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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외사시?

최근 미국의사협회 안과학지(JAMA Ophthalmology)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가 간헐외사시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는 연구가 발표되었습니다. 런던시립대(City University of London, London, United Kingdom)의 Christopher W. Tyler 교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초상일 것으로 추정되는 6개의 미술작품을 분석하여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간헐외사시를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는데요. 또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간헐외사시를 가지고 있었던 덕분에 미술 작업을 하는데 더 유리하였을 것이라는 추정도 하였습니다. 외사시가 있어서 미술 작업이 더 유리하다는 점은 언뜻 보기에는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는데요, 오늘은 유명한 화가들의 사시에 대해서 얘기해 보겠습니다.

많은 유명 화가들이 자신의 초상을 자신의 작품에 넣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닙니다. 아래 그림은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의 ‘최후의 심판’이라는 작품입니다.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에 그려진 제단화인데요, 노란색 동그라미가 그려진 부분은 12사도 중 한 사람인 성 바르톨로메오가 자신을 상징하는 벗겨진 살가죽을 들고 있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에서 미켈란젤로는 벗겨진 살가죽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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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그림은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의 대표작인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입니다. 그림의 뒷편에 걸린 거울에는 작품 전면에 나온 두 사람이 거울에 비친 모습 외에도, 두명의 다른 사람이 방 밖에 더 있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 중 파란색 옷을 입은 사람이 화가 본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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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예로 보티첼리(Sandro Boticelli)의 ‘동방박사의 경배’라는 작품 속에서도 화가의 자화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그림에는 그림의 의뢰자인 메디치 가문의 사람들 얼굴이 많이 포함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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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많은 미술작품들 속에 화가 자신의 얼굴을 직접 그려 넣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후세에 그 화가가 어떤 특징을 가졌었는지를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연구도 레오나르도가 자신의 작품에 적극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반영하였다는 점을 전제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외사시였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 연구에서 연구한 그림을 몇 점 보여드리겠습니다.

아래 그림은 최근 화제가 되었던 레오나르도의 ‘구세주(Salvator Mundi)’라는 작품입니다. 미국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4억 5천만 달러(한화 약 5,000억)에 낙찰되어 현존하는 미술품 중에 가장 비싼 가격에 팔린 작품입니다.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의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하는데요. 미술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화가인 레오나르도가 직접 그린 것으로 추정되고(아직도 논란이 있다고 합니다만) 예수님을 모나리자와 비슷하게 스푸마토 기법으로 그린대다, 레오나르도의 유화가 현존하는 것이 20점이 안된다고 하니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팔린 것이라고 합니다. 이 그림에서 눈을 자세히 보면 하얀 각막 반사점이 보이는데요, 이를 바탕으로 보면 좌안(그림에서 우측 눈, 노란 화살표)이 외사시가 있는 것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요즘도 사시각을 측정하는 방법으로 각막반사점을 이용하는데요, 연구에서는 이를 근거로 우안(그림에서 좌측 눈)은 정면을 보고 있는데 비해 좌안은 밖으로 8.6도 가량 벗어나 있다고 보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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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그림은 레오나르도의 또 다른 대표작인 ‘세례자 요한(John the Baptist)’입니다. 이 작품 또한 모나리자의 미소와 비슷한 관능적인 미소를 짓고 있고 스푸마토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명한 작품입니다. 연구에서는 눈꺼풀의 모양과 동공의 모양을 근거로 9.1도 가량 외사시가 있는 것으로 분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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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레오나르도 자신의 자화상과 인체비례도로 유명한 ‘비트루비우스적 인간(Vitruvian Man)’, 레오나르도의 스승인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Andrea del Verrocchio)가 청년기의 레오나르도를 모델로 삼아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다비드상(David)’, ‘젊은 전사(Young Warrior)’도 분석하여, 평균적으로 10.3도 외사시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였습니다.

