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Filed under 세렌디피티 (녹내장센터)
'하루'의 가치는 얼마일까요?

부제: 좋은 병원이란 무엇일까요? 환자에게 좋은 병원? 의사에게 좋은 병원?

  수련의로서가 아닌 전문의로서 첫 병원 '김안과병원'에서 환자들을 제 이름으로 진료하고 책임을 지며 인연을 맺은 지도 벌써 3개월이 되었습니다. '적응'이라는 명목 하에 정신 없이 지내온 3개월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분주함 속에서도 나름의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련을 받은 대학병원과 김안과병원의 사소한 문화적 차이라고 하기에는 두 병원그룹간의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대학병원이라고 해 봤자 제가 수련 받았던 대학 병원과 중간에 파견을 다녔던 대학 병원과의 비교이기 때문에, 지극히 저의 주관적인 생각에 국한된 비교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직접 진료하는 의사의 관점에서 '좋은병원 김안과'에 대한 생각을 이 글을 읽어주실 환자분들에게 들려드리는 것도 좋은 기회일 것 이라 생각됩니다.

'좋은 병원 김안과' 라는 생각에서 제가 느낀 장점들을 정리해봤습니다.

먼저 검사가 정말 빠릅니다.
  김안과병원에서 일하며 처음 느낀 점은 검사가 ‘정말 빠르다’ 입니다. 환자분들의 관점에서는 김안과병원은 '' 항상 오면 진료를 하려고 해도 기다리고, 검사를 하려고 해도 기다리고, 검사확인을 할 때도 기다리고'' 일 것입니다. 환자분들의 절대숫자가 많다 보니 벌어지는 일인데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무리 기다려도 진료-검사-검사확인이 '하루'에 끝난다는 것입니다.

녹내장과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할아버지가 동네 안과에서 시력 검사 등을 하시다가 녹내장이 의심되니 큰 병원 가서 진찰을 받아보세요 하고 의견을 들었습니다. 이제 할아버지는 큰 병원을 어디로 갈지 고민을 하시기 시작합니다.

먼저 대학병원을 가시게 되면, 할아버지께서는 첫날 진료를 보십니다. 녹내장 전문의 선생님을 보실 수도 있고, 일반의 선생님을 보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동네안과 선생님과 같이 녹내장이 의심된다는 진료 소견을 들으시고, 검사실에 가서 녹내장정밀검사 예약을 잡습니다. 그리고 3일정도 있다가 녹내장 정밀검사를 하시게 됩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날은 담당 교수님의 진료가 없는 날입니다. 검사를 힘들게 마친 할아버지께선 진료 예약을 하시고 4일 뒤 그 교수님 외래를 보시고 결과를 듣게 되셨습니다. 혹은 다행히 검사실에서 연로하신 할아버지를 배려하여 오전에 검사를 하고, 오후에 담당교수님 진료가 있는 날로 예약을 잡아서 할아버지는 대학병원에 오신지 2일만에 결과를 들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는 김안과병원에 오셨을 때입니다. 할아버지께서는 김안과에서 멀리 사시는 관계로 11시 30분경에서야 간신히 도착하셨습니다. 오전외래가 거의 끝날 무렵이지요. 우선 진료를 보시게 되었습니다. 그 후 같은 진료소견을 듣고, 녹내장 검사를 하셔야 한다고 합니다. 기다리라고 합니다. 점심시간이 겹쳤다고, 무조건 기다리라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답답하십니다. 멀리서 왔는데 계속 기다리라고 하다니요. 하지만 시간은 흘러 할아버지께서는 무사히 녹내장 검사를 마치시고, 오후 진료가 있으신 다른 녹내장 교수님께 검사확인을 듣고 4시경쯤에 집으로 돌아가실 수 있었습니다.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2일 혹은 3일' 과 '당일' 차이입니다.

