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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녹내장 이야기

녹내장 간단명료하게 생각하기: ‘GIFT’ (1) – 녹내장의 종류

녹내장은 환자 입장에서 금방 이해하기 어려운 병입니다. 비단 환자뿐 아니라 녹내장을 대하는 안과의사도 짧은 시간에 많은 환자를 정신 없이 진료하다 보면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멍해지고, ‘내가 환자를 제대로 보고 있는 건지’ 되돌아보게 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그래서 체력도 지능도 뛰어나지 못한 제가 녹내장 환자 볼 때 멍해지지 않고, 실수하지 않기 위해 항상 화두로 생각하는 ‘GIFT’에 대해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환자 입장에서도 ‘GIFT’의 개념을 이해하시면 본인의 녹내장 상태를 이해하시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사실, ‘GIFT’는 녹내장에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네 가지 요인의 영어 앞 글자를 따서 만들어낸 말인데 하나씩 풀어서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G = Glaucoma type (녹내장의 종류)
I = Intraocular pressure (안압)
F = Field (시야 검사 결과)
T = Trend (녹내장의 진행 양상)

1. G = Glaucoma type (녹내장의 종류) – 순한 녹내장인지 독한 녹내장인지

녹내장을 분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환자 입장에서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예후에 따른 분류입니다. 그래서 저는 녹내장을 단박에 느낌 오게 ‘순한 녹내장’과 ‘독한 녹내장’으로 설명합니다. ‘순한 녹내장’은 시력소실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은 대부분의 정상안압 녹내장이고, ‘독한 녹내장’은 상대적으로 더 위험한 폐쇄각 녹내장, 신생혈관 녹내장, 포도막염 녹내장, 거짓비늘 녹내장 같은 것들입니다. 비록 ‘순한 녹내장’이라 하더라도 치료를 제대로 받지 않으면 심각한 시력이나 시야이상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본인이 ‘순한 녹내장’이라고 너무 안심해서는 안됩니다. 반대로 ‘독한 녹내장’이라고 너무 상심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선은 최선을 다해봐야 합니다. 약으로 안압 조절이 안 되면, 녹내장 수술을 해야 하고, 한 번의 수술로 안 되면 4~5번 수술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게까지 해도 결국 시력을 잃는 경우가 있지만 적어도 병이 무서워 피하는 것보단 적극적으로 최대한 열심히 대응하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표적인 ‘순한 녹내장’인 정상안압녹내장에 대해서는 지난 시간에 말씀 드린 ‘녹내장 전문의가 환자에게 보내는 편지(8): 정상안압녹내장 이해하기’에서 충분히 말씀 드렸기 때문에 이번에는 독한 녹내장 위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가장 독한 녹내장, 신생혈관 녹내장
신생혈관 녹내장은 말 그대로 새로운 혈관이 생기면서 안압이 올라가게 되는 병입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안압이 40에서 70 mmHg 정도로 높게 올라갑니다. 정상이 10에서 20 mmHg인 점을 감안할 때 엄청 높은 안압입니다. 눈에 신생혈관이 생기게 되는 이유는 여러 이유로 눈의 혈액공급이 원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원인 질환이 당뇨망막병증입니다. 당뇨가 있는 경우, 망막의 혈액공급에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눈 입장에서는 기능을 유지하려면 충분한 혈액공급을 받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스스로 새로운 혈관을 만들어내서 살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혈관은 제대로 기능을 못하고 잘 터지거나 주변 조직을 막아버리게 됩니다. 홍채와 전방에 만들어진 신생혈관은 전방에 출혈을 유발하고, 눈 속에서 흐르는 방수가 빠져나가는 길인 섬유주를 막아버리게 됩니다. 이렇게 섬유주가 꽉 막혀버리게 되면 약으로는 안압 조절이 어렵고, 수술을 해서 방수가 나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신생혈관녹내장의 경우, 이미 망막 상태도 심각한 경우가 많아 시력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고 수술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안압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시력을 최대한 보존해야 하고, 안압 상승으로 인한 통증을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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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혈관녹내장이 생긴 눈의 모습. 홍채 표면에 빨갛게 신생혈관들이 자라나 있습니다. 보기만 해도 울퉁불퉁 무섭게 생겼습니다. 나쁜 혈관이 자라나면서 출혈과 염증을 유발하고, 눈 속의 물이 지나가는 길을 막아서 안압이 올라가게 됩니다)

