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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내장 전문의가 환자에게 보내는 편지 (9): ‘녹내장 의증이 뭔가요?’

녹내장은 눈 속에 있는 시신경이 점점 약해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런데 초기에는 시신경이 약해지더라도 본인이 잘 느끼지 못합니다. 따라서 녹내장 진단의 첫걸음은 본인의 증상과 상관 없이 시신경을 정기적으로 검사 받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환자들이 녹내장을 처음 발견하게 되는 가장 흔한 경로는 녹내장과 관련 없이 눈이 피곤하거나, 빨개지거나, 침침해서 근처 안과에 갔다가 받은 시신경 검사에서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입니다.

눈 속에 있는 시신경을 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안과 의사가 검안경이나 현미경을 이용하여 눈으로 직접 시신경의 모양을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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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안과에서 시신경을 검사하는 대표적인 방법입니다. 왼쪽은 직상검안경을 이용하는 방법이고, 오른쪽은 세극등현미경에 특수 렌즈를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두 방법은 나름대로의 장단점이 있습니다. 어떤 방법을 사용할지는 환자의 눈 상태나 안과 의사의 선호도에 따라 결정됩니다>

시신경 검사가 말만 들어서는 간단할 것 같지만 사실, 시신경의 모양을 보고 정확하게 녹내장유무를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1) 사람 눈으로 본 시신경의 겉모양이 약해 보이더라도 실제로는 괜찮은 경우가 있고, 반대로 사람 눈으로 봐서는 괜찮아 보여도 실제로는 약한 경우도 있고, 2) 시신경이 약해지는 것이 녹내장 외에 다른 이유들에 의해서도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안과 의사가 눈으로 확인한 시신경의 겉모양이 약해 보이는데 정말 약한 것인지, 원인이 녹내장 때문인지 애매한 상황을 ‘녹내장 의증’이라고 부릅니다. 말 그대로 ‘녹내장이 의심되는 상황’입니다.

만약 일차적으로 안과 의사가 눈으로 본 시신경의 모양이 약해 보이면(녹내장이 의심되는 ‘녹내장 의증’의 상황이라면) 그 다음 단계로 1) 정말 시신경이 약한지, 2) 그렇다면 원인이 무엇인지 찾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정밀검사가 필요한데 병원마다 세세한 검사 종류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대부분은 1) 시신경의 모양을 자세히 보기 위한 확대 사진 검사, 2) 신경섬유의 두께를 측정하는 영상 검사들(OCT, HRT, 등), 3) 시신경의 기능을 측정하는 시야검사를 시행하게 됩니다. 쉽게 생각해서 학창시절 신체검사할 때, 우선 구조(체격)와 관련된 키, 몸무게 등을 측정하고, 기능(체력)과 관련된 달리기, 윗몸 일으키기 같은 검사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신경도 구조와 기능을 모두 평가하게 되는데, 구조에 해당하는 것이 사진을 비롯한 영상검사이고, 기능에 해당하는 것이 시야검사입니다.

녹내장 의증의 상황에서 정밀검사를 하면 다음과 같은 경우의 수가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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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겉보기만 약해 보이고 실제로 괜찮은 경우: 그냥 두셔도 됩니다. 겉보기보다 실제 모습이 중요하니까요.

- 정말 약한 시신경

1) 선천적으로 약한 시신경: 역시 그냥 두셔도 됩니다. 구조적으로 약하기는 하지만 기능은 잘 발휘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비유를 하자면, ‘빼빼 말랐지만 체력은 좋은 사람’에 해당합니다.

2) 근시 때문에 약해진 경우: 근시가 있으면 근시가 없는 눈보다 상대적으로 시신경이 약해지게 됩니다. 이미 학창시절에 근시 정도와 시신경의 모양이 대부분 정해지기 때문에 이후에 어떻게 한다고 상황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굳이 무리해서 치료할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근시가 있으면 당장은 괜찮더라도 앞으로 녹내장이 생길 위험이 있기 때문에 방심하지 말고 계속 관찰해서 녹내장이 생기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얼마마다 검사를 반복할지는 녹내장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의 정도에 따라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서 안압이 높은 편이고, 녹내장 가족력이 있다면 몇 달마다 검사를 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더 간격을 늘려도 됩니다.

3) 녹내장이 생겨서 약해진 경우: 치료가 필요합니다. 그냥 놔두면 시신경이 점점 더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4) 다른 이유 때문에 시신경이 약해진 경우: 원인에 따라 치료가 달라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약 때문에 시신경이 약해졌다면(특히 결핵약) 원인이 되는 약을 줄이거나 중단해야 하고, 뇌종양 때문에 시신경이 눌려서 약해졌다면 뇌종양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모든 정밀 검사를 다 받았는데도 애매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땐 그저 ‘녹내장 의증’으로 남겨두기도 합니다. 그 상황에서 치료를 할지 말지는 녹내장의 위험요인이나 환자와 의사의 성향 등 여러 요인을 감안해서 결정하게 됩니다.

이렇듯 녹내장 진단 과정에는 여러 가지 검사와 경우의 수, 영향 인자들이 작용하게 됩니다. 게다가 그 과정이 공식에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오랜 기간의 공부와 경험이 중요합니다. 비록 그 과정에서 시행하는 검사들이 환자에게 직접적인 해를 주지는 않더라도 그 결과의 판독은 환자에게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녹내장이 아닌 환자에게 녹내장 치료를 하거나, 녹내장이 있는데 진단을 제대로 못해서 생기는 결과는 환자에게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과 의사들은 안과 검사 장비를 비전문가에게 허용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여기 저기 나오는 내용 적당히 골라서 버무리고, 무협지에 나올 것 같은 상상을 가미해서 스스로 ‘녹내장에 대해서 안다’고 주장하면서 효과가 제대로 입증되지도 않았고, 성분과 원산지도 공개하지 않는 비싼 약을 권유하는 사람들에게 안과 검사 장비 사용을 허용하려는 것이 정말 환자를 위하는 길일까요? 안타깝지만 제가 보기엔 지금 우리나라에서 그런 중요한 판단을 할 때, 해당 분야 전문가의 의견을 그다지 존중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런 이야기 하면 ‘자기 이권만 생각하는 부도덕한 사람’으로 몰리기 쉽습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환자 스스로 적극적으로 공부하고 감언이설에 현혹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도 환자분들의 그런 판단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어 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아무쪼록 여러분들께서 안과 전문의에게 제대로 된 시신경 검사 잘 받으셔서, 방황하거나 녹내장을 너무 늦게 발견하는 일 없었으면 합니다.





Writer profile
녹내장과 베토벤을 사랑하는 안과의사
2016/05/16 16:23 2016/05/16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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