실질적으로는 전문의 수가 많고, 검사기계의 수가 많아서 오는 차이일 것입니다. 그것뿐일까요? 또 다른 차이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바로 태생적 차이이자, 병원이 가지고 있는 철학의 차이입니다. 김안과병원은 현재 건양대학교 부속병원이지만, 첫 시작은 환자분들과 친근한 옆에 있는 동네병원에서 출발했습니다. 대학병원에는 은연중 존재하는 권위의식이 이 병원에는 없습니다. 환자가 '어떻게 하면 빠르게 진료할까', 또한 '간결하게 검사를 할까' 를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제가 진료를 하면서 느낀 이질감은 이 권위의식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4년 동안 대학병원에서 일하면서 권위의식이 배어있었나 봅니다. 3개월이 지난 지금은 아픈 환자분들은 '당일'안에 검사와 확인을 모두 해결해 드려 환자분들의 소중한 시간을 절약해 드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게 되버렸습니다.

다음은 수평적 의사-의사 관계입니다.
대학병원에서는 환자분이 당일 날 오셔서 망막과 교수님과 녹내장과 교수님 두 분을 모두 뵙고, 검사를 하고, 수술날짜를 잡고, 수술 전 준비까지 마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녹내장과에서 있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다른과 교수님께 의견을 묻고, 결과를 당일날 다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저에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런 일은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다시 예를 들어볼까요?
할아버지께서는 녹내장과에서 녹내장검사를 하시고 어느덧 1년 정도가 지나면서 잘 지내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우안의 시력이 떨어지신 것을 느끼셨고, 다시 병원에 가봐야겠다 하고 생각하셨습니다.

우선 대학병원에 가셨습니다. 과거 녹내장교수님께 진료를 받은 경력이 있기 때문에 같은 교수님께 진료를 보셨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이 진료를 하시더니 이건 녹내장에 의한 시력저하가 아니고, 연령관련 황반변성 같으니 망막 교수님을 보셔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냥 보시는 것은 의미가 없으니 검사를 우선 하고 결과를 들으시라고 합니다. 그래서 할아버니께선 다시 검사예약과 진료예약을 잡고, 귀가하셨습니다.

김안과병원에 오신 할아버지는 똑같이 과거에 녹내장과 진료 기록 때문에 녹내장과를 보시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고개를 갸웃 하시던 녹내장 교수님이 이건 녹내장 때문이 아니라 망막에 의한 병 같으니 망막과 진료를 보셔야 한다고 합니다. 확실한 진단명이 의심되기에 산동도 바로 하고, 필요한 검사도 바로 해서, 망막과로 보내드리겠다고 합니다. 할아버지 또 악몽이 떠오르십니다. 기다리시는 거죠. 할아버지께선 하루 종일 여기저기 끌려다니십니다. 검사하고, 눈에다 약 넣고, 다시 망막과 교수님께 진료를 보며 검사확인을 하시고, 초기 연령관련 황반변성이라는 소리를 들으시고, 주의할 점들을 듣고, 약을 타서, 하루 종일 기다리기만 했다고 투덜거리시며 귀가하십니다.
역시 둘의 차이는 '2일 혹은 3일' 과 '당일'의 차이입니다.

마치며..
어떤 환자분에겐 김안과병원은 '하루'라는 인생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간을 벌어드리는 병원일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경험하지 못한 다른 대학병원들도 김안과병원과 같은 생각으로 환자분들에게 친근하게 접근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기 김안과병원에서 제가 3개월간 느낀 점은 김안과병원에서는 환자가 중심이고, 환자를 위해서 이 모든 시스템이 과도하게(?) 효율적으로 짜여져 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저도 김안과병원 사람이 다 된 것 같습니다. 당연하게 느껴지니까요. 앞으로도 김안과병원을 방문하시는 환자분들은 '기다림'이라는 악몽을 계속 꾸실지 모릅니다.

하지만 환자분의 소중한 '하루'를 아껴드리는 '기다림' 일 것입니다.
2012/08/20 12:45 2012/08/20 12:45
Powered by Textcube 1.10.8 : : Tempo primo
Persona skin designed by inureyes, bada edited by LonnieNa, ba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