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를 타도 안압이 괜찮을까요?"
어느 날 한 교수님의 외래를 참관하던 중 녹내장으로 치료 받고 계신 한 환자분이 해외여행을 앞두고 있으시다며 비행기를 타도 안압에 문제가 없냐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교수님께서는 환자분께 걱정말고 다녀오시라고 친절하게 답을 해주셨지만, 문득 저에게 이런 질문이 온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환자분들이 질문하시면 자세히 설명해드리기 위해서라도 관련 연구자료들을 찾아보고 공부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 포스팅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
먼저, 생명/의과학 연구자료들을 검색할 수 있는 'pubmed' 라는 사이트를 이용해 안압(intraocular pressure, IOP), 비행기(airplane,aircraft), 고도(altitude) ... 등을 검색어에 포함시켜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최근 10년이내의 연구결과들을 추려내어 검색을 한 결과, 주제가 주제인지라 그리 많은 자료들이 검색되지는 않았습니다만,
이중에서 우리의 궁금증과 연관된 연구들을 추려내어 살펴봐야겠습니다.
하나씩 살펴볼까요?
먼저 이 연구는 특별한 질환이 없는 건강한 사람 25명을 대상으로 육지에서, 비행기를 타고 높이 올라갔을때, 그리고 다시 착륙한 뒤의 안압을 각각 측정해서 비교해 본 연구 입니다.
(안압 측정 시점: 출발지점- 해수면 기준1760피트(약 536미터) -->고도 19000피트(약 5800미터) --> 비행중 2시간이 경과했을 때--> 착륙후 (이륙 3시간 30분 뒤))
비행기 내에는 압력조절 장치라는 것이 있어서 높은 고도에 올라가도 승객들이 안전할 수 있게 기압을 유지시켜주는데, 이 비행기는 고도 8000피트 (약 2440미터)에서의 대기압(약 0.8기압) 정도의 압력을 일정하게 유지시켜주는 항공기였다고 합니다.
연구결과, 육지에서의 평균 안압은 14.2(표준편차 2.7)mmHg 였는데, 최고고도인 19000피트에서는 14.0(표준편차 2.2)mmHg로 측정되었습니다.
이정도의 차이는 통계적으로 의미있는 차이는 아니었지만(p=0.78), 비행 2시간째 안압을 측정해보니 12.3(표준편차 2.5)mmHg로 육지에서 측정한 안압에 비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안압이 감소되었고, 착륙한 뒤 측정했을 때 역시 안압 12.0(표준편차 1.7)mmHg로 유의한 안압의 감소가 나타났습니다.
연구자들은 일반적인 비행을 한 결과 안압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하강하였고, 그 효과가 착륙한 뒤에도 유지가 되었다고 결론을 지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연구는 어떨까요?
이 연구는 비행기를 타고 높은 고도에 올라가게 되면 기압이 낮아지고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 놓이게 된다는 점을 이용해 앞의 연구와는 달리 실제로 비행기를 타고 안압을 측정한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저기압, 저산소의 조건을 만들어 고도 9144m의 환경과 유사하게 한 뒤 안압을 측정하여 해발 792미터의 지상에서의 안압과 비교한 연구입니다.
건강한 30명의 양쪽 눈을 검사한 결과, 저기압,저산소 상태의 안압 (18.23 +/- 2.84mmHg)이 그렇지 않은 상태의 안압(16,52+/- 2.84)에 비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높게 측정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평지에 있을 때 보다 실험적으로 높은 고도의 상태를 만들어 안압을 측정했더니 안압이 더 높아 졌다는 얘기이지요.
저산소 상태가 되면, 우리눈에서 검은동자라고 부르는 각막의 내피세포에 산소공급이 덜 되게 되어 각막이 붓게되는데, 이러한 각막부종이 생기면(각막이 두꺼워지면) 안압이 원래보다 높게 측정되는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연구자들은 이런 오류를 보정하고 나서도 저기압,저산소 상태에서 안압이 높게 측정되었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연구는 앞선 연구결과와 정반대의 결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번엔 이 연구를 한번 보겠습니다.이 연구에서는 34명의 남자 파일럿을 상대로 해발 792미터에 해당하는 평지에서 안압을 측정하고, 저기압환경을 조성한 훈련장치에 들어가서 9144미터 상공에 해당하는 환경을 만든 뒤 안압을 측정한 연구입니다.
바로 전의 연구와 비슷한 연구이지요? 하지만 이 연구는 특이하게 저기압상태에서 100% 산소를 주입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비교하여 분석하였습니다.
주입한 산소의 의미가 무엇이냐하면, 해발 9144미터의 상황에서 산소를 주지 않으면 앞선 연구에서 처럼 '저기압, 저산소' 상태가 되는데, 100%산소를 공급해주면 '저산소'상태는 개선이 되어 '저기압상태'만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연구는 이렇게 서로 다른 환경으로 구분해서 결과를 비교했습니다.
