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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옆방eye : 객원블로거
* 이 글은 국립재활원에서 발행하는 '재활의 샘' 책자에 '저시력 재활의 조건' 이라는 제목으로 필자가 기고한 글입니다. 저시력인 재활의 활성화를 위해 나아갈 방향을 저시력인의 입장에서 모색해봅니다.


늦깎이 부부가 간신히 얻은 아들이 타고난 약시(저시력 오용으로서의 약시가 아닌 병명으로서의 약시), 아이가 이리 된 원인은 모르지만 이 부모는 아이에 대해 죄인으로 살고 있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안할 짓이 없는 듯했다. 아이가 입만 오물여도 냉큼 물을 갖다 대령했다. "물ㅡ" 할 줄 알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그렇게 엄마가 미리 척척 알아서 기어(?) 주었기에 무엇 하나 제 힘으로 할 일이 없었다. 아빠는 엄마보다 한 수가 위. 아이는 집 앞 큰길 바로 건너편 학원에 다녔다. 신호등이 있는 널찍한 횡단보도엔 늘 사람이 많아서 남들 따라 길을 건너면 되었다. 두어달 열심히 길을 건네 주었지만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아 훈련 차원에서 아이 혼자서 가게 했다. 그날 저녁 대판 부부싸움이, "집 구석에서 뭐 하는 일 있다고…"  이 아이가 방학 때 우리 학습 프로그램에 참여한 일이 있다. 강의실에서 공부하다 볼펜이 책상 밑으로 떨어지면 큰 소리로 엄마를 부르며 책상을 두 손으로 마구 두드리며 발을 굴러댔다. 옆방 사무실에 있던 엄마가 황망하여 달려들어와 집어줄 때까지 쉬지 않고 쭉.  '어미는 종이로소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hoto by Brankinha



초등학교 5학년 때 뇌수술을 받은 아이가 있었다. 50%의 희망도 보장 받지 못한 채 진행 된 수술이었는데, 시력을 제물로 받쳐서 생명을 살려냈다.  모자가 함께 학교를 다녔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 고등학교까지도. 시커먼 남학생만 있는 교실에 생뚱맞게 앉아있는 엄마를 선생님들도 학생들도 다른 학부모들도 불편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아이는 인기투표 때마다 이름이 빠지지 않는 인기짱. 지금은 사이버 대학으로 공부하고 있지만 친구들이 잊지 않고 그를 찾아와 어울린다. 이 모자만 특별히 운이 좋아 학교를 잘 만났던 걸까? 죽음을 이겨낸 이 가족의 마음 속에는 늘 깊은 감사가 있다. 이 가족이라고 '기왕이면 눈까지…' 하는 생각이 없었을까마는, 인간과 생명에 대한 사랑과 존중이 그보다 더 컸다. 죽음마저 비켜간 용기, 얻어낸 사랑과 감사하는 마음. 아이의 전학을 요구한 이가 있다 한들 그를 감싸안지 못할 까닭이 없다.    

저시력 아이를 기르는 엄마 태도의 몇 가지 유형을 소개하였다. 저시력인이 재활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재활 과정을 닦아가는데 가정의 분위기, 특히 엄마의 의지와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아이마다 양육법은 다 달라야할 테니까. 가정에서의 재활이 완벽했다 하더라도 이웃으로부터 사회로부터 저시력인의 재활 의지는 끊임없이 시험 당해야하고 상처 받게 되어 있다.  물론 찔리고 베인 상처에 새살이 돋아나듯 저시력인들이 극복해가긴 하지만 크고 작은 상처가 주는 아픔이 결코 가볍질 않다.

상처를 주고 받는 이유는 단순하다. 저시력이 장애라는 걸 아는 이가 적어서 그렇다. 내가 불치병을 앓는 환자인 줄로만 알았지 장애인인 줄은 꿈에도 몰랐고, 타고나길 무모하리 만큼 용감무쌍했다. 내가 몰랐던 꼭 그만큼 다른 이들도 저시력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개그우먼으로 진출 해보라는 말을 농담으로 던지곤 했다.
 
"아니, 이것도 안보여? 도대체 눈이 얼만데?"
"얼마라니? 어디 눈 파는 데 있어? 내 것도 팔아볼까?"
"눈이 몇인데 그렇게 안보여?"
"두 개인 것 안보여? 내 눈보다 더 형편 없군."

내가 말을 재미있게 한다고 넌 웃었지만 따라 웃는 내 가슴 한켠에는 가시가 돋아 있던 것 같다. 

남들이 모르는 건 어쩌면 당연지사. 너무 멀쩡해 보인다는 게 저시력인들의 비애이며 고통이다. 오가는 이들로 길이 아무리 복잡해도 마주오는 이와 부딪치지 않게스리 운동화 코끝보다 멀리 바라보질 못한다. 심술궂은 아저씨와 딱 부딪치고 말았다.

"눈은 모양으로 달고 다니나? 가죽이 모자라서 뚫린 게 아니라구!"
"내 눈은 옛적부터 모양이거니와, 그러는 그 눈은 그럼 뭔데?"
 
신규로 저시력인에 편입 된 어떤이의 아내가 와서 눈물바람을 냈다. 부부동반으로 외출을 하느라 지하철역 앞에서 택시를 내렸단다. 아내가 요금을 물고 거스름돈을 받는 사이 남편은 천천히 지하철역 입구 쪽으로 발을 옮겼다. 공교롭게도 아가씨와 옆으로 비스듬히 부딪쳤는데… 접촉 부위가 고약했던 모양. 백주 대로상에서 아가씨에게 따귀를 얻어맞는 중년의 남편을 목도해야 하는 아내. 알아주는 기업의 중견간부였던, CEO를 넘보며 잘나가던 중후한 신사가 당하고 있는 이 처참한 현실. 아무리 입술을 모질게 깨물어도 터져나오는 울음을 주체할 수가 없더란다. 이 가족에게 절실한 심리재활, 내 눈물이 쏟아질까봐 말을 할 수 없었다.


>> 3편에 계속

손톱가는 여자 - 저시력 재활의 시작 1편 
손톱가는 여자 - 저시력 재활의 시작 2편 
손톱가는 여자 - 저시력 재활의 시작 3편 
손톱가는 여자 - 저시력 재활의 시작 4편 (마지막)


 미영순
시각장애 1급 / 전국저시력인연합회 회장
정치학 박사 / 중국 흑룡강성대학 객원교수

2008/04/29 15:07 2008/04/29 15:07
헐..

알아주는 기업의 중견간부였던, CEO를 넘보며 잘나가던 중후한 신사가 당하고 있는 이 처참한 현실.
이라고 써넣을필요까지는...-_-

한때는 테리우스 ^^;

저시력인의 현실을 강조하다 보니, 조금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정말로 저시력 환자를 포함한 시각 장애인, 아니 모든 장애우들이 살아가기엔 우리 현실이 넘 넘 어렵답니다...

모두 조금만 더 내 이웃의 어려움에 도움을 주는 그런 사회가 얼릉 되었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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