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이야기 (6): ‘피델리오 Part I’
피델리오(Fidelio)는 베토벤이 작곡한 유일한 오페라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피델리오에 대해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베토벤의 피델리오에 대해서...
•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
• 1804년에서 1814년에 이르기까지 거의 10여년에 걸친 기간동안 3차례의 수정을 통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베토벤의 역작! (제1판 1805년, 제2판 1806년, 제3판 1814년)
• Overture (서곡)
이 오페라를 위해 총 4곡의 서곡을 작곡함 (Leonore I,II,III & Fidelio). 레오노레 2번 서곡이 제1판에 연주 되었고, 3번이 제2판에, 피델리오 서곡이 제3판 공연에 사용됨. 대부분의 연주에서 마지막에 작곡한 피델리오 서곡이 연주됨. 이후 말러가 16곡 앞에 레오노레 3번을 추가한 연주를 시도한 이래 여러 지휘자들에 의해 레오노레 3번 서곡이 16번곡 앞에 연주 되기도 하고, 제2막 앞에 연주되기도 하고, 제일 마지막에 연주 되기도 함.
• Libretto (대본)
부이어(J. N. Bouilly)가 쓴 프랑스어 원본을 바탕으로 Josephe Sonnleithner가 3막짜리 대본으로 만들었다. 이후 대본에 부족함을 느껴 2판에서는 베토벤의 친구인 Stephan von Breuning이 2막으로 개정했고, 3판에서는 Fridrich Treischke가 베토벤과 함께 개정작업함.
(Left: Josephe Sonnleithner, Right: Stephan von Breuning)
• Music Premiered (초연)
- The first version (Op.72, with Leonore II Overture): November 20, 1805, Vienna
- The second version (Op.72, with Leonore III Overture): March 29, 1806, Vienna
- The third (present) version (Op.72, with Fidelio Overture): May 23, 1814, Vienna
• 등장 인물들 (Dramatis Personae)
1. Don Fernando (페르난도) : 플로레스탄과 한때 동지였던 사람으로 지금은 장관(minister of state)으로 있음.
2. Don Pizarro (피차로) : 형무소장(commandant of a royal prison)으로 과거 플로레스탄이 자신의 비리를 폭로한데 불만을 품고 플로레스탄을 지하 감옥에 가두어 놓고 사망한 것으로 꾸밈. 이 오페라에서 등장하는 '악역'의 대표주자! 대부분의 영화, 연극, 오페라가 그러하듯이 선과 악의 대립은 극적 긴장감을 위해 자주 사용되고 있는데 베토벤에겐 이러한 선과 악의 대립이 조금 더 특별하지 않았을까. 베토벤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에 대한 태도가 확연하게 달랐고,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예측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토벤이 이렇게 '좋아하는 것 - 싫어하는 것', '우울한 기분 - 지나치게 활달한 기분', '선 - 악', '이상적인 여인 - 부도덕한 여인'과 같은 이분법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었던 것에 대해서 서울대 정신과 조수철 교수님은 베토벤의 성장과정에서 비롯된 분리(splitting)라는 방어기제를 그 이유들 중 하나로 지적했다. 때문에 베토벤의 음악에서는 '선과 악', '영웅과 악한', '험난한 운명과 극복', '절망과 희망'이 자주 등장하게 되는데 피델리오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베토벤의 음악이 많은 사람들에게 오랜시간 사랑받는 가장 큰 이유는 이러한 대립들이 결국 승화(sublimation)되기 때문일 것이다. 피델리오에서도 선한 레오노레가 결국은 악한 피차로를 이겨내게 된다. 오페라라는 장르 자체가 그야말로 'dramatic'한 전개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선과 악의 대립, 그리고 그 극복이라는 관점에서 피델리오야말로 가장 '베토벤 다운' 작품이 아닐까... 물론 이렇게 멋진 극복(또는 승화)을 위해서 악한의 등장이 꼭 필요한 법이고, 그 역할로 베토벤이 선택한 인물이 바로 과거 자신의 비리를 밝힌 플로레스탄을 가두어 놓고 살해하려는 피차로!
3. Florestan (플로레스탄) : 페르난도의 정치적 동지인 스페인의 귀족으로 형무소장 피차로의 모함으로 감옥에 갇혀 있음. 레오노레의 남편. 조수철 교수님은 베토벤이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심한 좌절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평생 '이상적인 구원상의 어머니(ideal rescuing mother)'를 추구했다고 하는데 그렇게 생각을 해서 그런지 피델리오에 등장하는 플로레스탄은 베토벤 자신의 모습을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오노레를 '남편을 구해내는 용감한 아내' 라는 설정 대신, '아들을 구해내는 강인한 어머니'로 바꿔 생각해보면 그런 느낌이 더 확연해진다. 후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플로레스탄은 '평소 엄마 말 잘 듣고 착한 어린이이나 나쁜 친구의 모함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들'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레오노레는 그런 아들을 구해내는 어머니이고... 우울증에 빠진 어머니로부터 어린시절부터 관심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란 베토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어머니가 레오노레라면 그런 어머니로부터 지극적인 사랑을 받는 플로레스탄은 베토벤의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대리만족시켜주는 존재라고도 볼 수 있을 듯...
