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의사의 눈으로 본 영화이야기 1 (눈먼 자들의 도시)
오늘은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스포를 포함하고 있으니 보실 분들은 주의해주세요^^)
‘눈먼 자들의 도시’는 포르투갈 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주제 사라마구 (Jose Saramago) 의 소설로, 수년 전 책으로 읽은 후 한동안 충격이 가시지 않았던 작품이었는데, 최근 우연히 영화로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영화는 운전 중이던 한 남자가 차도 위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중 갑자기 눈이 멀어버리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게 된(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것이 하얗게 보이는) 환자가 발생하고 그 이후 그와 접촉한 사람들이 하나 둘씩 갑작스런 실명을 겪게 되어 도시 전체가 혼란에 빠지며 그 중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한 사람인 안과 의사의 아내의 눈으로 이 이야기는 전개 됩니다.
이 원인 모르는 질병이 급격히 도시전체로 퍼져나가자 시장은 이들을 한 병원에 격리하게 됩니다.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 그의 차를 훔쳐간 남자, 그를 치료한 안과의사, 그 병원에서 함께 진료를 보았던 환자 등등 의 일행과 그 의사를 보살피기 위해 실명을 가장하고 들어간 안과 의사의 아내가 격리된 병동에서의 단체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갑자기 앞을 보지 못하게 된 무기력해진 사람들은 그 안에서 질서를 찾고 혼란을 정리하려는 의사 부인과 몇몇의 노력으로 나름의 규칙을 정하며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나 환자들이 점점 더 많아지면서 절대적으로 부족한 공간 및 식량, 위생문제 등등의 문제들은 점점 더 커지게 되죠. 눈이 보이지 않는 그들은 점차 범죄도 서슴없이 저지르고 공동생활은 점차 무법천지가 되어 버립니다. 이런 충격적인 상황을 오직 안과 의사 부인만이 볼 수 있습니다. 본인들이 전염될까 무서워 군인들조차 무고한 환자들을 총으로 살해하고 도망쳐버리고, 그 혼란을 틈타 식량을 무기로 권력을 쥔 자들은 타인의 재물을 탐하며 성욕을 채우는 등 인간의 가장 밑바닥의 추악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안과 의사 부인을 연기한 줄리안 무어의 허망한 눈빛을 통해 마치 우리가 그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 듯 한 깊은 절망감을 함께 느끼게 됩니다.
불의를 참지 못하던 안과의사 부인은 결국 권력의 우두머리를 살해하고 그 이후 화재로 인해 이들은 이 병동에서 탈출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미 도시 전체는 눈 먼 자들로 가득 찬 폐허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 이후의 일들은 아직 영화나 책을 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남겨 놓겠습니다.
그들이 시력을 찾는다면 다시 해피엔딩이 될까요?
시력을 잃는 다는 것은 여기에서 무엇을 의미할까요?
인간다움이라고 느껴왔던 모든 것이 시력을 잃고 난 후 한 순간에 사라지고, 무책임한 윤리의식, 붕괴된 가치관,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죽고 죽이는 처절한 생존본능 만이 지배하는 혼란의 사회, 작가는 어쩌면 안과 의사 부인을 통해 관조적으로 인간의 깊은 추악함을 보여주고자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에 안과 의사 부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우리는 지금 보고 있지만 많은 걸 보고 있지 않은 건 아닐까요?
안과의사가 거의 유일하게 주요인물로 등장한, 볼 수 있다는 것의 의미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해 준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