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저에게는 비켜 줄 만한 여력이 없었지만 몇 일 전 출근길에 만난 구급차를 보면서 옛날 생각도 나고, 비켜주지 않는 차들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도 들더군요.
인턴 때도 세 달을 응급실에서 근무했고, 공보의 때도 3년간 태안에서 응급실 당직근무를 해서 정말 구급차는 셀 수 없이 많이 탔지만, 탈 때마다 늘 느꼈던 것은 구급차에 누워있는 환자 만큼이나 옆에 있는 저도 위험에 처해 있고, 언제나 극적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방 소도시의 응급실의 특성상 상급병원으로 전원하는 경우가 많은데 짧게는 10여 분 길게는 몇 시간을 구급차에 타고 달려야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평균시속 140km로 때로는 혼잡한 도로를 신호무시, 차선무시, 갓길운전을 해야하는 구급차는 환자만큼이나 의료진에게도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이런 상황에서 구급차를 비켜주지 않는 차들을 만나면 그 차를 피하기 위한 어려움은 더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 정말 구급차는 그렇게 달릴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어느 화창한 봄 날 이었습니다.
일요일이었고 환자 분들도 별로 없는 평온한 오전 한 노부부가 병원에 오셨습니다.
할머니께서 새벽부터 두통이 심해 왠만하면 참아보려 했는데 갈 수 록 심해져 아침도 못드신 상태였습니다.
"할머니 머리가 많이 아프세요?"
"응, 너무 아파서 참을 수가 없네... 진통제 좀 먼저 맞으면 안될까?"
"네, 진통제는 드릴 수 있는데 제가 진찰 좀 해보고 드리면 안될까요?"
"아니, 지금은 못 참겠어... 먼저 주면 좋겠는데..."
"네, 그럼 먼저 진통제 드릴께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간호사님, 나 화장실 좀 갔다와도 돼나?"
"네, 급하시면 먼저 다녀오세요"
"선생님!! 빨리 좀 들어와 보세요"
이 아침 이 도로에서 만나는 아무런 급할 것이 없는 차들의 서행도 구급차에게는 때론 위험한 요소들이 됩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사이렌의 소리에 귀기울이며 베푸는 작은 배려도 구급차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요.
늘 긴급 자동차들은 그런 사연들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 그런 긴급 자동차를 피해주지 않으실 분들은 없지 않을까요?
참, 할머니는 어떻게 되셨는지 궁금하시죠?
"응, 너무 아파서 참을 수가 없네... 진통제 좀 먼저 맞으면 안될까?"
"네, 진통제는 드릴 수 있는데 제가 진찰 좀 해보고 드리면 안될까요?"
"아니, 지금은 못 참겠어... 먼저 주면 좋겠는데..."
"네, 그럼 먼저 진통제 드릴께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리고 나서는 진통제를 근육주사로 놔 드렸습니다.
"간호사님, 나 화장실 좀 갔다와도 돼나?"
"네, 급하시면 먼저 다녀오세요"
그리고는 한 20여분이 지났는데도 할머니는 오시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께서도 여자 화장실이라 들어가지는 못하시고 밖에 서 계셨는데,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는 할머니가 걱정되서 간호사를 보냈습니다.
"선생님!! 빨리 좀 들어와 보세요"
할머니는 화장실 바닥에 쓰러져 계셨고, 의식은 흐려져 있었습니다. 다행히 호흡은 그런데로 유지되고 있었지만 숨은 얕고 느리게 쉬고 있었습니다. 빨리 응급실로 옮겨서 맥박과 혈압을 측정했고 다행히 아직은 정상 소견이었습니다. 제가 있던 병원에는 저와 간호사, 간단한 방사선 사진을 찍는 방사선기사 세 명이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빨리 큰 병원으로 옮겨야 헸지요.
