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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내장 이야기(6): ‘욕심 버리기(2)’

안녕하십니까. 김안과병원 녹내장센터 황영훈입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환자분들께 드리는 편지입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견해임을 미리 밝힙니다. 따라서 한국녹내장학회나 김안과병원의 공식적인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녹내장과 한의학
일부 한의사들이 스스로를 녹내장 전문가라고 하면서 자신의 치료방법이 녹내장에 효과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치료비는 왜 그렇게 비쌀까요? 정말 그렇게 비싼 돈 주고 치료 받을 가치가 있을까요? 솔직히 저는 한의학으로 녹내장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다는 주장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한의원에서 '녹내장이 있으니 한약을 몇 달간 복용해야 한다'는 이야기 듣고 저에게 찾아온 분들 중에 실제 녹내장이 있었던 경우는 한 사람도 없었고(낮은 진단능력), 한의원에서 비싼 돈 들여서 한약 사먹고 안압이 내려가거나 시력이나 시야가 좋아진 경우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낮은 치료효과).


그렇다면 일부 한의사들은 도대체 어떤 근거로 자신의 치료가 녹내장에 효과 있다고 주장 할까요? 그냥 ‘침이나 한약이 몸에 좋은 것이고, 몸에 좋은 것이면 눈에 좋을 것이고, 눈에 좋은 것이면 녹내장에도 좋을 것이다’라는 막연한 가정일 뿐일지도 모릅니다. 한약을 먹고 체중이 감소했거나 가려움증이 좋아졌다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녹내장의 경우는 효과를 판정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녹내장은 자각증상이 없는 병’이라고 소개 해 놓고 자신의 치료를 받고 ‘환자들의 증상이 좋아졌기 때문에 치료 효과가 있다’고 광고하기도 합니다. 증상이 없는 병의 치료 효과를 증상으로 판단하는 것이 논리적인 생각일까요?

어쩌면 정말 침이나 한약이 녹내장 치료에 어느 정도 보조요법으로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직 그 근거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환자에게 비싼 비용을 받고 치료를 권하는 것이 올바른 행동일까요? 제가 말씀 드리는 ‘근거’라는 것은 그저 ‘몇 백 년 전에 만들어진 책에 뭐라고 나와 있다’가 아니라 체계적이고 윤리적인 임상시험 절차를 거쳐서 얻은 ‘어떤 성분을 어떤 환자에게 어떻게 투여했을 때,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었다’는 객관적인 자료를 뜻하는 것입니다. 의료인으로서 책임감이 있다면 환자에게 권하기 전에, 먼저 치료 효과를 입증하기 위한 검증의 단계를 충분히 거쳐야 합니다.



오히려 한약이 녹내장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60대 여자 환자가 흐리게 보인다고 안과를 방문했습니다. 그 분은 해마다 건강검진을 받던 분으로 작년까지는 안압이 10대 중반 정도였고 눈에 특별한 이상 없었습니다. 진료실에서 안압을 측정해보니 양안 모두 50 mmHg 정도로 작년보다 세 배 정도로 올랐습니다. 이 정도의 안압이면 몇 주 이내에 실명까지 올 수 있는 위험한 상태입니다. 검사에서 특별히 안압이 올라갈만한 눈의 이상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럴 땐 스테로이드에 의한 안압상승을 고려해야 합니다. 환자에게 여쭤봤더니 ‘한 달 전부터 한약을 먹고 있고, 몸무게도 많이 늘었다’고 합니다. 환자가 한의원에 ‘한약 먹고 흐리게 보인다’고 문의 했더니 ‘명현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니 한 달 더 복용하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그 말 대로 한약을 한 달 더 복용했다면 심각한 후유증이 생겼겠지만 다행히 환자는 한약을 중단하고, 안압 낮추는 안약을 사용 했고, 안압은 정상화 되었습니다. 이 경우, 한약에 스테로이드 성분이 함유되었을 가능성을 고려할 수 있지만 한약에 어떤 성분이 얼마나 들었는지 알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안압이 높은 환자들에겐 항상 한약을 복용하고 있는지 물어 봅니다. 물론 양심적인 분들은 그러시지 않겠지만 일부 사람들은 심각한 녹내장을 유발할 수 있는 성분을 한약에 넣습니다.

20대 여자 환자가 양안이 흐리게 보여서 안과를 방문했습니다. 다이어트를 위해서 한의원에서 살 빼는 한약을 받아서 복용한지 며칠 지났다고 합니다. 안과 검사 결과, 양안 모두 안압이 45 mmHg 정도로 정상범위의 두 배 이상이었고, 전방이 좁아져 있고, 근시가 생겨 있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의사들이 비만클리닉에서 식욕억제 목적으로 사용하는 토피라메이트 계열의 약물을 비롯해서 여러 약물들에 의해서 나타날 수 있는 것들입니다. 한약에 어떤 성분을 넣었길래 이런 부작용이 나타났을까요? 의사가 처방한 약물에 의한 경우, 처방전을 보고, 어떤 성분이 원인일지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약은 환자나 다른 의사가 정확한 성분을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어디에 좋은 어떤 약초가 들어갔다'는 정도가 대부분입니다. 다행히 환자는 바로 안과를 방문했고, 한약을 중단한 뒤에 안압은 정상화 되었습니다. 혹시 한약 복용 후 흐리게 보인다면 ‘명현현상’ 보다 한약 부작용을 더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치료 효과 있건 말건 내 돈으로 내가 한약 사먹겠다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 한의원에서 특별히 제조한 한약만 몇 달 먹으면 안과에서 치료 못하는 병도 고칠 수 있다'는 이야기 듣고 절박한 마음에 혹해서 몇 백만원에서 몇 천 만원에 달하는 큰 돈을 덜컥 쓰시고 후회하시는 분들이 제 환자 중에 실제로 계시기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그 한의사들만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그럴듯한 이야기로 환자를 설득해서 비싼 한약을 많이 팔고 싶은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녹내장 치료 시 안과 치료에 추가로 건강보조식품이나 한약을 드실지 말지는 환자 본인이 선택하셔야 합니다. 과학적인 근거에 기반한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치료를 권해야 하는 안과의사 입장에서 건강보조식품이나 한약을 권해드릴 수 없습니다. 그 치료효과나 부작용에 대해서 충분히 검증된 자료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제가 말씀 드린 내용 고려하셔서 현명하게 선택하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감당하셔야 합니다.




