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디컬 안과 드라마(4): ‘내 눈에 벌레’
안녕하십니까. 김안과병원 녹내장전문의 황영훈입니다.
이번 군디컬 안과 드라마의 주제는 눈에 벌레를 키운 병사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모 부대 상병이 ‘눈에 벌레가 보입니다’라고 진료실을 찾았습니다. 벌레가 보이는 증상의 가장 흔한 이유는 유리체에 생기는 혼탁이나 출혈입니다. 비슷한 증상이라도 모양이나 색깔, 양상에 따라서 원인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자세히 물어봅니다. 발견한지 몇 달 되었고, 모양은 실처럼 생겼다고 합니다. 더 심해지지도 않고, 좋아지지도 않고, 보일 때도 있고,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만 들어 봤을 땐 영락 없는 유리체 혼탁에 의한 비문증입니다. 그런데 벌레의 색깔이 하얗다고 합니다. 그리고 거울에서 벌레가 보인다고 합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병사의 눈을 들여다봤습니다. 처음 봤을 땐 특별한 이상이 없어 보였습니다. 유리체나 망막에 이상이 있나 하고 눈동자를 크게 하는 산동제 안약을 넣고 다시 살펴봤습니다. 유리체와 망막에도 별 이상 없습니다. ‘이상하다’ 하고 다시 눈을 들여다보는데 뭔가 꿈틀거리는 것이 보입니다.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병사의 말대로 실처럼 생긴 것이 흰동자 위로 살짝 나타났다가 다시 결막낭으로 숨어 들어갑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녀석이라 반가운 마음에 점안 마취제 넣고 눈 구석구석 훑으며 벌레 사냥을 합니다. 그렇게 꿈틀거리는 녀석을 3마리 잡아냈습니다. 안과의사를 하다 보면 가끔 만날 수 있는 ‘동양안충’입니다. 어릴 때부터 벌레를 좋아했던 저에겐 귀엽고 반가운 손님입니다.
동양안충은 눈에 서식하는 대표적인 기생충입니다. 주로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동물들의 눈에 살지만 사람 눈에서도 가끔 관찰됩니다. 전염 경로는 아마도 동물을 만졌던 손으로 눈을 비비면서 전염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병사에게 혹시나 하고 물어봤더니 최근 동물을 만진 적은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서 감염된 것일까요? 이런 경우, 같은 생활관에 있는 다른 병사들도 모두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동양안충은 대부분의 경우, 눈의 표면에서 살지만 드물게 눈 속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눈 표면에만 있다면 벌레를 모두 잡아내고 눈을 깨끗하게 세척하고 항생제 치료를 추가로 하면 되지만 눈 속으로 들어가면 수술로 벌레를 잡아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부대가 도심에서 벗어나 있고, 집단생활을 하다 보니 병사들에게 여러 기생충이나 전염성 질환의 발생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그나마 동양안충은 양반이고 옴이나 호흡기 질환은 부대 전력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 결국, 피곤하더라도 병사들 스스로 위생에 조금 더 신경 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김안과병원에도 동양안충을 가지고 있는 환자가 있습니다. 깊은 산 속에서 지내는 분인데 일 년에 한 번씩 산 밖으로 나와 진료실을 찾으십니다. 그 때마다 다음 사진처럼 여러 마리의 동양안충이 발견됩니다. 산 속에서 무슨 동물을 만나셨던 걸까요? 동물 만지던 손으로 눈을 비비지 마시라고 권유 드렸더니 그저 허허 웃으며 유유하게 사라지셨습니다. 내년에도 또 눈에 벌레를 키워 오실까요? 왠지 기대가 됩니다.
Comments List
저를 명의로 만들어준 기생충이지요... 윗 눈꺼풀 속에 있는 것을 면봉으로 싹 긁어서 잡아냈어요... 사실 없는줄 알고 확인시켜드리려고 했던 것인데 벌레가 툭~ 떨어져서 제가 기절할 뻔 했답니다.
환자말은 잘 들어봐야 해요. ... ^^