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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내장 이야기(1): ‘두려움 이겨내기(1)’


안녕하십니까. 김안과병원 녹내장센터 황영훈입니다. 그간 녹내장 환자들을 만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습니다. 녹내장을 주로 보는 안과전문의 입장에서 환자에게 드리고 싶었던 말씀, 이번 기회에 편지의 형식을 빌어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견해임을 미리 밝힙니다. 따라서 한국녹내장학회나 김안과병원의 공식적인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무서운 녹내장
행복하게, 건강하게 지내오던 50대 여성이 어느 날 건강검진에서 녹내장이 의심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녹내장은 실명 될 수 있는 무서운 병이라고 합니다. 그 순간부터 온갖 생각이 떠오릅니다. ‘정말 녹내장이면 어떻게 하지’, ‘나는 언제쯤 실명될까’, ‘직장은 어떻게 하지’, 등등… 떨리는 마음으로 안과를 방문합니다. 이것저것 검사 받은 결과, 담당 의사는 녹내장이 맞다고 합니다. 그저 눈물부터 납니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하나’, ‘내 인생은 이렇게 끝나나’…

실제로 제 진료실에서 거의 매일 일어나는 장면입니다. 많은 환자들이 ‘녹내장이 맞습니다’라고 하면 절망의 눈물을, ‘다행히 녹내장이 아닙니다’라고 하면 안도의 눈물을 흘립니다. 그래서 간호사들에게 ‘선생님 왜 자꾸 환자 울리냐’고 핀잔을 듣습니다. 시력을 잃는다는 것은 그 어떤 신체적 고통보다 큰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차라리 초기 암이라면 수술로 제거라도 할 수 있지, 녹내장은 수술로 제거할 수 있는 병도 아닙니다. 그저 더 나빠지지 않기 하기 위해 평생 약물치료를 해야 한다니 참 답답한 노릇입니다. 녹내장으로 인한 실명의 두려움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녹내장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방법은 없을까요? 우선 두려움의 원인을 생각해보고, 그 해결책도 찾아보겠습니다.


두려움의 원인

무엇이 녹내장 환자들에게 그토록 큰 두려움을 주게 되었을까요? 정말 녹내장은 그렇게 무서운 병일까요? 제가 생각하는 그 두려움의 가장 큰 원인은 ‘보이지 않는 실체에 대한 불안감’인 것 같습니다. 녹내장은 시신경이 조금씩 약해지면서 보는 범위가 서서히 좁아지는 병입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 진행속도가 빠르지 않기 때문에 환자 본인이 느끼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내가 어느 정도의 녹내장인지’, ‘나의 녹내장이 어느 정도 속도로 진행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두려움이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사람이 느끼는 가장 큰 공포 상황 중 하나가 어두운 곳에 있는 것입니다. 그저 텅 빈 공간에 있을 뿐인데 어둡다는 것만으로 두려움을 느낍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두려움 이겨내기

어둠이 두렵다면 불을 밝히면 됩니다. 어렵고 힘들고 무섭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막상 실제 겪어보면 의외로 해볼만한 경우가 많습니다. 녹내장이 두렵다면 스스로의 녹내장 상태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아보고 자신의 녹내장과 친해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자신의 상태는 담당 의사와의 대화로 파악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처럼 짧은 시간에 많은 환자를 봐야 하는 시스템에서는 의사가 환자에게 자세히 설명하기 어렵고, 환자가 의사에게 질문 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저도 여유롭게, 우아하게 진료 보고 싶지만 그러면 우리 나라 대부분의 병원이 문을 닫아야 합니다. 참 비합리적인 시스템입니다. 바쁜 와중에 막상 질문 하자고 하니 민망하기도 하고, 괜히 면박 당할까 봐 망설여집니다.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질문을 할 수 있을까요?

1) 우선, 질문 전에 본인이 무엇이 궁금한지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냥 막연하게 ‘녹내장이 어떤 병이에요?’라고 질문 하고는 자세한 대답을 기대하면 안됩니다. ‘책을 보니 카페인이 안압을 올릴 수 있다고 하는데 제 경우 커피를 끊어야 할까요?’라고 질문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입니다.

2) 가끔 질문 목록을 빼곡히 써 오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의사 입장에서 짧은 시간 내에 자세히 대답해드리기 쉽지 않습니다. 질문은 가급적 한 번에 1~2개씩만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또 궁금한 것이 있다면 다음 방문 시에 질문하시면 됩니다.

3) 적절한 질문 타이밍을 잡기 쉽지 않다면 ‘선생님, 질문 있습니다’라고 명확히 의사를 밝히시는 것이 좋습니다. 의사도 질문 들을 준비를 해야 하니까요… 사실, 의사가 진료기록 작성이나 검사결과 확인 중일 때는 환자가 하는 말에 집중하기 어렵습니다. 그럴 땐 ‘내가 질문 할건데 잘 들어주세요’라고 미리 사인을 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녹내장 상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사실 환자 입장에서 꼭 알아두어야 할 것들은 간단합니다. 녹내장 환자가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알아두면 좋은 네 가지 항목들, 하나씩 말씀 드리겠습니다.

