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김의 황반변성 이야기 31 – 황반변성 치료, 역사 이야기 (1)
안녕하세요? 망막전문의 김재휘입니다.
‘황반변성이 요즘도 이렇게 치료하기 어려운데, 먼 옛날에는 병이 있다는 것을 알고도 제대로 치료할 수 없었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황반변성으로 주사 치료를 받고 있던 환자 한 분이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환자분은 아마 ‘황반변성’이라는 한자 용어를 고려하였을 때, 예전부터 이 병이 있다는 것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라고 추정하셨던 듯 합니다. 그런데 사실 동양권에 비해 근대 의학이 훨씬 더 발달하였던 유럽에서조차 1800년대 중순 까지는 이 병이 있다는 것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황반변성’, ‘백내장’, ‘녹내장’ 등과 같은 한자 진단명은 서양에서 확립된 진단명들을 동양 사람들이 쓰기 쉽게 한자어로 번역한 것들입니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에 가장 앞섰던 일본 사람들이 번역한 말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황반변성의 역사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 해 드리고자 합니다.
황반변성이 발생한 눈, 가운데에 노란 부위들이 신경이 변성된 부분입니다.
‘눈’에 생기는 병이라고 하면 어떤 병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아마 ‘백내장’이 아닐까 합니다. 한 번쯤은 다 들어 보셨지요?
백내장은 과거에도 자주 진단할 수 있는 눈 질환이었습니다. 물론 지금과 같은 조기 진단은 불가능했지만 심하게 진행한 경우 시력이 심하게 떨어지면서 동공이 하얗게 변하기 때문에 누가 봐도 ‘이건 뭔가 병이 있다.’라고 알 수 있었지요.
수천 년 전부터 인도와 중동을 중심으로 백내장 수술이 이루어졌다는 기록도 있을 정도이니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 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합니다.
그런데 황반변성은 어떨까요?
황반변성이나 녹내장과 같은 병은 눈 속의 신경에 문제가 생기는 병입니다.
눈 속의 신경을 관찰할 수 있는 과학기술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당연히 진단할 수 없었던 병이지요. 뭔가 점점 시력이 상실되며 눈이 멀고 있는데… 원인을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고대 서양에서는 몸 속 체액들의 균형이 이루어졌을 때 건강한 상태가 되며, 이러한 균형이 깨어지게 되면 여러 질병이 발생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황반변성과 같은 병이 생겨 시력이 떨어지게 되는 경우 역시 그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하였으나 이러한 체액 사이의 균형이 깨어져 병이 발생한다고 생각하고 여기에 근거하여 각종 약초 혹은 물리요법으로 치료하고자 하였을 것입니다.
갈레노스 : 약 2000년 전에 서양 의학 (서양의학이라 함은 단순히 유럽의 의학 뿐 아니라 유럽~중동~멀게는 인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의 의학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이들 지역의 의학은 고대로부터 활발한 교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을 집대성한 사람입니다. 몸 속의 균형이 깨어지면 병이 발생한다는 개념을 확립하였으며 향후 1000년 이상 서양 의학에서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깨어진 균형을 찾아주는” 데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기가 도래하고 과학이 발달하면서 마치 성서와도 같이 받아들여지던 갈레노스의 주장도 상당부분 틀렸음이 증명되었습니다.
르네상스시대가 되며 본격적인 해부학이 발달하게 되고 눈의 구조 역시 상당부분 밝혀졌으나 눈의 다양한 구조가 과연 무슨 기능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었습니다. 특히 황반부위의 신경은 너무 작고 얇아 정확한 관찰조차 어려웠습니다.
동공을 통해 눈 속 신경을 제대로 확대관찰 할 수 있게 된 것은 광학이 본격적으로 발전한 1800년대 이후부터입니다. 1800년대 중반을 넘어서야 유럽의 의사들이 황반변성이라는 병이 있다고 보고하기 시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