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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반짝반짝 빛나는 (각막센터)

다음날은 라탱지구로 가보기로 했습니다.

어른들끼리 파리 여행을 간다면 방문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듯한 진화역사박물관으로 갑니다. 지하철을 갈아타고 같은 객차에 유모차에 아이를 태웠으며, 어딘지 모르게 프랑스인이 아닌 것 같은 가족이 타고 있었는데, 역시 저희가족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박물관 쪽으로 향했습니다.

진화역사박물관은 자연사박물관과 쌍둥이처럼 나란히 서있고, 파리 식물원 안에 있습니다. 파리 식물원은 꽤 규모가 큰 공원같은 곳입니다. 조깅을 하거나 산책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는데, 생각보다 9월의 파리는 꽤 더워서 걷다보니 반팔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도 땀이 배어나왔습니다.

박물관 내부는 참 프랑스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 ‘진화역사’를 주제로 하는 과학박물관인데 교과서나 백과사전같은 분위기보다는 아름답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거든요, 1층에 들어서면 상어를 비롯한 해양동물들이 푸르스름한 바닷속같은 분위기 속에 전시가 되어있고, 2-3층에는 육지동물들의 모형이 실물 크기 그대로 전시되어있습니다. 유리관 속이 아니라 바로 손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거리에 낮은 펜스만 사이에 두고 있습니다.

동물들은 마치 노아의 방주에 들어가려고 행진을 하듯이 한 방향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생생해서 ‘박물관이 살아있다’같은 영화에서처럼 밤이 되고 관람객들이 사라지면 박물관을 뛰어다닐 듯 한 상상도 하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건 박물관 천장이었습니다. 갑자기 어디선가 우르릉 천둥 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쏴아아 비 쏟아지는 소리가 나길래 위를 올려다보니 어둑어둑한 빛깔이 되었더군요. 그러고보니 천장 색이 일정 시간동안 계속 변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파란 하늘 빛도 되었다가 비오는 어두운 빛도 되었다고 붉게 노을이 지기도 하구요, 언젠가 도쿄에 갔을 때 비너스포트에서 천장을 하늘로 형상화 해놓아 색이 변하는 것을 본 기억이 났습니다. 그런데 동물들이 전시되어있는 박물관 천장이 하늘이라니요. 특히 가운데가 텅 비어있어 천고가 매우 높고 건물 가장자리 부분으로만 계단과 난간이 연결되는 구조의 건물이라 더 효과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박물관 자체가 예술적 효과를 노리고 설계되었음을 알 수 있었지요. 아이들이 신이나서 유익하고도 재밌게 보았던 것을 물론이고 어른들도 충분히 즐겁게 볼 수 있도록 구성이 잘 되어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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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아쉬웠던 건, 작년 비엔나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설명이 프랑스어로만 되어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구글 번역기에 의존을 해보기는 했습니다만, 안내문과 동식물 이름들을 읽을 수 없다는 게 답답하더군요. 아, 이게 까막눈의 심정이군요,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어김없이 배가 고파오고, 구글 맵을 이용해서 근처 소르본느 대학가에서 별점이 좋은 식당을 찾아갔습니다. 우리나라와 달리 대학 건물이 담장 없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동네를 걸어걸어 다소 쌩뚱맞게도 미국남부가정식 식당에 찾아갔는데, 이 곳이 그 때까지 파리에 도착해서 먹었던 음식 중 최고였습니다. 대학가라 그런지 에피타이저-본식-디저트로 이어지는 3코스 요리도 파리 중심가에 비해서 훨씬 저렴했고, 테이블이 10개 남짓인 작은 식당이었지만 오밀조밀 꾸며져 있는 것이 하나하나 주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종업원도 없이 사장님이 직접 주문을 받고 서빙을 했는데, 음식이 얼마나 정성이 느껴지던지요, 특히 다진 고기를 배추 안에 싸서 주물냄비째로 오븐에서 쪄낸 음식이 취향 저격이었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한국 갈비찜 같은 맛이 나서, 따끈따끈한 쌀밥과 함께 김치 척척 얹어서 먹으면 밥도둑이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습니다.ㅎㅎ 가만히 보니 다른 테이블에서도 모두들 빠짐없이 그 배추고기 요리를 먹고 있는 걸 보니 그게 바로 그 집의 시그니쳐 메뉴였던 모양입니다,

한 시간 넘는 시간동안 배부르게,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기운이 난 우리는 마치 우리나라 홍대 앞 같이 좁은 골목에 복닥복닥 작은 상점들과 비스트로가 모여있는 골목을 통과해 걸었습니다. 북적북적하고 활기찬 분위기에 가성비 뛰어난 스트리트 푸드가 많아서 여기서 며칠 더 놀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도착한 팡테온. 압도적인 건물의 위용과 기둥과 천정의 디테일은 왜 여기로 끝도 없이 사람들이 몰려드는 지를 알게 합니다. 건물에 들어서면 보이는 푸코의 진자도 참 신기합니다. ‘만신전’, ‘묘지’, ‘푸코의 추’, ‘수호성녀 쥬느비에브’ -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듯한 것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묘해서 서늘한 건물 안에서 우두커니 한참을 앉아있었습니다. 마침 둘째 아이가 유모차에서 딥슬립을 하는 중이기도 해서 조용히 높은 천정과 저 멀리 그림들을 바라볼 여유가 있었습니다. 아내가 유시민 작가의 ‘유럽도시기행’을 여행 오기 전에 읽었다고는 했는데, 그래도 우리의 배경지식이 얄팍함이 안타까웠습니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이 공간의 의미와 역사를 조금 더 알고 있었다면 더 재미있었을텐데요.

팡테온에서 나와 역시 구글맵에 의지해서 파리 동남쪽에서 서남쪽으로 횡단하는 버스를 탔습니다. 서울로 치면 송파구에서 영등포까지 오는 버스였던 셈인데, 한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바라본 파리 시민들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참 친근했습니다. 인종이 나르고 사는 곳이 달라도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비슷하다는 느낌도 들구요, 저상버스에서 유모차를 내리고 동네 마트에 들러서 저녁거리를 사서 돌아가다보니 여행 온 게 아니라 여기 사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도 들었습니다.    

 

2020/02/28 11:08 2020/02/2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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