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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옆방eye : 객원블로거
" 다큐3일에 내가 나왔다!! 무소유를 느끼게한 행복했던 캄보디아 봉사후기"

캄보디아 봉사를 내가 가기로 결정 된 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기분이였습니다.
평소 더위를 너무 많이 타는지라 가기 전 날에는 잠이 안 올 지경이었습니다.
제가 살이 찐 다음에는 여름에 파처럼 푹 처져 버리거든요.
(이번엔 특별히 KBS '다큐 3일' 프로그램 함게 하는데 말이죠......ㅠㅠ)

첫 날  캄보디아 씨엠립에 도착해서 설레는 맘으로(해외에 몇 번 못가봐서..^^)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아~~ 몰려오는 습하고 끈적끈적한 더운 공기!!! (당일 비가 왔다네요..)가 내 코에 들어오자
목을 조르는 듯이 답답한 느낌이였습니다.

도착해서 숙소로 가는 도중에 저는 벌써 온 몸이 땀이였죠...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에어컨(사실 이번 봉사부터 전기가 24시간 공급되어서, 이 전에는 밤 10시까지만 에어컨을 틀 수 있었습니다)을 켜고 샤워를 했습니다. 나와서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있는데(이제는 오히려 수술복이 편안합니다.^^) 바지를 입으려는 순간... 허걱~~~~~ 카메라맨이 방안으로 급습을 하였습니다.
그 카메라맨은 KBS '다큐 3일' 촬영이라며 씨익 웃으시더군요. 허겁지겁 바지를 추키고는 짐을 정리하려는데 카메라맨이 옆에 오더니 "주무시려는 거 아니에요? 왜 지금 수술복을 입으셨어요?" 하며 나에게 시커먼 카메라를 들이대셨습니다. (사실 어렸을 적에는 '야~~일요일이다'라는 MBC 아침 방송에서 반 대표로 나갔던 적도 있었고, 대학교때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OX퀴즈 프로그램에도 나가 이휘재씨를 웃겼던 적도 있고^^, 공공장소에서는 핸드폰을 진동으로 하는 지에 대한 깜짝카메라(?)에도 나가서 이창명씨와 인터뷰를 해본적도 있었구...)
하지만... 막상 카메라가 찍으니 머릿속이 하얘지고 안그래도 말 더듬는데... "아, 예~~ 일년차때부터 입어서 오히려 편합니다. 마음에 준비를 하려구요"라고 더듬 더듬 대답은 했지만 으아~ 너무 창피했습니다.(전혀 예상 못했는데 실제 방송에도 나오더군요^^)

첫날 밤, 같은 방 사람들끼리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2시에 잠들기로 햇는데 여기 저기서 "꺼~억"하고 우는 도마뱀 소리와 다음 날에 대한 걱정으로 잠을 1시간 밖에 자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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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새벽 5시 조금 넘어서 씻고 나와 전 날 가져온 물품을 옮기고나니 외래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입이 쩌억~~ 벌어졌습니다. 아침부터 너무나 많은 환자들이 줄을 서있는 것이였습니다.
처음에는 '아~~ 언제 끝나지?? 너무 덥다..씻고 싶다..자고 싶다..' 이런 생각들로 가득 찼었는데, 이런 우둔한 생각은 금새 없어져 버렸습니다.