사실 유명화가가 사시가 있다고 알려진 것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처음은 아닙니다. 빛의 화가로 잘 알려진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는 자화상을 매우 많이 그린 것으로 유명한데 2004년 유명의학잡지인 뉴잉글랜드의학저널(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하버드대 연구진들이 렘브란트의 자화상(아래 그림)을 분석해서 외사시가 있다는 것을 밝혀내기도 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뒤러(Albrecht Dürer), 드가(Edgar Degas), 피카소(Pablo Piccasso)등의 여러 화가들도 사시가 있다는 것이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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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가 있는 것이 정말 그림을 잘 그리는데 유리할까요? 미술시간에 정물화를 그리거나 데생을 해보신 분들이라면 물체들의 크기를 상대적으로 측정하기 위해서 한 눈을 감고, 한 눈으로만 연필과 대상을 번갈아 보며 비례를 측정해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두 눈을 다 뜬 상태에서는 오히려 이런 비례 측정이 어렵고 한 눈을 감은 상태가 더 쉬운데, 이는 우리의 두 눈이 위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두 눈을 뜨고 있는 상태에서 각각의 눈으로는 다른 이미지가 들어오지만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아주 짧은 시간에 우리의 뇌가 두 개의 다른 이미지를 하나로 맞추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두 개의 다른 이미지가 있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대신 양안으로 들어오는 다른 이미지의 차이를 이용해 공간감각(입체시)를 얻게 됩니다. 정상인에게는 너무 당연하고, 쉬운 일들이 사시가 있는 환자들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시가 있으면 양안으로 들어온 이미지를 하나로 느끼기 어렵기 때문에, 사시가 된 눈으로 들어온 이미지를 무시하게 되거나 그렇지 못한 경우는 복시를 느끼게 되고 입체적으로 보는 능력도 떨어집니다.

그렇지만 간헐외사시라는 질환의 경우,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간헐외사시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흔한 사시로서, 정상일 때도 있고 외사시일 때도 있는 질환입니다. 따라서, 정상을 유지하는 경우에는 입체적으로 보는 능력이 생겼다가 외사시가 발현되면 이런 능력이 떨어지고 사시가 된 눈으로 들어오는 이미지는 무시하게 됩니다. 이러한 점을 앞에서 말씀드린 비례 측정 상황에 대입해 봅시다. 만약 어떤 화가가 간헐외사시가 있고 외사시가 있는 상태와 정상인 상태를 조절할 수 있다면, 비례 측정과 같이 입체적으로 보는 능력이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경우는 외사시를 만들어 입체시를 줄이고, 입체적인 감각을 이용할 때만 정시를 유지하는 상황을 만들 수 있게 됩니다. 사시가 없는 경우라면 한 눈을 감았다 떴다 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같은 상황을 만들 수 있습니다. 3차원적인 물체나 공간을 2차원적인 캔버스에 옮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아신다면, 간헐외사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어떤 점에서 도움이 될 지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간헐외사시가 있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일까요? 간헐외사시는 겉으로 보기에 좋지 않을 뿐 아니라, 오래 지속되는 경우 입체시 능력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전에는 미술이 2차원적인 캔버스에서 주로 이루어졌지만 요즘은 입체적인 공간에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예술품이 많습니다. 아래 사진처럼 심지어는 3차원 가상현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일들도 시도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앞으로는 2차원적인 브라운관, 캔버스 등에서 벗어나서 3차원 공간에서의 경험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간헐외사시가 있는 것이 딱히 시각적으로 더 유리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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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에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간헐외사시로 추정된다는 연구 결과를 가지고 얘기해 보았습니다. 예술작품을 바라볼 때 화가들의 특성을 생각하는 관점이 예술작품을 감상하는데 좋은 포인트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준 좋은 연구인 것 같습니다. 사실 의학적으로는 사시 말고도 예술작품을 이용해서 과거에 있었던 피부병을 연구하시는 분도 있고, 유전병을 연구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자기가 가진 경험을 가지고 독특한 시각에서 예술작품을 감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폭이 넓어지고, 더 깊이 있는 시각에서 감상할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의심치 않습니다.


2018/11/19 12:48 2018/11/19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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