4. Leonore (레오노레 = 피델리오) : 플로레스탄의 아내로 남편을 구하기 위해 남편이 갇혀 있는 감옥에 남자로 변장하여 피델리오라는 가명으로 취직하게 됨. 뛰어난 일처리 솜씨로 간수장 로코의 총애를 받는다. 로코의 딸인 마르첼리네가 레오노레를 남자로 생각, 사랑하게 되고, 간수장인 마르첼리네의 아버지 로코도 레오노레를 사위감으로 생각하여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됨. 지하감옥에 갇혀 있던 수감자들이 산책할 수 있게 해달라고 로코에게 제의하기도 함. 피차로가 남편인 플로레스탄을 살해하려는 결정적 순간에 남편을 구해냄. 레오노레가 베토벤의 '이상적인 여인상'을 상징하는 존재라는 것은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 하다. 레오노레라는 이름도 베토벤이 젊은 시절 사랑했던 엘레오노레라는 여인의 이름을 딴게 아닌가라고 후세의 사람들은 생각하기도 한다. 베토벤은 성장과정에서 자기(self) 형성 과정에 결함이 있었기 때문에 자기애(narcissism)의 조화와 균형을 위해 음악이나 이상화된 대상에 의존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런 이상화된 대상에 대한 의존 때문에 베토벤의 사랑은 대부분 이루어지지 못하였다(물론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말에 대한 기준 자체가 모호하기는 하지만...). 베토벤은 누군가를 사랑할 때도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화된 여인으로서의 역할을 상대에게 요구하게 되었고 그런 베토벤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여인은 현실에서는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에 언제나 베토벤의 사랑이 힘들었던게 아닐까(현실과 이상의 괴리!)... 그러나 적어도 오페라 속에서는 베토벤이 바라던 이상적인 여인상(divine feminity)을 마음껏 그려낼 수 있었고, 때문에 베토벤이 10여년이라는 오랜 시간 많은 노력을 기울여 피델리오를 꾸준히 다듬었던게 아닐까... 조각가들이나 화가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여인의 모습을 조각하거나 그리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여 일생을 바치듯이...
베토벤이 테레제 폰 브룬스비크에게(1806)
"나는 지금 오페라를 쓰고 있는 중이오. 주인공의 모습이 머리에 떠올라 어디를 가나 어디에 있으나 그것이 생생하게 보입니다. 마음이 지금처럼 고조된 적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빛이요, 청정이요, 밝음입니다. 지금까지의 나는 자갈만 주워 모으느라 길가에 피어 있는 아름다운 꽃을 보지 못하는 동화 속의 아이와 같았소."
5. Rocco (로코): 형무소 간수장(chief jailer)으로 돈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결국 레오노레와 플로레스탄을 도와 주게 됨. 돈 앞에서 탐욕에 사로잡히고, 형무소장의 권력 앞에 굴복하기도 하고, 불쌍한 죄수들을 보며 가여워 하기도 하고, 자기 딸을 아끼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소시민적인 캐릭터의 소유자. 박홍규씨는 베토벤의 그의 아버지에 대한 태도를 설명하면서 "베토벤은 평생토록 아버지에 대한 모순된 애정을 간직했다. 못난 아버지에 대한 갈등의 애정이었다. 어찌보면 그런 갈등이 가득한 사랑이었기에 그는 자신의 애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없었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이 오페라에 등장하는 로코는 베토벤 아버지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하고, 미움과 사랑이 공존하는 애매한 중간자 역할...
6. Marzelline (마르첼리네): 로코의 딸. 남자로 변장한 레오노레, 즉 피델리오를 남자인줄 알고 사랑하게 된다. 현실적으로 이런 일이 가능할지 의심스러우나 여성들의 남장은 영화나 연극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 피델리오를 사랑하는 마음에 행복해 하기도 하고, 나중에 피델리오가 남편을 구하러 온 레오노레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놀라움에 마음 아파하기도 함. 평범한 아가씨의 캐릭터.
7. Jaquino (야퀴노): 로코의 조수(turnkey)로 로코의 딸인 마르첼리네를 흠모하고 있다. 오페라의 시작부터 줄기차게 마르첼리네에게 구혼하지만 마르첼리네의 마음은 일편단심 피델리오를 향하고 있다. 자신이 사모하는 여인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려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안타까워하는 역할.
8. Political prisoners, captain and officers, guards, townspeople : 그외 등장하는 감옥의 수감자들(합창단원)과 2막에서 등장하는 두 사람의 솔로 수감자(First and Second Prisoner) 및 군중들(합창단).
• 배경 : Middle of 18th century, Spanish royal prison, a few miles from Seville
• 곡의 구성 (1814 Version)
- Fidelio 서곡
- 제1막(형무소 안뜰): 1곡에서 10곡까지
- 제2막(지하 감옥): 11곡에서 16곡까지
다음 시간에는 피델리오의 줄거리와 명반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 References
음악지우사. 베토벤. 음악세계. 1999
조수철. 베토벤의 삶과 음악 세계.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2
박홍규. 베토벤 평전. 가산출판사. 2003
Fidelio in Full Score. Dover. 1984
대본은 번스타인 음반 내 가사집의 독일어-영어 번역본을 바탕으로 한글 번역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