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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내장 이야기(8): ‘정상안압 녹내장 이해하기’ 

녹내장은 정의부터, 발생기전, 치료까지 환자 입장에서 금방 이해하기 어려운 병입니다. 당장 환자에게 ‘환자분은 정상안압 녹내장이 있기 때문에 안압 낮추는 치료가 필요합니다’라고 이야기 하면 환자 입장에서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솔직히 제가 환자라도 이 말을 듣는다면 ‘안압이 정상인데 왜 낮추지?’하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여러 녹내장 중에서 가장 흔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정상안압 녹내장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정상안압 녹내장의 정의와 발생원인


공식적인 의학용어로 따지자면 우리나라 녹내장의 대부분은 ‘정상안압 녹내장’입니다. ‘정상안압 녹내장’은 안압이 통계적으로 정상 범위 이내(10에서 20 mmHg)인 상황에서, 다른 동반 이상 없이 생기는 녹내장으로, 실명까지 가는 비율이 전체 환자의 5%보다 낮은 ‘순한 녹내장’의 대표적인 유형입니다. 사실 저는 환자에게 이야기 할 때 ‘정상안압 녹내장’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그 말 자체가 ‘안압이 정상인데 왜 녹내장이 생기지?’, ‘안압이 정상인데 왜 안압을 낮추지?’ 등등의 혼란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정상안압 녹내장’에서 이야기 하는 ‘정상’은 녹내장이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측정한 안압의 범위를 뜻하는 것이지 그 사람 개개인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통계청에서 조사한 대한민국 남성의 평균 주량이 소주 한 병이라면 대부분의 사람에겐 그 양이 ‘정상’이겠지만 누군가에겐 ‘과량’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정상안압 녹내장’이라는 말을 쓰는 대신 ‘녹내장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환자분은 치료만 잘 받으면 별 문제 없는 순한 녹내장’이라 말씀 드리고, 녹내장이 생기는 이유에 대해서는 ‘똑같이 소주 한 병을 마셔도 멀쩡한 사람 있고, 기절하는 사람 있듯이 같은 안압에 대해서도 튼튼한 시신경을 가진 사람, 녹내장이 생기는 약한 시신경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말씀 드립니다.

쉽게 생각하면 정상안압 녹내장 환자들은 다른 사람보다 시신경이 약해서 다른 사람에겐 멀쩡한 안압에서도 시신경이 손상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시신경이 더 약하기 때문에 안압을 더 낮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신경이 약한 이유는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유전적인 요인도 있고, 애초에 태어날 때 시신경이 약한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고도 근시가 있는 경우, 눈이 앞뒤로 길어지면서 시신경을 지지하는 공막이나 사상판 같은 구조물들이 당기고 뒤틀려 시신경이 손상될 수 있습니다. 풍선을 크게 불수록 표면이 더 얇아지는 것처럼 눈이 긴 고도 근시안은 시신경이 얇아져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근시가 없는 눈보다 더 약합니다. 따라서 고도 근시가 있는 경우, 20대의 젊은 사람이라도 녹내장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실제로 20-30대 녹내장 환자의 상당 수는 시력교정수술을 받으러 안과에 갔다가 녹내장을 발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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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시가 없는 눈과 고도근시인 눈의 망막 사진입니다. 근시가 있는 눈은 앞뒤로 길어지면서 시신경을 비롯해서 망막이 전반적으로 당겨지고, 뒤틀어지게 됩니다. 사진을 보면 근시가 없는 눈과 고도근시안의 모양이 많이 다릅니다. 따라서 고도근시가 있는 눈은 녹내장, 망막열공, 망막박리, 황반변성 같은 질환의 발생 위험이 증가하게 됩니다)


정상안압 녹내장의 치료

정상안압 녹내장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 중 하나는 ‘안압이 정상이기 때문에 다른 요인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인데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사실은 이와 반대입니다. 오히려 안압이 정상범위임에도 불구하고 녹내장이 생길 정도로 시신경이 약한 상태이기 때문에 안압을 더 열심히 조절해야 합니다. 그건 술이 약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술을 더 적게 마셔야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물론 안압 외에 눈으로 가는 혈액순환이나 시신경 보호, 면역, 염증, 항산화 등의 요인도 어느 정도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이는 안압이 조절된다는 전제 하에서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것일 뿐입니다. 술병 난 사람이 술은 줄이지 않고, ‘내가 마시는 술의 양은 통계적으로 평균 범위 이내이니 술 말고 다른 걸 조절하겠다’라고 생각하면 안 되겠죠… 따라서 정상안압 녹내장의 기본 원칙 역시 ‘안압을 녹내장이 더 진행되지 않는 정도로 충분히 낮춰주는 것’입니다. 안압을 낮춰주는 방법은 약, 레이저, 수술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여러 가지 안약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수술은 효과가 제일 크지만 아무래도 눈을 절개한다는 부담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안과 의사들이 매번 진료 볼 때마다 ‘안약을 잘 사용하고 계시는지, 불편한 점은 없는지’ 항상 여쭤보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정상안압 녹내장 환자분들에게 우선 녹내장 안약을 열심히 사용하셔서 안압을 충분히 낮게 유지하고, 부가적으로 혈액순환을 좋게 해주는 유산소 운동을 하시고, 항산화효과가 있는 음식을 챙겨서 드시는 것을 권유 드립니다. 대부분의 앉아서 하거나 서서 하는 운동은 크게 무리가 없지만, 누워서 무거운 것을 들어야 하는 운동이나, 거꾸로 매달려서 하는(물구나무 서기) 요가나 허리 펴기 운동은 안압을 올릴 수 있으니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담배는 꼭 중단하시고, 술은 많이 드시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커피는 양이나 농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하루에 한 두 잔 정도는 별 영향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관악기를 연주하는 것도 안압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최소한으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제가 이러한 것들을 권유 드리는 이유는 녹내장의 치료에 직접적인 효과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바른 생활과 건강 자체가 녹내장뿐만 아니라 모든 질병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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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약한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술을 적게 마셔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시신경이 약해서 정상 범위의 안압에서도 녹내장이 생긴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안압을 더 낮춰야 합니다. 안압을 낮추지 않는 녹내장 치료는 술을 줄이지 않고 술병을 치료하겠다는 욕심과 같은 것입니다)


