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내장 전문의 황영훈의 베토벤 이야기 (8): ‘고별 소나타’
안녕하십니까. 김안과병원 녹내장전문의 황영훈입니다.
이번 이야기의 주제는 베토벤의 ‘고별 소나타’입니다. 사실 이 곡의 공식명칭은 ‘피아노 소나타 26번, 작품번호(Op) 81a’이지만 ‘고별 소나타’라는 애칭이 더 유명합니다. 이 곡이 ‘고별 소나타’라고 불리게 된 이유는 베토벤이 직접 이 곡의 1악장 악보에 ‘Das Lebewohl(고별)’이라고 메모를 남겼기 때문입니다. 그 사연은 베토벤의 열렬한 후원자였던 루돌프 대공(大公)과의 이별에서 비롯됩니다.
오스트리아의 왕족이었던 루돌프 대공은 베토벤의 음악을 무척 좋아했고, 베토벤에게 음악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베토벤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대가 오스트리아를 침략하자 루돌프 대공은 피난을 가게 되고, 그 때 오스트리아에 남아 있던 베토벤은 루돌프 대공과의 이별과 재회를 3개의 악장으로 된 소나타에 담았습니다.
<30대의 베토벤(좌측)과 루돌프 대공(우측)>
<30대의 베토벤(좌측)과 루돌프 대공(우측)>
이 곡은 전형적인 소나타 형식인 3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악장의 주제는 ‘이별’입니다. 이별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사실, 분위기는 오히려 밝고 화려합니다. 이별의 순간에 행복했던 순간을 회상하는 것일까요… 재회의 희망을 품은 이별이라 슬프지 않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제 생각엔 1악장의 주제를 재회를 꿈꾸는 설레는 ‘희망’이라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2악장의 주제는 ‘부재’입니다. 쓸쓸하고 외로운 분위기가 애절한 악장입니다. 그리고 3악장은 ‘재회’입니다. 기쁨, 반가움, 행복함이 너무나 잘 드러나는 악장입니다. 이 소나타 역시 ‘고난을 거쳐 환희로’ 귀결되는 베토벤 중기시절의 대표적인 모티브를 충실히 재현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점이 베토벤 중기 음악의 매력입니다. 제목은 ‘고별’이지만 결론은 재회를 통한 ‘행복’입니다.
헤어지고, 힘겨워하고, 다시 만나고… 우리 인생사는 크고 작은 이별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매 순간과 이별하고 있고, 새로운 순간과 만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소나타는 인생사의 함축인 셈입니다. 흘러가는 세월, 그 누군들 막겠습니까만 지나간 세월 돌아보며 아쉬워하느니 새롭게 다가오는 매 순간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는 게 멋진 인생 아닐까요... 베토벤의 ‘고별 소나타’의 주제도 같은 맥락입니다. 결국 인생은 해피앤딩! 온갖 육체적 질병과 정신적 고통으로 세상 누구보다 힘겨운 인생을 살았던 베토벤이 후세의 사람들에게 이 곡을 통해서 남기는 메시지입니다.
그간 베토벤의 음악을 소개하면서 항상 말로 소개할 수 밖에 없어 아쉬웠습니다. 음악을 링크하려고 해도 저작권 때문에 쉽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마침 좋은 동영상이 있어 직접 감상해보시길 권유 드립니다. 한국계 피아니스트인 임현정씨가 연주하는 ‘고별 소나타’ 3악장입니다. 이 동영상은 임현정씨의 소속사인 EMI 측에서 직접 공개한 것입니다. 임현정씨는 최근 EMI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녹음했습니다. 젊은 연주자답게 참신하고 자신감 있는 해석이 매력적입니다. 어쩌면 점잖고 중후한 연주를 좋아하는 분들에겐 다소 가볍고 피상적인 해석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밝고, 화려한 곡에서 특히 임현정씨의 연주 스타일이 빛을 발하는데 그 대표적인 곡이 바로 재회의 기쁨을 표현한 ‘고별 소나타’의 3악장입니다.
임현정씨의 연주 외에도 빌헬름 켐프(Wilhelm Kempff) 의 고전적인 명연, 에밀 길렐스(Emil Gilels)의 섬세한 연주(제가 제일 좋아하는 연주입니다), 스테판 코바세비치(Stephen Kovacevich)의 깔끔한 연주도 매력적입니다.
베토벤의 ‘고별 소나타’와 함께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다음 시간엔 ‘녹내장 전문의 황영훈의 베토벤 이야기 (9)’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