연구결과, 평지에서의 안압은 12.31+/- 2.98mmHg 였는데, 9144m의 환경에서 산소를 주입했을 때는 안압이 16.74+/-4.14mmHg로 상승했고, 산소공급을 하지 않았을 때는 14.37+/-3.44mmHg 로 살짝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저기압장치를 벗어난 뒤에 측정한 안압은 12.81 +/-1.74mmHg로 처음 평지에서의 안압과 차이가 없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연구자들은 건강한 사람이라면 높은 고도에 노출되더라도 일시적으로 안압이 상승할 뿐 저산소상태 일지라도 특별히 문제가되지는 않는다고 말합니다.
사실, 높은 고도에 올라가면, 안압이 떨어진다는 연구와 안압이 올라간다는 연구의 차이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보입니다. 대부분의 연구들에서도 정확한 기전을 설명한다기 보다는 이런 결과는 이러저러 했기 때문일 것이다..라며 가설로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높은 고도에서 안압이 떨어졌다는 연구는 실제로 비행기를 타고 안압을 측정한 반면에, 안압이 상승했다고 하는 연구는 인위적으로 저기압 저산소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일 수 있겠지만, 정확히 이러한 변수만이 연구결과에 차이를 가져왔는지 아니면 다른 요소가 있는지 확정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나만 더 살펴볼까요? 힘내세요~^^
이 연구는 비행기를 타거나 인공적으로 저기압 저산소 상태를 만들어 안압을 측정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고지대로 등산을 해서 안압을 측정한 연구입니다. 저지대에 살고 있는 76명의 건강한 사람들을 상대로 해발 5200미터에 머물게 하면서 안압을 측정하여 비교한 연구입니다. 앞의 연구들과는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르지요?
연구결과는 이 상황에서도 통계적으로는 유의한 안압의 상승은 있었지만, 임상적으로 문제가 되는 안압의 상승은 없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저산소 상태로 인해 각막부종이 생겨 안압이 높게 측정되었을 것이라고 이 결과를 설명하고 있으며, 일시적으로 안압이 상승할 뿐 고지대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안압이 정상화 되거나 안압이 더 낮아진다고 설명했습니다.
해발 5200미터에서 첫째날은 기준점인 sea level에서 측정한 안압보다 안압이 높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안압이 떨어졌음을 알려주는 그림입니다.
거의 비슷한 또 다른 연구에서 역시 (하나만 더 보자고 하고 제가 거짓말을 했군요^^;;)
위의 그림처럼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안압이 상승했다가 고도가 더 높아졌을 때는 오히려 안압이 하강하고 다시 낮은 고도(BC2)로 내려왔을때에는 처음에 같은 고도였을 때(BC1)보다도 안압이 더 하강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보았을 때 높은 고도 자체가 안압을 결정짓는 유일한 변수는 아니라는 것을 추측해 볼 수가 있습니다.
저자들은 고지대의 저기압 저산소상태, 특히 저산소 상태에 장시간 놓이게 되면 안구방수를 생성하는 섬모체에 산소가 적게 공급되면서 안구방수의 생성이 줄어들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안압이 하강할 것이라고 이 결과를 설명했습니다. 이 역시 그들의 가설이지요.
처음에 비행기에서 시작해서 정말 내용이 산으로 가버렸네요 ^^;;
아무튼, 이제까지 비슷한 것 같지만 조금은 다른 연구들에서 역시나 서로 다른 연구결과들이 나오고 있음을 저와 같이 확인해 보셨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연구 결과들이 섞여서 나올 때 학자들은 이런 상황을 바로 '논란(controversy)'이 있다... 라는 표현을 사용해 설명합니다.
그래서 "도대체 안압이 오른다는 거야 아님 내려간다는거야?" 라고 한마디로 콕 집어 정리해달라고 하는 분이 계시다면 죄송하게도 제가 드릴 수 있는 대답은 "아직 '논란'이 좀 있습니다..." 가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들에서는 안압의 상승 또는 하강이 임상적으로 문제가 될 정도로 변화하지는 않기 때문에 비행기를 타거나 고지대로 여행을 하는 것이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비행기 내부에는 기압과 산소량을 조절해주는 장치가 있기 때문에 아무리 높은 고도로 비행기가 날고 있다고 하더라도 걱정하실 만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적다는 것이 이 연구결과들을 읽고 난 뒤 제가 내린 결론입니다.
저 역시 환자분이 같은 질문을 던지신다면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잘 다녀오십시오."라고 말씀드릴 것 같네요. ^^
다만, 주의하셔야 하는 상황이 몇 가지 있습니다.
만약에 망막수술을 받고 눈 안에 가스를 채워 넣으신 분이라면 비행기를 탈 경우 눈 속의 공기가 팽창하면서 눈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하는 연구들이 있습니다. 해당사항이 있으신 분이라면 여행 전에 반드시 주치의와 상의를 하시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또한, 급성폐쇄각녹내장으로 한쪽 눈을 치료받으신 적이 있거나, 레이저치료를 권유받으신 적이 있는 분은 장기간 비행기를 탔을 때 하필 급성 녹내장 발작이 생기게 되면 안압 낮추는 치료를 받을 수가 없어 시력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장거리 비행기 여행 전에 역시 주치의랑 상의하셔서 적절한 예방적 치료를 받으시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는 연구 결과도 있었으니 꼭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길고 지루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포스팅이 저희 김안과 블로그를 찾아와주시는 많은 분들께 도움이 조금이나마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