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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세렌디피티 (녹내장센터)

군디컬 안과 드라마(5): ‘나라에 바친 눈’

안녕하십니까. 김안과병원 녹내장전문의 황영훈입니다. 이번 군디컬 안과 드라마의 주제는 군대에서 나라를 지키다 안타깝게 눈을 다친 병사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제목도 약간 오버해서 ‘나라에 바친 눈’입니다.


군의료의 가장 큰 특징은 외상이 많다는 것입니다. 외상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그나마 참 다행스러운 것은 가장 흔한 외상의 원인이 ‘축구’라는 점입니다. 20대 초반의 혈기왕성한 남자들이 모여있으니 시간만 나면 공놀이를 합니다. 그 중에서도 역시 축구가 제일 인기 많습니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할 수 있고, 공터에 공만 하나 있으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흙 바닥을 거칠게 뛰어 다니다 보니 넘어지고, 삐고, 부러지고… 크고 작은 부상이 끊이지 않습니다. 모 부대 의무중대에서 병사들의 축구를 금지 시켰더니 외상 환자가 확 줄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축구 하다가 안과를 찾아오는 병사들은 대부분 가까이서 다른 선수가 찬 공을 눈에 맞은 사람들입니다. 다행히 축구공은 크고, 딱딱하지 않아서 대부분 눈 주변에 멍이 들어나, 눈 주변 뼈에 금이 가거나, 눈 속 홍채나 망막에 피가 나거나 멍이 드는 정도의 부상을 입게 됩니다. (사실, 공 중에서 눈에 가장 치명적인 것은 골프 공입니다. 공이 작고 딱딱해서 날아오는 힘이 눈에 집중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축구공에 의한 외상은 대부분 적절한 약물치료로 큰 후유증 없이 회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신나게 축구 하다가 다친 거라 다친 것에 대한 원망의 마음도 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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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하다가 공에 맞아서 흐리게 보인다고 찾아온 병사의 망막사진입니다. 망막과 유리체 여기저기 빨갛게 피가 나있고, 망막에 하얗게 멍도 들어 있습니다(초록 화살표). 다행히 이 정도의 피와 멍은 안정하면서 약물치료 받으면 대부분 잘 가라앉습니다>


문제는 훈련 도중 본인의 과실여부와 무관하게, 불가항력적으로 생기는 치명적인 부상입니다. 어느 무더운 여름, 모 부대 일병이 국군수도병원 응급실로 왔습니다. 병사 말로는 진지공사 도중, 선임병사가 시키는 대로 쇠기둥을 잡고 있었는데 갑자기 무엇인가 눈에 튄 이후로 한 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쇠기둥을 땅에 고정시키느라 망치질을 하던 중 돌 조각이 튀어서 눈에 외상이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환자에게 지나친 걱정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의사들은 아무리 병의 상태가 좋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표정관리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병사의 눈을 보는 순간, 심각한 표정을 도저히 숨길 수 없었습니다. 한 쪽 눈이 완전히 파열되어서 눈 속에 있던 유리체가 밖으로 새어 나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시력을 다치기 전 상태로 회복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최악의 경우, 안구가 유지되지 않아서 안구를 제거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 상황을 환자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요? 병사의 부모님들껜 어떻게 말씀 드려야 할까요? 이런 경우, 부모님의 반응은 한결같습니다. 어머니는 눈물 흘리시고, 아버지는 분노하십니다. 다친 병사가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그저 분단국가에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 국방의 의무를 하고 있었던 것 뿐인데… ‘그러길래 왜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았냐’고 다그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더운 여름, 답답하고 뿌옇게 보이는 보호구를 착용하고 작업하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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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 눈에 튀면서 외상으로 파열된 눈의 모습입니다. 검은동자(각막) 아래쪽의 공막이 찢어져서 유리체가 밖으로 흘러 나오고 있습니다. 빨리 찢어진 공막을 봉합하고 눈 속에 박힌 돌을 제거해야 합니다. 이 정도면 수술이 잘 끝나더라도 상당한 후유증이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 부대 훈련병이 야간 훈련 후 갑자기 한 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왔습니다. 병사 말로는 섬광탄이 본인 가까이에서 터졌는데 그 불빛을 본 이후로 한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병사의 망막을 봤더니 시력을 담당하는 핵심부위인 황반에 출혈이 생겨있고 시세포도 많이 손상되어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너무 갑자기 밝은 빛을 가까이서 보는 바람에 망막의 핵심부분이 다 망가져버린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출혈은 흡수가 되겠지만 이미 망가진 망막조직은 회복이 어려워 보였습니다. 결국, 그 병사는 교정시력이 0.1도 나오지 않아 의병전역을 했습니다. 분명 훈련소에 입소할 때는 멀쩡한 눈이었는데 말입니다.

그 외에도 군대에서 눈을 다치게 되는 사연은 다양합니다. 눈 뿐이겠습니까… 심지어 목숨을 잃는 사고도 발생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험한 일을 하다 보니 크고 작은 사고가 생기는 것은 불가피한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일이 발생했을 때, 최대한의 지원과 보상을 해줄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망막/유리체 수술을 하지 않는 제가 당시 그 병사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지원은 나중에라도 아쉬운 마음 들지 않도록, 우리나라에서 제일 훌륭한 병원에서 진료 받을 수 있게 좋은 선생님 알아봐주는 것이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바쁘신 와중에 당시 우리 병사들 치료에 힘써주신 서울아산병원, 분당서울대병원을 비롯한 여러 병원 망막 선생님들께 감사 드립니다. 무엇보다 지금 이 시각에도 강원도 산골 깊은 어딘가에서 군 면제자 동기들이 연애하고, 맛집 탐방하고, 스펙 쌓고 있을 때, 실연 당하고, 짬밥 먹고, 삽질 하면서 열심히 나라 지키고 있을 병사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입니다. 부디 다치지 말고, 무사히 군생활 마치시길 기원합니다.

다음 에피소드 때 뵙겠습니다.


Writer profile
녹내장과 베토벤을 사랑하는 안과의사
2014/05/01 13:48 2014/05/01 13:48
KIMI

글에서 의사선생님의 군인들을 아끼는 마음이 묻어나네요.
분단국가에서 원치 않아도 어쩔수없이 군대라는 곳에 몸담아야 하는것도 힘들지만 이렇게 다치고 나면 정말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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