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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의사가 연구를 하기란 쉽지 않다. 날마다 많은 환자들을 진료하고 수술하다 보면 처음 가졌던 마음과 달리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고, 논문을 쓰는 일은 점점 멀어지게 마련이다.  
     이런 환경에서도 ‘연구하는 녹내장 전문의’로 소문 난 황영훈교수로부터 연구에 몰두하는 이유와 그가 생각하는 녹내장이란 질환, 그리고 안과의사의 길을 들어본다. 황교수는 이 공간을 통하여 오랫동안 쉽고 친절하게 녹내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기도 하다.



Q. 녹내장을 전공하는 안과의사가 된 계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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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동네 뒷동산에서 나무, 풀, 벌레랑 노는 것이 제일 좋았습니다. 시냇가에서 물고기, 새우, 가재, 도롱뇽이랑 있으면 너무 행복했습니다. 박쥐랑 뱀을 집에 데리고 와서 부모님을 놀라게 하기도 했습니다. 친구들이 학원 갈 때도 저는 숲 속을 거닐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생물학자나 수의사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영훈아, 사람도 동물인데 의사는 어떻겠노?’ 하시길래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게 더 보람 있고 재미날 것 같아서 의대를 가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동네 뒷동산에서 나무, 풀, 벌레랑
노는 것이 제일 좋았습니다."


의대생 시절엔 뇌와 신경에 빠져서 살았습니다. 의대에 입학하자마자 신경해부학, 신경과학, 신경병리학 책을 사서 독학했습니다. 신경과나 신경외과 의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신경과는 직접 수술을 할 수 없는 점이 아쉬웠고, 응급 환자가 많고, 수술도 힘든 신경외과는 제 성격이나 체력과 맞지 않는 것 같아서 결국 뇌, 신경이랑 관련 있으면서 직접 수술할 수 있는 안과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안과의사가 되어서도 신경이 좋아서 시신경질환인 녹내장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Q. 김안과병원에서 근무하게 된 계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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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되기로 마음 먹은 이후로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을 인생의 화두로 정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해서 좋은 곳에 쓰면 보람 있고, 재미날 테니까요. 마침 연구에 관심이 많은 손용호 전 원장님께서 김안과병원에 와서 연구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하시길래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김안과병원에는 오랜 기간 쌓인 많은 환자들의 임상자료가 있으니 ‘상구보리’ 하기 좋고, 다른 큰 대학병원들보다는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환자들과 상태가 심각한 환자들이 많으니 ‘하화중생’도 하기 좋은 환경입니다. 그래서 김안과병원에서의 제 역할을 스스로 ‘연구’와 ‘중환자 진료’로 정해서 실천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시간 날 때마다 임상 자료를 봅니다.
시신경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서 온갖 상상 하면
아주 즐겁습니다."


Q. 김안과병원의 장점은?

처음 김안과병원을 왔을 때 엄청난 임상자료에 놀랐습니다. 처음 몇 달간 아침 일찍 출근해서 녹내장 환자 몇 천명의 자료를 뒤지면서 논문 썼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거랑 딱 맞아 떨어지는 자료를 찾으면 소풍 가서 보물찾기 하던 때처럼 신나는 기분이 듭니다. 지금도 시간 날 때마다 임상 자료를 봅니다. 시신경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서 온갖 상상 하면 아주 즐겁습니다.
     다양한 연령과 성격의 안과의사만 40명 이상 있는 병원이다 보니 의사 입장에서 좋은 롤모델이 많은 것도 장점입니다. 특히 자타공인 ‘녹내장의 전설’인 안병헌 선생님이 바로 곁에 계셔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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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연구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 선생님에게 연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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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단한 뜻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제가 재미있어서 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 동네 배추 밭이나 탱자 나무에 있는 나비 알 데리고 와서 나비가 될 때까지 관찰하면서 즐거워하던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제가 주로 하는 연구가 시신경 사진을 분석하는 건데 다양한 환자들의 시신경 사진을 쭉 늘어놓고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 생각이 맞는지 여러 특징에 따라 자료를 분류해서 비교해보는 단순한 작업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연구결과는 녹내장을 진단할 때 유용한 참고자료가 되고, 녹내장의 발생기전을 유추하는 데 도움이 되는 단서가 되기도 합니다. 큰 돈과 인력이 드는 거창한 연구 보다는 어릴 때 관찰일기 쓰던 마음으로 누구나 아이디어만 있으면 쉽게 할 수 있는 연구가 좋은 연구라 생각합니다. 새롭고 멋있는 것보다는 ‘이미 있는 검사와 치료를 어떻게 더 잘 활용할 수 있을까’가 제 연구의 지향점입니다. 앞으로도 단순명료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로 즐기면서 연구하는 사람으로 오래 남는 것이 제 꿈입니다. 