 

눈 영양제와 한방치료가 정상안압 녹내장 치료에 효과 있을까요?

많은 녹내장 환자분들이 궁금해 하시는 내용입니다. ‘효과가 없거나 있더라도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대부분의 녹내장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사실 안과에서 처방해드리는 녹내장 안약들은 안압을 낮춰주는 효과뿐만 아니라 시신경을 보호해주고, 눈으로 가는 혈액순환을 도와주는 효과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안약을 잘 사용하신다면 굳이 다른 영양제를 드실 필요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나는 영양제 먹고 눈이 밝아졌는데요?’라고 반문하시겠지만 그런 분들도 실제로 검사를 해보면 영양제 드시기 전과 비교해서 시력이나 시야, 시신경 상태, 안압에는 변화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도 환자 본인이 좋아지셨다고 느끼신다면 영양제 복용을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습니다. 대부분 자녀 분들이 좋은 영양제를 알아 보고 사다 주시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정이 더 화목해질 것이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녹내장 치료에 중요한 요소이고(일체유심조), 영양제 덕분에 몸 상태가 좋아진다면 (비록 그 효과가 미미하더라도) 눈 상태도 함께 좋아질 수 있다고 가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한방치료는 개인적으로 권유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한약이 어떤 성분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영양제는 성분이 확실하게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환자분들이 약 병을 들고 오셔서 보여 주시면 성분을 확인하고 드셔도 괜찮은지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약은 겉보기엔 그저 검은 액체일 뿐이라 제가 뭐라 말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분식집을 가도 음식 원료 원산지 표시를 하고, 과자에도 성분과 열량이 모두 표시되어 있는데 유독 한약에는 원산지도, 성분도 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과연 그것이 환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일일까요? 그렇다면 침은 어떨까요? 일부 중국 사람들이 중의학(Chinese Medicine)이 효과 있다고 발표한 연구들이 있지만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결과를 보여 주고, 연구 설계 과정에도 문제가 있어서 신뢰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가장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연구 결과가 미국 UCLA 안과에서 나왔는데 그 결과, 침은 안압 조절, 시력, 시야에 도움 되지 않는 것으로 나왔습니다(오히려 침술 치료 직후에 안압이 올라가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의사들이 이런 문제들 지적하면 한의사분들은 밥그릇 싸움이나 명예훼손으로 분위기를 몰아가곤 합니다. 환자를 정말 생각한다면 스스로 치료 효과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들이 정말 효과 있는지 객관적인 검증을 적극적으로 받고, 한약의 성분과 원산지에 대해서 자세하고 투명하게 환자에게 공개하는 것 한의사 선생님들께서 가장 먼저 해주실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상안압 녹내장의 경과

정상안압 녹내장은 대부분 ‘순한 녹내장’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 이유는 정상안압 녹내장으로 실명까지 가능 환자의 비율이 다른 녹내장 보다 훨씬 낮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 환자분들 중에 녹내장 때문에 시신경과 시야에 심각한 손상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대부분 1) 녹내장의 종류 자체가 독하거나, 2) 초기에 진단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많이 진행된 상태에서 녹내장을 발견하게 되거나, 3) 여러 이유로 안과 의사가 권유한 녹내장 치료와 검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경우입니다. 반대로, 1) 순한 녹내장(정상안압 녹내장)이면서, 2) 초기에 잘 진단 받고, 3) 안과 의사의 권유대로 검사와 치료를 잘 받는 분들 중에서 실명까지 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본인의 녹내장 종류가 순한 녹내장(정상안압 녹내장)이라면 편한 마음으로 두려워하지 마시고, 욕심 내지 말고, 안과 의사와 함께 가장 현명한 길을 잘 찾으셔서 꾸준히 관리 하시기를 권유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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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내장의 치료에는 마음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환자분들에게 자전거 타기나 빨리 걷기, 달리기, 등산 같은 운동을 권유 드립니다. 직접적으로 녹내장에 큰 도움이 되어서라기 보다는 운동 자체가 긍정적인 생각, 밝은 기분, 적극적인 자세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마음이 긍정적인 분들이 치료 결과도 좋습니다. 대신, 시야 결손의 정도에 따라 사고 나지 않게 조심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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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내장과 베토벤을 사랑하는 안과의사
2015/08/25 17:27 2015/08/25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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