1. 녹내장의 종류: ‘순한 녹내장인지 독한 녹내장인지’
녹내장에도 종류가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환자들에게 정확한 녹내장 종류를 잘 알려드리지 않습니다. 어차피 말이 너무 어려워서 느낌이 잘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녹내장 중 가장 흔한 종류는 ‘원발개방각녹내장’입니다. 분명 한글인데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한자식 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한글로 풀어 쓰자니 적당한 말을 찾기 쉽지 않습니다. 원발개방각녹내장 중에서도 우리나라는 특히 안압(눈의 압력)이 높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걸 또 구분해서 ‘정상안압녹내장’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정상안압’이라는 말이 오히려 환자에게 혼란을 주는 것 같아 저는 그 표현도 잘 쓰지 않습니다. 한국녹내장학회에서 조사한 ‘남일연구’에 의하면 정상 한국인의 평균 안압은 13.5 mmHg였고, 정상의 범위를 ‘평균 ± (표준편차X2)’로 봤을 때, 정상범위는 7.5에서 19.5 mmHg였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정상인 수천 명의 평균 값이지 환자 개개인의 정상 범위는 다릅니다. 가령, 안압이 똑같이 20 mmHg라도 누구에겐 정상이고, 또 다른 누구에겐 높은 안압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쉽게 예를 든다면 똑 같이 소주를 한 병 마셔도 누군 멀쩡하고 누군 필름이 끊기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다행히 정상안압녹내장은 대부분의 경우 진행이 빠르지 않습니다. 치료만 잘 받으면 정상안압녹내장으로 실명까지 가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반면, 신생혈관녹내장이나 포도막염에 의한 녹내장은 안압이 60~70 mmHg까지 오르는 경우도 종종 있고, 약물 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아 수술이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수술을 해도 결과가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녹내장을 크게 ‘순한 녹내장’과 ‘독한 녹내장’으로 나누어서 이야기 합니다. ‘순한 녹내장’은 대부분의 정상안압녹내장을 포함한 원발개방각녹내장이고, ‘독한 녹내장’은 신생혈관녹내장, 포도막염녹내장, 거짓비늘녹내장, 외상이나 수술 후 발생한 녹내장입니다. ‘어머님은 원발개방각녹내장이세요’라고 하면 ‘그게 뭐지?’라는 반응을 보이시지만, ‘어머님은 순한 녹내장이세요’라고 하면 ‘녹내장도 순한 것이 있어?’하면서 좋아하십니다. 하루에 50명 정도의 녹내장 환자를 진료 한다면, 그 중에 40명 정도는 ‘순한 녹내장’이고, 10명 정도는 ‘독한 녹내장’입니다. 50명 중에 녹내장 때문에 실명까지 가는 환자는 2~3명 정도인데 대부분 ‘독한 녹내장’을 가진 분들입니다. 바꿔 말하자면 ‘순한 녹내장’은 치료를 꾸준히 잘 한다면 실명까지 가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만약 본인이 ‘순한 녹내장’이라면 여유롭게 치료하셔도 괜찮고, ‘독한 녹내장’이라면 조금 더 긴장해서 열심히 치료하셔야 합니다. ‘독한 녹내장’이라고 절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일단 최대한 노력을 해보고, 안타깝지만 그래도 안 되는 건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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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독한 녹내장’ 중의 하나인 신생혈관녹내장의 모습입니다. 홍채 표면에 신생혈관들이 생겨있습니다(하얀 화살표). 비록 독한 녹내장이지만 초기에 진단해서 잘 치료한다면 적절하게 다스릴 수 있습니다. 신생혈녹내장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당뇨로 인한 합병증입니다. 따라서 당뇨가 있는 경우, 본인의 증상과 상관 없이 녹내장 검사를 꼭 받으셔야 합니다>


2. 안압: ‘10대/20대 초반인지, 중반인지, 후반인지’

안압, 즉 눈의 압력은 녹내장의 발생과 진행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안압이 높으면 시신경이 눌려서 손상 받게 됩니다. 몸무게가 많이 나갈수록 무릎 관절이 더 눌려서 손상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따라서 안압의 상태는 녹내장의 상태를 잘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입니다. 하지만 굳이 매번 본인의 안압이 얼마인지 자세히 기억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안압은 워낙 많은 요인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조그만 변화에 대해선 너무 민감하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예를 들자면, 같은 사람이라도 나이에 따라서, 하루 중 언제 안압을 쟀는지, 계절에 따라서, 커피를 마셨는지, 전날 잠을 잘 잤는지, 몸에 끼는 옷을 입었는지, 넥타이를 했는지, 긴장을 했는지, 검사할 때 눈에 힘을 줬는지, 등등에 따라 안압이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 것들 일일이 다 신경 쓰자면 끝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환자들에게 구체적인 안압 수치를 잘 알려드리지 않습니다. 그래도 대략적인 범위를 10대 혹은 20대 초반인지, 중반인지, 후반인지 정도로 알고 있는 것이 본인의 녹내장 상태를 아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의 안압 정도면 괜찮은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깁니다. 사실 ‘적정 안압’이라는 것의 기준을 정하기 쉽지 않습니다. 저는 적정 안압을 ‘녹내장의 진행을 성공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수준의 안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녹내장이 진행하는지 아닌지를 먼저 알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적어도 몇 년간 경과관찰을 해봐야 합니다. ‘적정 안압’은 그냥 간단한 공식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자신의 안압이 적절한지’는 담당의사의 의견을 믿고 따르시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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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만 안압계를 이용한 안압측정. 눈에 기구가 닿는 것이 살짝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이 방법으로 측정한 안압이 현재로서는 ‘표준안압’입니다. 왼쪽 그림처럼 기구를 눈에 살짝 대면 의사가 보는 현미경 화면에 오른쪽 그림과 같은 초록색 반원이 위아래로 보입니다. 그 때 왼쪽 그림에 보이는 것처럼 숫자 다이얼을 돌려서 두 반원이 만나는 지점의 값이 안압입니다>

녹내장 환자가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알아두면 좋은 네 가지 항목들, 나머지는 다음 시간에 이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Writer profile
녹내장과 베토벤을 사랑하는 안과의사
2013/12/06 12:39 2013/12/06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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