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디컬 안과 드라마(1): ‘서글픈 사시’
안녕하십니까. 김안과병원 녹내장 전문의 황영훈입니다.
요즘 군디컬(군대 + 메디컬) 드라마 ‘푸른거탑’이 많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병사들이 군대에서 겪는 애환을 유쾌하게 그려내면서 대한민국의 현역 & 예비역 군인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군대 이야기는 대한민국 남성들의 평생 이야기 & 안주 거리입니다. ‘푸른거탑’에 병사들의 군생활 이야기가 있듯 군병원에는 일반 병원에서는 볼 수 없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군병원에서 근무했던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소소한 이야기들을 하나씩 해볼까 합니다.
군대에는 독특한 의료체계가 있습니다. 병사들은 부대 밖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질환은 부대 내에 있는 의무실에서 진료받게 되고, 더 자세한 검사나 치료는 각 지역에 있는 군병원에서 담당합니다. 만약, 해당 군병원에서 해결이 어려울 경우, 환자를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국군수도병원으로 의뢰합니다. 저는 대학병원에서 녹내장분야 임상강사를 한 경력 덕분에 국군수도병원에서 녹내장 전문의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절의 추억들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치료 후 병사들이 행복해하던 모습입니다.
가끔 부대 간부들이 ‘이 병사는 눈이 돌아간 것 같다’고 병사를 데리고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부분 50 프리즘 이상의 심한 외사시 환자들입니다. 외사시는 말 그대로 눈의 정렬이 바르지 않고, 눈이 바깥쪽으로 나가 있는 상태를 이야기 합니다. 특히 심한 외사시 환자들은 선임병사나 간부가 이야기 할 때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는다고 구박받고, 놀림 받으며 지내야 합니다. (사진: 외사시 때문에 항상 구박받아 주눅들어 있던 병사의 눈)
결국 심한 외사시를 치료하려면 사시 교정 수술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나라에서 어른이 되어서 받는 사시 수술을 미용수술로 간주하기 때문에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의 외사시 환자 병사들이 비보험으로 수술을 받을 형편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경제적으로 여유로웠다면 이미 어릴 때 수술 받았겠죠. 외사시 병사들의 부모님과 이야기 해보면 맞벌이 하느라 정신 없어서 아들이 사시가 있는지도 모르고 지냈거나 아들이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놀림 받는다는 것을 알더라도 수술비가 부담스러워 그냥 지내는 경우도 많습니다. 돈 때문에 질병을 치료 받지 못하는 것만큼 서글픈 일이 또 있을까요. 그래서 그들의 진단명은 ‘서글픈 사시’입니다.
군병원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모든 검사와 치료가 병사들에게 무료라는 점입니다. 물론 사시수술도 무료입니다. 때문에 외사시 환자들이 찾아오면 본인이 원할 경우, 가급적 수술을 해주려고 했습니다. (물론 저는 녹내장 전문의지만 국군수도병원에 있는 동안은 사시수술도 함께 했습니다) 외사시 교정 수술을 하고 나면 눈이 다음 사진처럼 변합니다. 수술 후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눈이 충혈되어 있지만 외사시는 많이 좋아졌습니다. (사진: 심한 외사시가 있던 병사의 수술 전후 사진)
사실, 외사시 수술은 술 후 재발이 흔한 편입니다. 그렇지만 어릴 때부터 ‘사팔뜨기’라고 놀림 받고, 콤플렉스에 힘들어하는 그들 입장에선 나중에 재발하더라도 수술이라도 한 번 받아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겠죠. 수술 전엔 한 번도 웃지 않던 병사가 수술 후 활짝 웃던 모습이 아직 생생합니다. 그들이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들이 군병원을 방문하는 동안에는 수술 전보다 훨씬 자신감 있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행여나 나중에 사시가 재발하더라도 군대에서 사시 수술 받았던 추억이 나쁘지는 않겠죠.
지금 이 시각에도 전국 각지의 부대에서 고생하고 있을 병사들이 부디 건강하게 무사히 전역하기를 기원합니다. 무엇보다 입대 전 가정형편으로 제 때 치료받지 못한 질병이 있는 병사들은 군대에 있는 동안 군병원을 방문하여 해결책을 찾아보고 조금이라도 마음의 짐을 덜기 바랍니다.
다음 에피소드 때 뵙겠습니다.
Comments List
와 수술이 잘 되었네요 ...
군대에서 다치는 것만 걱정하는 엄마들에게 병을 치료하는 군대의 모습이 참 좋습니다. 사실 그 비싼 MRI 도 군병원에서는 무료라면서요?
그래도 그런 시설 이용하지 않고 건강하게 제대하는 것이 제일이긴 합니다.
-----군대간 아들을 둔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