밀당의 대가, 포도막염 녹내장
눈 속에 염증이 생기게 되면 염증 물질들이 방수가 빠져나가는 섬유주를 막아버리게 됩니다. 그 결과, 방수가 유출되지 못해서 안압이 증가하게 됩니다. 염증이 심하지 않고, 오래되지 않았다면 염증과 안압을 조절하는 약물로 치료가 되지만 염증이 심하고, 오래되면 방수 유출로가 다 막혀버려서 어쩔 수 없이 수술을 해야 합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염증이 있을 때는 안압이 올랐다가, 염증이 가라앉으면 안압도 내려가고, 다음에 염증이 또 재발하면 안압이 또 오르는 일이 반복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눈 상태를 두고 계속 밀고 당기기(밀당)를 하게 됩니다. 만약 이 과정 중에 시신경 상태가 점점 나빠지고 있다면 안압 조절을 위해 수술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어차피 약물 치료로는 시간만 끌 뿐이기 때문입니다.

기습공격의 대명사, 급성 폐쇄각 녹내장
신생혈관 녹내장이나 포도막염 녹내장도 갑자기 안압이 올라갈 수 있지만 가장 갑작스럽게, 심각하게 찾아오는 것은 역시 급성 폐쇄각 녹내장입니다. 급성 폐쇄각 녹내장은 말 그대로 갑자기 방수가 지나가는 길이 막히면서 안압이 급격히 올라가는 상태로 대부분의 경우, 갑자기 눈과 머리가 심하게 아프게 됩니다. 때문에 한 밤중에 응급실을 찾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머리가 심하게 아프기 때문에 머리 이상을 먼저 의심해서 머리 CT, MRI 찍고 한참 고생하다가 안과를 방문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갑자기 방수가 지나는 길이 막히게 되는 이유는 원래 눈 속의 공간(특히 전방)이 좁거나 나이가 들면서 좁아지기 때문입니다. 일단 급성 폐쇄각이 생기게 되면 약물치료를 하게 되지만 약만으로는 치료가 안 되는 경우가 많고, 레이저로 홍채에 구멍을 만들어서 방수가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치료입니다. 구멍이 잘 뚫리면 안압이 확 내려가면서 통증도 금방 좋아집니다. 하지만 레이저로 충분히 해결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역시 수술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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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성폐쇄각이 생긴 눈의 모습. 갑자기 안압이 올라가서 흰동자가 빨갛게 충혈되어 있고, 각막도 부어 있습니다. 가장 흔한 유형인 동공차단에 의한 급성 폐쇄각의 경우, 그림처럼 동공이 약간 커져 있는 상태에서 안압이 제일 잘 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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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각이 생긴 눈의 치료 전(위 그림)과 레이저 홍채절개술 후(아래 그림) 안구 단면 모습. 치료전에는 전방각이 좁아져서(위 그림의 노란 화살표) 안압이 많이 올라 있는 상태였지만 레이저로 홍채에 구멍을 내서 방수가 지나가는 길(파란 화살표)을 만들어 준 뒤에는 전방각이 많이 넓어지고(아래 그림의 노란 화살표) 안압도 정상으로 내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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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내장이 진행되면서 이차적으로 폐쇄각 녹내장이 생길 수 있습니다. 백내장이 진행되면 수정체가 부풀어서 전방각이 좁아지게 됩니다(위 그림의 노란 화살표). 이 경우, 백내장 수술을 해서 원래 있던 수정체를 제거하고 더 얇은 인공수정체로 바꿔주면 전방각이 넓어져서(아래 그림 노란 화살표) 안압 조절에 도움이 됩니다)

다음 시간엔 GIFT 중에 두 번째 요소인 ‘I = Intraocular pressure (안압)’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Writer profile
녹내장과 베토벤을 사랑하는 안과의사
2015/12/21 16:06 2015/12/21 16:06

녹내장 간단명료하게 생각하기: ‘GIFT’ (2) – 안압의 중요성 지난 시간에 이어서 이번에는 ‘녹내장 간단명료하게 생각하기: GIFT’의 두 번째 요소인 ‘I = Intraocular pressure (안압)’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2. I = Intraocular pressure (안압) – 안압 조절이 잘 되고 있는가? 결국 녹내장 치료의 핵심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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