한쪽 눈은 실명되어 이제 한쪽 눈으로 사셔야 되는데 그 눈마저 홍채염이 심하고 안압이 올라가 있었고, 전방에 염증이 많아 당장 치료가 시급한 여자 환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센터가 있는 씨엠립에는 안과가 없었고 게다가 저희 봉사단이 떠나기 전에 한번 더 오라고 했는데 그마저 버스를 탈 돈이 없어서 못 온다는 말에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덥고 피곤한 생각은 사치였습니다. 너무나 그 분에게 죄송했습니다. 지금이라도 사과드리고 싶습니다.ㅠㅠ
하지만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었습니다. 의사로서 너무나 무능력한 제 자신을 보며 의대 6년, 인턴 1년, 공보의 3년, 레지던트 4년 '아, 난 그동안 뭐한거지...?' 이 시간동안 배워왔던 것이 너무나 허무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런 환자들은 부지기수였고, 제가 해줄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각막 가운데까지 심하게 자라 들어온 익상편 환자를 수술하고, 다음 날 그 환자를 만났는데 앞이 보인다고 했을때는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도중 조금 당황스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6시 쯤 수술실에서 마지막 익상편 환자를 수술하고 외래로 복귀했는데...
아~ 끝이 보이지 않는 내과 환자들..
그런데 제가 도와드려야 하나?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이미 저를 외래 사람들이 기다리더군요. 환자보라고...
환자 보기 싫어서가 아니라 더욱 당황했습니다. 인턴 때 응급실에서 일 한 기억, 공보의 때 기억을 총동원해서 백 여명의 환자를 보고나니 저녁 8시가 넘어서 끝났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환자를 봤는지 모르겠습니다.
거기 캄보디아 환자들은 정말 의료시설이 낙후된 곳에서 생활하며, 진료도 받아본적이 없던 것 같았습니다.
청진기를 댔는데 우리나라 사람 같으면 숨 크게 쉬라고 하면 알아서 몇 번은 크게 들이마시고 내시고 했을텐데 거기 사람들은 처음 청진기를 보는 거였고, 제가 청진기를 대도 계속 가만히 있는 것이었습니다. 또 설압자로 혀를 눌러 편도선을 보려고 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면 '아'하라고 하면 따라서 '아'하고 따라하는데 거기 사람들은 처음 해보는지 계속 혀로 설압자를 밀어내서 당황했습니다. 통역을 거쳐서 하는 거라 제대로된 의사소통도 서로 안되는 것 같고, 조금이나마 하루종일 기다렸던 환자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제가 거기서 느낀 것이 많지만,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최빈국중에 하나인 캄보디아 사람들이 행복해 보인다는 것 입니다. 줄이 늘어져 기다리면서도 서로 얘기하고 짜증 한 번 안내고, 저녁 8시가 넘어서 끝나 그 곳 센터에서 밥을 주었는데 진료를 마친 환자들이 그냥 땅바닥에 가로등 불빛 하나에 의지하여 십 여명씩 그룹을 나눠 앉아 밥을 즐겁게 먹는 것을 보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소유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너무나 여유롭고 표정이 밝은 사람들을 보며 더워서 가기 싫어했던 제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럽고 미안했습니다.

그 곳 센터에는 꽤 많은 아이들이 숙식을 하며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그 중 몇몇은 심심한지 자꾸 외래에 와서 저희들을 배회하더니 곧 친해져서 장난도 치고 지나갈 때 보면 아는 척도 하고.. 너무나 밝은 아이들이었습니다.



그 곳 아이들 중 뚱뚱하긴 커녕 통통한 아이들도 없어서 그랬는지 저를 신기하게 쳐다봤습니다.. 슬프긴 했습니다.
몇일 지나자 제가 지나가면 아이들이 한국말로 "뚱뚱이"하고 웃으면서 도망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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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씨 오른쪽에 있는 아이가 그랬었죠^^;;


어느 덧 한국에 돌아오는 날, 그 동안 7일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습니다. 조금 더운 것만 빼고는 공기도 사람들도 너무나 좋았습니다. 제가 봉사했다기 보다는 오히려 제가 너무나 많은 것을 가슴에 담아오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다시 가고 싶습니다~!

벌써 캄보디아가 그립습니다...

(한국에 와서 어느 덧 2주가 지나고 5월 10일 저녁이 되었습니다. 저는 별로 생각도 없이 늘 그랬듯
KBS 다큐3일이 아닌 영국 프리미어 축구를 보고 있는데, 엄마한테 전화가 오더군요.
TV에 제가 나온다며ㅎㅎ 되게 좋아하시더라구요^^)



2011/06/02 11:29 2011/06/02 11:29

세계가 하나로 묶인 글로벌 시대, 21세기를 살아가는데 중요한 덕목은 무엇일까요? 여기에는 뛰어난 외국어 실력, 해외체류 경험, 세련된 매너와 국제적인 감각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들어 특히 강조되는 덕목이 있는데요, 바로 '나눔'입니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불과 60년, 전쟁의 폐허에서 우뚝 일어나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우리나라는 90년대를 지나며 전세계에 도움이 필요한 나라들에 구호의 손길을 내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프란쩡은~♡

오~ 유작가님 멋쩌요~^^

MD YES

ㅎㅎ 고마워 프란~~!!

용순이

유차각님 ㅋㅋㅋㅋ

MD YES

허허 용~~!!!!!!!!!!히딩크~~!!!!

어깨장군

쎄쎄쎄에 나도 나와 쩝 -_-

MD YES

어깨장군님이 현미????????

용순이

닥터유 사진 넘 뒤로 가셨네요~~~~티나요~~~~

해피프린팅

정말 좋은 일 하고 오셨네요. 너무 멋지십니다!
환자를 보면 피로감을 잊어버리게 되는 건 의사선생님들의 본능인 것 같아요^^;
소중한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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