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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내장 전문의가 환자에게 보내는 편지 (4): ‘집착에서 벗어나기(2)’

안녕하십니까. 김안과병원 녹내장 전문의 황영훈입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환자분들께 드리는 편지입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견해임을 미리 밝힙니다. 따라서 한국녹내장학회나 김안과병원의 공식적인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간 여러 연구에서 녹내장 환자가 우울하고 강박적이라는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녹내장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원래 성격이 그런 사람이 녹내장이 잘 생긴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의사 입장에서 녹내장 환자들을 만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이 정도면 괜찮으니 마음 편하게 가지세요’라고 아무리 이야기 해도 환자 입장에선 마음 편히 가지는 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조심스럽게 말씀 드립니다만 만약 본인 스스로도 녹내장 때문에 우울하고 강박적인 마음이 힘들다면 정신과 상담을 함께 받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사실 지난 시간에 말씀 드린 30대 ‘검사결과 집착형’ 환자의 경우, 초기 녹내장이라 치료만 잘 받으면 크게 불편함 없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미 의사의 조언보다 ‘본인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서(‘본인의 생각에 집착해서’) 누가 뭐라고 해도 행복해지기 어려워 보였습니다. 제 환자 중에 비슷한 정도의 녹내장을 가진 비슷한 연령의 환자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나름 녹내장 치료에 적응하면서 열심히, 큰 문제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결국, ‘녹내장 환자로 살아가는 인생’이 행복한지 불행한지는 본인의 마음에 달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집착형 환자’들은 왜 검사결과에 집착하게 될까요? 아마 불안감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왜 불안할까요? 원래 의심이 많은 성격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의사를 온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 아닐까요… 결국 집착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담당 의사를 신뢰하는 것인데 그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어떻게 조금이라도 더 마음에 드는, 신뢰할 만한 의사를 만날 수 있을까요?


좋은 의사 만나기
나의 불안을 덜어줄 좋은 의사, 어떻게 해야 찾을 수 있을까요? 어떤 의사가 좋은 의사일까요?


첫째, 녹내장 전문가인지 확인한다
누가 뭐래도 좋은 의사의 첫 번째 조건은 ‘실력’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일단 그 선생님이 안과전문의인지, 녹내장분야에 어느 정도 경험이 있는지 아는 것이 첫 단계입니다. 물론 자세히 알기 어렵겠지만 요즘은 병원 인터넷 사이트에 의사의 약력이 나와 있어서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합니다. 참고로 안과의사들 중에서 녹내장을 더 자세히 공부하는 한국녹내장학회 회원은 2013년 현재 130명 정도인데 강원도에서 제주도까지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 근무 중입니다. 사실, 환자의 녹내장이 독한 녹내장이거나, 진행이 빠르거나, 안압이 잘 조절되지 않는 경우가 아니라면 안과전문의 선생님이라면 누구나 잘 봐주실 수 있습니다. 제 환자들 중에도 평소엔 집 근처 안과에서 매달 안압 확인하고, 약 처방 받고, 큰 병원에는 6개월이나 1년에 한 번씩 오셔서 정밀검사 후 상태 확인하는 환자도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간단한 검사나 처방, 처치는 동네안과에서, 정밀검사나 복잡한 수술은 큰 병원에서 하는 진료 방식이 제일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큰 병원만 고집할 필요 없다는 뜻입니다.


