의 솜씨로 많은 환자들의 눈을 밝게 해주신거 ^^
환자들이 다음날 안대떼고 나서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괜히 옆에 서있다가 제가 고맙다는 인사를 다 받고 온거같아요 ;
혼자서 노력한게 아닌데 무슨 말씀을요. 모두다 너무 수고하셨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