구급차를 불렀고 기도 유지를 하면서 간간히 인공으로 숨을 불어넣어주며 구급차를 탔습니다. 제 판단에는 뇌출혈일 가능성을 생각하고 뇌압을 낮추기 위한 약물을 투여하였고, 차에 올라타며 할아버지께 가족들에게 연락을 하시라고 말씀드렸죠.
"경태야(가명) 엄마가 머리 아파서 병원왔다가 주사 맞고 다 죽어간다. 빨리 서산으로 오너라"
태안에서 서산까지의 거리는 약 20km 정도인데 제 기억에 약 15분에서 20분 정도가 걸렸던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한 병명이 맞아야 하는데 하면서도 아니길 바라는 이런 저런 생각이 들더군요. 태안에서 서산까지의 길은 여행을 다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길이 상당히 좋습니다. 왕복 2차선 매끈하게 빠진 새로 포장된 도로지요. 일요일 오전 복잡하지 않은 이 도로도 타고 있는 환자나 보호자 의료진의 마음은 무척 복잡하고 조금이라도 빨리 어떤 조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죠.
비켜~
늘 긴급 자동차들은 그런 사연들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 그런 긴급 자동차를 피해주지 않으실 분들은 없지 않을까요?
참, 할머니는 어떻게 되셨는지 궁금하시죠?
할머니를 서산으로 보내고 돌아와서 한시간쯤 후에 전화를 해보았습니다. 진단명은 뇌지주막하출혈(흔히 뇌출혈이라고 하죠) 이었고, 인천으로 수술을 위해 다시 이송했다는 말만 듣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나서
낯익은 할머니께서 머리를 삭발을 하고 오셨더군요.
그 날 인천 모 대학병원에 갔다가 중환자실이 없어서 서울의 모대학병원으로 다시 같은 이유로 분당의 모대학병원에서 옮겨져 수술을 받고 퇴원하셨다고 하시더군요. 그 날 주사를 잘 못놔서 혼날 뻔한 저에게는 감사하다는 말씀을 남겨주셨죠.
그리고 한 달쯤 지나서
낯익은 할머니께서 머리를 삭발을 하고 오셨더군요.
그 날 인천 모 대학병원에 갔다가 중환자실이 없어서 서울의 모대학병원으로 다시 같은 이유로 분당의 모대학병원에서 옮겨져 수술을 받고 퇴원하셨다고 하시더군요. 그 날 주사를 잘 못놔서 혼날 뻔한 저에게는 감사하다는 말씀을 남겨주셨죠.
Comments List
구급차 이야기인데 읽다가 식은땀이.. 주사를 먼저 드린 것에 대해 지주막하 출혈과는 관계 없지만, 혹시 블레임했을까 생각이 들어서요. 응급실에서 상황이 좋지 않은 경우 '주사라도 놔주지 아무것도 안한다'는 목소리와 전원한다고 하면 '여기서는 도대체 뭘 치료하냐'는 목소리가 부담스럽더라고요. 특히 응급 상황일 경우 일일히 설명해드릴 시간도 없기에 오해와 불신이 커져가는 경험을 인턴 파견 때 했습니다.
응급실 당직을 서다 보니 느꼈던 것은 의사로서 최선을 다하고 소신껏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야만 나도 일관되게 행동할 수 있고, 필요없는 약(주로 마약계통)을 달라고 당직실 문을 부서줘라 차는 환자들에게도 담대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환자나 보호자의 블레임에 대해서는 여러 생각이 있지만 다음 기회에 블로그에 한번 올려보겠습니다.
선생님 글 읽고 환자가 없는날....잡생각이 들어서 글 한번 링크합니다.....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구급차를 타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느꼈을 만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
그래도 요즘은 구급차오면 대부분 비켜 주는 것 같아요..
그런데, 가끔 뒤세서 하도 시끄러워 구급차인 줄 알고 비켜보면...견인차. 이건 구급차도 아닌 것이 왜이리 시끄럽게 다니는 지... --;
네 견인차들은 역주행도 잘하더라구요. ^^
몇 해전에 미국 유명 신문사의 한 리포터가 썼던 한국 기행문이 생각 나는군요.