둘째, 나랑 잘 맞는 성격의 의사를 찾는다
많은 환자들이 의사가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친절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의사도 자신만의 성격을 가지고 있고, 피곤에 찌든 평범함 사람입니다. 원래 성격이 좀 거칠고 무뚝뚝한 의사에게 자상한 면을 기대했다가 실망했다면 그 의사만을 탓할 수 없습니다. 어떤 환자는 자세히 설명해주고 자신의 뜻을 존중해주는 의사를 선호하고, 또 어떤 환자는 의사가 알아서 결정하고 적극적으로 치료를 이끌어 주기를 바랍니다. 전자에 속하는 환자의 경우, 의사가 적극적으로 치료를 주도하면 무시 당하는 듯한 불편함을 느끼고, 후자에 속하는 환자의 경우, 의사가 적극적으로 주도하지 않으면 오히려 답답함을 느낍니다. 환자와 의사의 스타일이 맞지 않으면 신뢰하는 관계가 만들어지기 어렵습니다. 의사가 환자의 선호도에 맞게 스타일을 그때그때 바꾸면 좋겠지만 사람의 타고난 성격은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의료 접근성이 좋은 곳에서 굳이 나랑 성격이 잘 맞지 않는 의사에게 계속 치료 받으면서 불편해할 필요 있을까요? 유명한 의사가 꼭 좋은 의사는 아닙니다. 오히려 유명세에 기대 잔뜩 하고 갔다가 실망만 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환자에게 좋은 의사는 ‘자신과 성격이 잘 맞는 의사’입니다. 다행히 녹내장의 경우, 치료 방향이 의사마다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어차피 비슷한 약 쓰고, 비슷한 검사 받을 거라면 몇몇 선생님을 직접 만나보고, 자기랑 스타일이 맞는, 그래서 ‘편안하게 믿을 만한’ 의사를 직접 찾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를 믿지 못하겠다면, 그리고 스스로 불안한 마음을 버리지 못하겠다면 본인이 공부를 더 열심히 해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하지만 ‘집착형 환자’에게는 어설프게 공부하는 것이 오히려 새로운 집착의 대상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40대 여자 환자가 녹내장 검사 진행방식에 불만을 제기했습니다. 검사실에서 시야검사를 먼저 하고 진료실에서 안압 측정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어디선가 ‘시야검사 후 안압이 올라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시야검사 후 안압을 측정하는 것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까요? 어쩌면 예전에 발표된 몇몇 논문을 봤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시야검사 후 안압이 일시적으로 오른다는 내용의 논문이 발표된 적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공부해 본다면, 시야검사 후 안압이 오르지 않았다는 논문도 있고, 안압이 오르더라도 1~2 mmHg 정도의 적은 양이 일시적으로 오르기 때문에 대세에 큰 영향이 없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사실, 논문에 나오는 내용이랑 실제 환자 치료할 때랑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수 백 편의 논문을 쓴 녹내장분야의 세계적인 대가가 ‘내가 쓴 논문의 내용을 그대로 다 믿지는 말라’고 이야기 하기도 했죠. 제가 보기엔 ‘시야검사 후엔 안압이 오른다는데 이 병원에서는 왜 그렇게 검사할까?’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안압을 더 올릴 것 같습니다.



이 환자에겐 굳이 몰라도 되는 사실을 공부해서 오히려 ‘새로운 걱정 거리’(혹은 ‘집착의 대상’)가 생긴 셈입니다. 물론 자신의 병에 대해서 공부하고 질문하는 자세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공부를 할거면 제대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공부한 내용에 얽매이면 안 됩니다. 어디까지나 공부라는 것은 강을 건너기 위한 뗏목이고, 달을 보기 위한 손가락일 뿐이니까요. 적당한 공부가 필요하지만 거기에 집착해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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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내장 환자의 빛간섭단층촬영(OCT) 결과입니다. 알록달록한 그림과 숫자가 많아서 환자들이 자칫 불필요한 집착에 빠질 수 있고, 잘못된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 지표들 중에서 빛간섭단층촬영으로 산출한 ‘C/D ratio’ 값은 실제 임상에서 큰 의미가 없지만 일부 환자들은 그 값을 녹내장의 정도나 진행을 판단하는 중요한 지표라고 오인하기도 합니다. 굳이 그런 것까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는데 말입니다>

다음 시간엔 녹내장 전문의가 환자에게 보내는 편지 (5): ‘욕심 버리기(1)’로 찾아뵙겠습니다.

Writer profile
녹내장과 베토벤을 사랑하는 안과의사
2014/01/16 14:07 2014/01/1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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