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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내장 이야기(3): ‘집착에서 벗어나기(1)’

안녕하십니까. 김안과병원 녹내장센터 황영훈입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환자분들께 드리는 편지입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견해임을 미리 밝힙니다. 따라서 한국녹내장학회나 김안과병원의 공식적인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녹내장을 대하는 환자의 자세

그 동안 제 경험을 돌이켜보면 녹내장을 대하는 환자의 자세는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부정형(회피형)
어떤 환자들은 아무리 녹내장이 있다고 말씀 드려도 ‘내가 느끼기엔 이상 없는 것 같은데’라고 치료를 거부하기도 합니다. 그런 환자들의 마음 속에는 ‘내가 아프다니. 그럴 리가 없어’라는 ‘부정’이라는 방어기제가 자리잡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병이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방법으로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유형의 환자들이 가장 예후가 좋지 않습니다. 치료를 받지 않고 있다가 몇 년 뒤에 상태가 아주 악화되고 뒤늦게 다시 나타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둘째, 걱정형

대부분의 환자들이 이 형태에 속할 것 같습니다. 본인이 녹내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녹내장 때문에 실명될까 봐 걱정하면서 치료 중인 환자들입니다.


셋째, 해탈형

한편, 또 어떤 환자들은 ‘녹내장이 있습니다’라고 말씀 드려도 ‘그려… 그럼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할게’ 하시고는 담담하게 받아들이시기도 합니다. 녹내장에 대해서 더 설명 드리려고 해도 알아 들으시는지 아닌지 그저 웃으면서 ‘약이나 좋은 걸로 지어주셔’라고 하십니다. 일견 무심한 듯 보이지만 치료를 열심히, 의사 권유대로 따른다는 점에서 ‘부정형’ 환자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이 분들은 큰 불만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시고, 열심히 치료를 하신다는 점에서 ‘해탈형 환자’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신기하게도 ‘해탈형 환자’들은 감정의 동요가 크게 없으시고 안약도 열심히 점안하십니다. 그저 그 분들껜 ‘어머님~ 안압도 좋고, 시신경도 좋고, 시야도 좋고, 다 좋으시네요!’라고 한 마디만 해드리면 충분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녹내장 환자들은 그저 의사가 들려주는 ‘괜찮습니다’라는 말 한 마디 듣기 위해서 몇 달에 한 번씩 멀~~리 시골에서 버스 타고, 기차 타고 오시는 것입니다. 다행히 제 환자들 중엔 ‘해탈형 환자’들이 많으십니다. ‘좋습니다’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굳은 표정을 지을 수 없으니 저도 많이 웃게 되고, 환자들도 좋아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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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형 환자’를 만나는 것은 행복하고 보람 있는 일입니다>



‘해탈형 환자’ 되기

어차피 이미 생긴 녹내장을 없앨 수는 없습니다. 이왕 녹내장환자로 살아가야 한다면 ‘해탈형 환자’가 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제가 봤을 때 ‘해탈형 환자’들이 제일 행복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해탈형 환자’가 되는 첫 번째 방편은 담당의사를 믿고 스스로의 집착과 욕심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사실 ‘해탈형 환자’들은 질문이 많지 않으십니다. 그저 담당 의사를 믿고 지시를 충실히 따릅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태가 더 악화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 또한 빨리 받아들입니다. 의사 입장에서 제 의견을 믿고 존중해주시니 참 고마운 분들입니다.

의사 입장에서 가장 불행해 보이는 환자는 검사 결과에 유난히 집착하는 환자들입니다.

1년 전에 다른 병원에서 녹내장을 진단 받은 30대 환자가 저를 찾아 왔습니다. 진료 접수 시에 담당의사의 의견과 상관 없이 시야검사부터 하고 진료를 받겠다고 하시길래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검사가 끝나고 진료실에 들어오자마자 초면인 저에게 그 환자가 한 첫 마디는 ‘안녕하세요’가 아니라 ‘MD 값이 얼마에요?’ 였습니다. ‘-3.0 dB입니다’라고 하자 시야검사에 나오는 다른 숫자들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달라고 합니다. 몇 가지 설명 드리다가 ‘자세한 것을 다 설명하기 어렵습니다’라고 했더니 얼굴이 붉어지고 언성이 높아지더니 ‘환자의 권리’, ‘의사의 자세’에 대해서 주장 하다가 진료기록과 검사결과를 복사해서 다른 병원으로 갔습니다. 들리는 소문에는 그 병원에서도 같은 식의 진료를 보고 또 다른 병원으로 갔다고 합니다.

이 환자는 ‘검사결과 집착형’입니다. 굳이 분류 하자면 ‘걱정형’ 환자 중에서 그 걱정이 지나쳐서 집착과 불안으로 나타나는 극단적인 경우입니다. 또는 원래 성격이 강박적인 경우도 있겠죠. 본인 검사결과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일부 환자들은 검사결과에 나오는 숫자들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이 현상은 ‘검사결과 집착’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 제일 적합할 것 같습니다. 특히 녹내장 검사결과에는 수 많은 숫자들이 나오기 때문에 더 그럴지도 모릅니다. 이 분들의 특징은 올 때마다 검사에 나오는 숫자를 확인하고 조금이라도 변화가 있으면 불안해합니다. 가령 지난 번엔 시야검사 MD 값이 -3.0 dB이었는데 이번엔 -4.0 dB이라고 하면 ‘환자 스스로 생각한 기준’으로 ‘시야가 더 나빠졌다’고 판단해버립니다. 그리고 다음 번 시야검사 할 때까지 ‘-4.0’이라는 숫자에 계속 집착하게 됩니다. 가령, 지난 번에 안압이 15 mmHg였는데 이번엔 17 mmHg가 나왔다면 ‘환자 스스로 생각한 기준’으로 안압조절이 충분하지 않으니 치료 방법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17’이라는 숫자에 집착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일부 녹내장 환자들은 검사결과에 집착하게 되었을까요? 집착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을까요?


Writer profile
녹내장과 베토벤을 사랑하는 안과의사
2014/01/02 17:15 2014/01/02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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