한국의 스키장에 갔는데, 앞에서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가는 엠뷸런스를 잘빠진
BMW 승용차가 경적을 울리며 추월 하더라는 겁니다. 기겁을 했다면서,
한국에 가면 교통 문화에 주의를 기울이라는 충고까지 잊지 않았습니다.
많이 부끄러웠죠.
소방차, 엠뷸런스, 경찰차가 뒤에서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 오면,
차들이 도로 우측으로 비켜주는 것이 법적으로 강제가 되지 않는가요?
적어도 미국에서는 몇십만원에 해당하는 엄청난 벌금을 물리며, 법원에
출두를 해야 하죠.
bong 님 말씀대로 법제화를 시키면 더욱 좋겠죠. 그렇기는 해도 한국과 미국과의 교통 문화의 차이나 인구밀도등을 생각해 보면 쉬운 일이 아니기는 합니다. ^^
예전에 뉴스 카메라출동에서 구급차들이 싸이렌을 울리며 무법질주를 하여 병원에 도착한 뒤에 뭘하는지 따라가 본적이 있는데, 병원 식당에서 쓸 배추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 뉴스를 본 뒤로는 절대로 병원 구급차들에게 양보를 해주지 않고, 어떨 때는 일부러 제차로 갓길쪽을 막기도 합니다. 물론 119 소방서 구급차에겐 양보를 잘 해줍니다. 그러나 일반 병원 소속 구급차나 응급구조단? 어쩌구 하는 이상한 구급차들에겐 절대로 양보를 해주지 않습니다.
dasan 님 말씀대로 그런 구급차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저도 들은 적은 있습니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구급차들도 불법적으로 운행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차들에게 양보를 해주어야 하는 것은 양보를 통한 손해보다는 사연이 있을 한 생명을 구한다는 보다 큰 이득이 있을 거란 희망 때문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훨씬 많을테니까요.
개인적인 경험이 있기 전 일반인들은 잘 비켜주지 않을겁니다. 일반인들사이에 도는 소문중 앰블란스가 빈차로 경적을 울리고 다닌다는 이야기가 있죠.
그런 경우가 있을지언정 비켜주어야만 하고 양보해야하는 것은 사실 사람사는 세상의 기본도리입니다. 빈차인지 아닌지 밖에서는 알기 쉽지 않습니다. 그 차에 누군가가 생사의 가림길에 놓여 있다면 우리의 작은 생각이 누군가의 생명을 보내는 원인이 되겠죠,....상황을 알수 없는 현상태로는 비켜주어야만 합니다. 나의 지인이나 내가 그 구급차에 타고 있다면......세상 모든 일은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의사들의 마음도 읽을수 있는 좋은 글이네요.
terry5004 님의 말씀이 백번 동감합니다. 그래도 구급차가 빈차가 아니라는 믿음이 필요하겠죠. 제 경험을 말씀 드리면 이송을 갔다가 그 구급차로 다시 병원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한 번도 사이렌을 울리며 돌아온 적은 없습니다. ^^
난..구급차 오면...길 안비켜주는데...바쁘지도 않으면서 소릴내면서 가는 구급차가 대부분이라고 들었다
소방차라면..비켜주는데..구급차는 안비켜준다..오히려 길을 막아버린다
이제는 좀 비켜주실 마음이 생기신 거죠? 감사합니다. ^^
정말 숨넘어갈듯한 상황에서 타본 사람은 구급차를 안비켜 줄 수가 없죠^^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지만 그때는 안비켜 주시는 분들 내려서 멱살이라도 잡고싶은 심정..
나도 모르는 순간 누군가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안겨주지 맙시다.....
그런데 전 면허가 없어서,, 신랑한테 꼭 비켜주라고 한다는!!
꼬두님 말씀대로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면 좀 더 좋은 세상이 만들어 질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