녹내장 치료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사실, 녹내장 안약을 매일 꾸준히 점안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더군다나 평생을 그렇게 해야 한다니… 녹내장 안약을 쓴다고 눈이 개운해지거나 시력이 좋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충혈되고 따갑고, 가렵기도 합니다. 저는 지금 환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모든 녹내장 안약을 제 눈에 직접 점안해 봤습니다. 그래서 녹내장 약을 사용하면 어떻게 충혈되고, 얼마나 따가운지 잘 압니다. 그래도 환자분들에게 녹내장 안약 열심히 점안하시기를 권유 드립니다. 장기적으로 환자의 행복을 위해서 그 정도의 불편함은 충분히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생각의 근거는 전세계에서 수 많은 녹내장 환자들을 대상으로 오랜 기간 시행된 여러 연구에서 나온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녹내장을 쉽게 치료할 수 있는 비법 같은 것은 없습니다. '안과에서 못 고치는 병을 낫게 할 수 있다'는 주장은 허위광고이거나 과장광고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부디 환자들이 욕심 때문에 실망 하고, 돈 쓰고, 건강도 악화되는 일을 겪지 않으시길 기원합니다.


거듭 말씀 드리지만 녹내장 치료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특별한 비법도 없습니다. 그저 담당 의사권유대로 꾸준히 안약 점안하고, 검사 받고, 바른 생활습관 유지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전세계의 수 많은 사람들이 더 좋은 녹내장 치료제 개발을 위해 열심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언제든 획기적인 치료가 나온다면 제가 먼저 꼭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는 주위에서 들리는 소문에 흔들리지 마시고, 욕심 내지 마시고, 성실하게 치료 하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Writer profile
녹내장과 베토벤을 사랑하는 안과의사
2014/03/11 15:06 2014/03/11 15:06
윤미애

이런 코멘트 남길 자리인지 몰라 망설였지만...

권위의 대명사처럼 생각되어지는 직업이 의사인데
환자의 입장에서 메번 글도 써 주시고
무엇보다 안약을 직접 넣어보셨다니 감동입니다~
의사선생님에 대해 믿음이 가니 시키는대로 하면 되겠다 싶어 맘이 편해집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강여사달려~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많은 녹내장 환자분들이 녹내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것 같아요,

정상훈

안압이 오르는데는 이유가 있고, 그 압을 내리는 안약이 있습니다.
혈압이 오르른 데는 이유가 있고, 그 혈압을 내리는 약이 있습니다.
대부분은 원발성 고혈압이고(원인을 알지못하는), 상병명에 '상세불명의' 가 참 많습니다.
혈압을 내리는 효과에 대해서, 구기자나 조구등의 약리효과에 대해 연구되어지고 그 효과는 앞으로 어떻게 더 잘 사용할것인지가 관건이겠구요.
제가 지나가다 얘기드리고 싶은건 , 일본의사들이 어떤식의 진료를 하는지도 한번 참고 해보셨으면 해서 입니다. 우리나라는 의사와 한의사로 구분되어 있지만, 일본은 우리나라 의사들이 전부입니다. 그중에 의사들이 한약을 사용하지요. 그분들이 녹내장에 어떤 한약을 사용하는지를 보면, 녹내장에 안약을 평생넣는 방법뿐이다 라는 얘기보단 실명으로 다가가는 환자분들에게 어떤 도움임 되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분명 같은 공부를 했는데 한국에서 의사들은 반감을, 일본에서 의사들은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음은 분명 모르는 영역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않고 무조건 배타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일본의사의 85%가 한약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한의사 라는게 없죠. 일원화되어 있고 전문의 중에 한방전문의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의사면허를 취득하고 추가로 한방전문의가 되는 것이고 한약 처방 역시 의사면허가 있는 의사가 처방하고 있구요. 일본의사 85%가 사용한 한약이 어떤 질환에 사용한건지 통계도 없고 일본 같은 경우는 감기에 한약의 효과에 대한 논문이 있어서 감기에 한약을 처방하긴 하는데. 안압에 한약이 효과가 있는지 아닌지 근거가 있나요?
50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동의보감에서 발전하지 못하는 한의라면, 그래서 왜 한의사는 최신 의료기기를 쓸수 없냐 따지기 전에, 의사면허 따고 한의사 면허도 따고 둘다 따고 의료기기 쓰면 될텐데요. 두개 다 따기 싫다면 일본처럼 의료일원화 시행하고 한의사 전문성을 유지하고 싶다면 한의사 면허를 없애고 한의전문의제를 실행해서 한의전문의만 한약처방이 가능하게 하면 되겠네요.
원래 한의사와 의사를 나눈 자체가 이상한거죠. 한의사가 주장하는대로 한의사도 의사다 라면 걍 의사면허를 따고 자기 하고 싶은 한의 연구를 하면 되는데 그게 안되는 이유는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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