 "큰 돈과 인력이 드는 거창한 연구 보다는
어릴 때 관찰일기 쓰던 마음으로 누구나 아이디어만
있으면 쉽게 할 수 있는 연구가 좋은 연구라 생각합니다."



Q. 녹내장 전문의로 자랑스러운 일은?

막 전문의가 되고 임상강사(전임의)를 시작 할 때, 스승님인 고대병원 김용연 교수님께서 임상강사 기간에 하면 좋을 일을 몇 가지 써 주셨는데 그 중에 ‘환자를 위한 녹내장 책 쓰기’가 단박에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때부터 6개월간 열심히 책을 만들어서 그 해 가을에 스승님께 보여드렸더니 ‘진짜로 만들어 올 줄 몰랐다’고 놀라워하셨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녹내장의 모든 것(고려대학교 출판부)’은 우리나라 최초의 환자를 위한 녹내장 전문서적입니다. 덕분에 문화부에서 발표하는 ‘우수도서’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인세(印稅)를 돈 대신 책으로 받아서 환자분들께 나눠 드렸습니다. 요즘에도 많은 환자들이 그 책을 읽어보고, 진료 중에 책 내용에 대해서 질문 하시기도 합니다. 환자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서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도 진료 못지 않게 중요한 의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책이나 글을 통해 꾸준히 그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Q. 현재 녹내장의 치료에 대해서는 환자들이 많이 답답해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은?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녹내장 치료 약이 한 두 가지 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수 십 가지의 좋은 약들이 나와 있습니다. 녹내장 진단 기술도 많이 발전해서 지금은 시신경의 두께를 마이크로미터 단위까지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습니다. 녹내장 수술 성적도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습니다. 아직 손상된 시신경을 살릴 수 있는 확실한 치료는 없지만 줄기세포 치료, 유전자 치료, 인공 눈 같은 최신치료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중에서도 인공 눈에 가장 큰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가장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광학과 전자전기 기술을 직접 접목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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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녹내장 환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녹내장은 시신경이 약해지는 병인데 아직 약해진 시신경을 다시 살릴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 없습니다. 따라서 피하기 보다는 평생 함께해야 하는 병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녹내장과 함께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은 버릴 것은 홀연히 버리고, 지킬 것은 굳건히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녹내장 환자가 버려야 할 것은 두려움, 집착, 그리고 욕심입니다. 녹내장이 있으면 막연하게 금방이라도 실명될 것 같지만 사실 치료를 잘 받으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따라서 우선 자신의 녹내장이 어떤 종류이고, 어느 단계이고, 진행상황이 어떤지 잘 파악해서 막연한 두려움을 떨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의사의 이야기 보다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서 바른 길에서 벗어나거나 불필요한 고민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녹내장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대하는 집착 없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어디선가 잘못된 정보를 듣고는 공인되지 않은 치료에 현혹되어 후회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정말 그런 치료가 좋다면 왜 녹내장 전문의들이 먼저 추천해드리지 않았을까요? 욕심은 불행의 지름길이라는 점을 꼭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환자가 굳건히 지켜야 할 것은 노력과 신뢰입니다.
신뢰할 수 있는 녹내장 전문의를 찾으셔서 함께 녹내장을 이겨내기 위한 방편을 찾으셔야 합니다."

환자가 굳건히 지켜야 할 것은 노력과 신뢰입니다. 의사는 그간의 경험과 자료를 바탕으로 어떤 방법이 가장 환자에게 유리한지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합니다. 결국 어떤 길을 선택할지, 어떻게 갈지는 환자 본인의 선택에 달린 문제입니다. 녹내장 안약을 어떤 일이 있어도 꼭 빠지지 않고 열심히 점안하고, 의사의 권유대로 규칙적으로 검사를 받는 노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녹내장은 서서히 진행하기 때문에 환자 본인이 진행이 되고 있는지 아닌지 현재 상태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담당 의사가 하는 말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녹내장 전문의를 찾으셔서 함께 녹내장을 이겨내기 위한 방편을 찾으셔야 합니다. 아무쪼록 저희 의료진과 함께 현명하게, 끈기 있게 녹내장에 잘 대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15/07/22 14:47 2015/07/22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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